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 최남선의 창작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시조집으로 1926년 동광사(東光社)에서 간행하였다. A6판. 154면으로 작자의 서문과 발문이 있고 총 108수의 시조가 3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서문 누구에게 있어서든지 하찮은 것이라도 자가 독자(獨自)의 생활(生活)만치 끔찍대단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남모르는 설움도 있거니와 한 옆에 남 알리지 아니하는 즐거움도 있어서 사람마다의 절대(絶對)한 일세계(一世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조그마한 이 세계(世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남에게 헤쳐 보이지도 아니하는 동시(同時)에 그렇다고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두지만도 아니하였습니다. 이 사이의 정관적조(靜觀寂照)와 우흥만회(偶興漫..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근대 조선의 최대 국보 육당 최남선이 쓴 것으로 추측되는 1925년 10월 9일 및 10일자 《동아일보》 칼럼. 1 ~ 3은 9일자, 4 ~ 6은 10일자에 게재되었다. 고산자 김정호의 백두산등정설, 전국답사설, 외동딸존재설, 지도단독제작설, 판목몰수설 등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들의 근원지다. 조선은 인재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망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라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이병도에 의하면, 1925년 이전 그 어느 자료에도 이런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서는 이후 1934년에 김정호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국가기밀누설죄로 몰려 옥사당하고 목판은 불태웠다는 날조된 거짓 정보를 추가하여 《조선어 독본》에 그대로 실리게 된다. (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지기만 하면 조선 특히, 요즈음..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신민사(新民社)와 공동으로 훈민정음 반포 제8 회갑(480년)이 되던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우리 말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켜 겨레의 넋을 살려내려는 민족운동 차원에서 행사가 진행되었고, 1928년 기념식부터는 한글날로 고쳐 불렸다. 오늘은 10월 9일, 575돌 한글날 한글날은 한글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다.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는데, 여기에 훈민정음을 9월 상순에 책으로 펴냈다고 나와 있다. 1446년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하면 10월 9일이 된다. 그래서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이다. 한글과 한국어는 같은 말일까. 아니다. 한글과 한국어는 다..
쓰봉* 속 십만원 / 권대웅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
스무 살 적. 내 꿈은 이 땅 대한민국, 코리아에서 멀리 떠나거나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두환이 싫었고 취직이 안 되는 이 나라가 미웠고 떠나간 사랑이 너무 슬펐다. 남쪽으로 가고 싶었다. 지구 최남단 끝 우수아이아,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다. 등 뒤로 지구가 아닌, 인간들이 살고 있지 않은 저 바다 너머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다가 등대불이 켜질 무렵 부둣가 술집으로 가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술집 여자와 탱고를 추며 취하고 싶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가도 가도 끝없는 남미 들판을 달리는 트럭 운전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외로워지면 문득 떠나간 사랑이 그리워..
1. 축구공이 흘러오듯이 삶이라는 경기에서 찬스는 수시로 온다.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지는 못할망정 흘러들어오는 찬스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거나 매번 놓치는 사람을 보면 죽비로 그 졸고 있는 영혼을 내리쳐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 밥벌이 앞에서 징징거리거나 투덜거리지 말아야 한다. 숭고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배가 고프고 가난했던 날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갈망하다! 열망하다! 갈구하다! 간절하다! 그렇게 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나는 가난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시인이 가난하기도 하고 적당히 게을러야지! 아니다. 그것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고 게으르고 시인입네 술로 살고 독설하고 꼬이고 뒤틀려 있으면 그것은 시인이 아니다..
2021 호미문학대전 금상 초여름 이랑사래는 초록 문장으로 빼곡하다. 너른 밭이랑 곳곳에 나름대로 구두점이 찍혀있지만 나는 수시로 난독을 하고 만다. 고추 감자, 채소들은 목차에 일치감치 자리매김을 끝내고 느긋하다. 마지막으로 심은 참깨가 애를 태웠다. 연장 탓으로 돌려보지만 탈자가 너무 많았다.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흩뿌린 티가 난다.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표가 난다. 실패를 거듭 한 후에는 손으로 직접 씨앗을 넣고 흙을 덮어주었더니 겨우 자리를 잡았다. 세 번째 씨를 뿌린 뒤에야 겨우 착상이 된듯하다. 깨알 같은 단어들이 오종종 실눈을 뜬다. 제대로 된 문장하나 건지기 위해 이렇듯 애를 쓰는데 제아무리 단단한 땅인들 품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단단히 뿌리 내..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