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과 원문 올해의 실패에 마음이 놀라 쓸쓸한 객관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 겹겹 구름에 산의 푸른 빛이 묻혔고 금강의 층층 파도에 차가운 소리가 울리네 온갖 마귀 나를 괴롭혀 내 운명이 궁해지고 모든 일이 어그러져 이번 삶이 개탄스럽네 북쪽으로 집을 향해 겨우 눈길 보내는데 저물녘 비바람에 돌아가는 길이 어둑하네 썩은 선비 과거에 떨어져 정신이 놀라고 출세를 기약했건만 또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에는 낙엽 시들어 바위가 보이고 웅진(熊津)에는 바람 급해 파도 소리가 철썩인다 주머니 속의 시초는 천 편이나 많은데 거울 보니 센털이 양 살쩍에 돋아났네 여윈 말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 발만 구르더니 황혼에서야 목주(木州)로 가는 길에 오른다네 今年落魄客心驚 금년락백객심경 孤館通宵夢不成 고관통소몽..
두 사람 / 라이너 쿤체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뒤처진 새 /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당부, 당신의 발밑에 / 라이너 쿤체 나보다 먼저 죽어요, 조금만/ 먼저//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혼자 오지 않아도 되도록// 늙어 / 라이너 쿤체 땅이 네 얼굴에다 검버..
직장 퇴직 후 사랑방을 만들어 지인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에 전원주택 겸 펜션을 준비하였다. 전원주택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이어오고 있다. 어느 봄날 우연히 둔내라는 곳에 놀러 왔다. 첫느낌이 유럽 알프스의 멋진 마을을 보는 듯하여빠져들었다. 고민도 없이 2011년에황토집으로 전원주택 겸 펜션을 지었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위치 500고지에 있다. 계획했던 펜션을운영하면서 지인들의 사랑방을 만들겠다는 로망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것이 암 발병이다. 5년간 투병을 하여 완치판정을 받아 덤의 인생을 살고 있다. 건강이 최고이기 때문에 펜션 운영 등 스트레스받는 일은 안 하고 있다. 항암 투병으로 식사를 못 했을 때 가마솥 백숙은 공기에 취해 맛에 취해 분위기에..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금상 물소리, 바람 소리가 영혼의 울림처럼 투명하다. 사계절 마르지 않고 흐르는 자계천을 따라 너럭바위가 세월의 깊이를 보듬는 녹음의 호위를 받으며 깔려 있어 선계에 온 듯 신비롭다. 회재 이언적이 이름 짓고 퇴계 이황이 새겼다는 세심대가 선명하다. ‘용추를 이루며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내린 후에야 학문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경건해진다. 옥산서원이 눈앞이다. 유생들의 바른 생각이 계절의 붓끝으로 뚝뚝 묻어난다. 자연의 성정을 그대로 닮아 정결하고 단아한 자세로 학문에 전념했던 이언적의 뜻을 기리고 배향하기 위해 서원은 세워졌다. 이언적은 거울이다. 거울은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오직 맑음을 취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
코로나19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전통인 제사의 풍습까지 변하게 한 코로나가 언제나 물러갈 것인가. 아버지는 오산 미군 부대에 근무하시다가 철도청 공무원으로 제2의 직업을 가졌다. 미군 부대에 계속 근무하셨으면 나도 어깨 너머로 영어를 배워 실력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방 역에 근무할 때 교육받으러 서울 오면 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연락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세상살이 이야기와 함께 직장생활의 대선배로서 원칙을 알려 주셨다. 1980년대 초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무척 많았다. 공직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고향이 사라졌다. 개발에 밀려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경기도 오산 고향 집은 100여 호가 모여 사는 산골이다. 예전의 시골집이 그랬듯이 초가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장독대, 우물, 창고가 있었다. 뒤뜰에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잘 익은 연시는 간식으로 그만이었다. 쌀독에 넣어서 만들어진 홍시의 맛은 지금 어디에 가서 맛볼 수 있을까?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 먹이로 남겨놓은 몇 안 되는 것마저 탐을 내었다. 꼭대기 우듬지로 올라갔다가 나무가 부러져 초가지붕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삭은 지붕은 작은 몸피도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부모님이 달려와 주저앉으셨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이마에..
나를 줍다 / 김순일 별이 서늘한 가을날/ 우산재 앞 공원에서/ 낙엽을 줍는다.// 벌레 먹고/ 병들고/ 거무칙칙하고// 세월에 할퀴고 찢긴/ 은행잎을 줍는다.// 상처 많은 나/ 나를 줍는다.// 누구인가 / 김순일 누구인가, 나의 주인은// 개심사 대웅전에서 나를 열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인도에 갔습니다 발바닥에 피가 맺히고 맺히도록 걷고 걸어 부처를 찾았습니다/ 견성하였다는 네란자라 강가 보리수 밑에 앉아 부처에게 묻고 물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어찌 너의 주인을 나한테 와서 찾느냐, 너무 멀리까지 왔구나 어서 일어나 너한테로 가보아라’/ 나의 등을 떠미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찾아 먹는 세끼 밥인가/ 나를 감싸고 다니는 옷인가/ 신발인가 신발 속 그..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골목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마시게’* 집과 집으로 이어진 돌담이다. 담장 너머 안주인의 생이 조각보처럼 바느질된 것 같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완벽한 퍼즐처럼 삶의 편린들이 제자리를 찾아 맞춰진 것 같다. 채마밭처럼 푸른 이끼로 덮인 돌담들이 세월의 눈가에 주름진 그리움을 품고 있다. 그 돌담 위로 호박넝쿨이 느릿하게 타고 오른다. 안과 바깥의 경계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들의 언덕이고 기둥이었던 것처럼 오래된 생을 끌어안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길이 탈출구를 찾아가는 미로 같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순간 나를 잃고 자리에 멈춰 선다. 귀를 기울이고 코를 벌렁거려본다. 뭔가 알 듯하다. 이곳 사람들은 방향과 표식보다 자기에게 익숙한 소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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