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반곡지(盤谷池)에 가면 사랑에 빠진다. 누구라도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냐고 묻는다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고 대답한다. 자식인 내가 지켜본 두 분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같이 살아도 따로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다. 그런 두 분이 반곡지에 서면 달라진다. 해서 삶의 불화가 일어나거나 적이 불편하다면 반곡지로 가 볼 일이다. 아버지의 말씀이다. 1968년 여름이었다. 네 어머니를 만난 때가. 1·21 사태가 일어나고 예비군법이 새로 만들어진 해였지. 참 오래된 이야기다. (아버지의 얘기는 주로 군대와 관련되어 시작되는데 아마도 해병대 출신인데다가 K2 공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하신 탓이지 싶다.) 맞선 자리가 들어왔으니, 시간..
손택수(孫宅洙) 시인 1970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 국문학과와 부산대학교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이 있다. 수주문학상, 부산작가상, 현대시 동인상, 신동엽창작상, 육사시문학상 신인상, 애지문학상, 이수문학상, 문학과의식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실천문학사 대표로 활동 중이다.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 손택수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 바람 8%, 나비 2.55%, 먼지 1%/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달 2%/ (여기에 끼지 못한 당나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함)/ (아차, 지렁이도 있음..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우리는 매 순간 꿈을 향해 나간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발해가 멸망한 지 천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옛날 영광을 되찾으려는 사람이다. 그들이 모여 사는 경상북도 경산시 발해 마을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일까. 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고구려 후예들이다. 고구려가 신라에 나라를 넘겨준 후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요동 땅으로 가서 발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696년 건국해 230여 년을 부국강병 국가로 성장했다. 바다 동쪽의 번창한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부유하게 살던 발해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멸망한 계기는 여..
차를 수리하는 일이 잦아졌다. 차도 나이가 드니 사람처럼 병원을 자주 오간다. 식구들은 타던 말이 늙었으니 젊은 말로 바꾸란다. 아직 쓸 만한 것 같은데. 자동차 매장을 다니며 보니 차마다 개성이 제 각각이다. 중형 세단, 스포츠카, 소형차. 가격과 성능을 비교하다가 차가 남자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선호도를 차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20대 여성이라면 스포츠카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카리스마 짙은 외모에 배기량 넘치는 에너지, 단도직입적인 제로백이 관심의 rpm 게이지를 올릴 것이다. 30대라면 고가의 승용차를 고를 것이다. 그 즈음의 여자들은 경제적 능력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까 싶다. 여성은 배우자를 고를 때 본능적으로 사냥 잘하는 수컷을 선호하니까. 결혼을 하고 난..
그 저녁은 경계에 걸린다. 낮의 끝과 밤의 시작 사이. 낮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밤이라 하기에 어정쩡한 시간. 차를 마시기엔 늦고 술을 마시기엔 이르다. 무엇을 시작하기엔 좀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인생의 절반을 지난 시점 같다. ‘아직도’와 ‘벌써’에서 망설이는 애매한 시간. 미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고 만다. 인생이란 것이 모두 그러하듯. 저녁은 슬그머니 온다. 서쪽 산등성이에 결렸는가 싶은데 어느새 그림자를 이끌고 그렇게 시치미 떼고 온다. 고양이 담 넘어 집 뒤로 사라지고 새들도 둥지 찾아 날아가면 그제야 저녁은 눈치 보며 깃든다. 도로는 차량이 넘치고 조용하던 거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슬그머니 시작된 저녁. 길이 막히고 거리는 북적인다. 순간이다. 나이도, 시간도, 삶도 ..
대로의 빛줄기들이 밤을 휘젓는다. 비구름 먹은 구월의 바람이 엷어진 가로수 잎을 뒤집어 흔들며 서걱거린다. 토요일이라지만 추석도 앞두고 있는데 이전과 다르게 설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백화점 사이 외진 안길이 앞쪽의 밝은 곳과 대비되며 더 어둑하다. 어둠을 메우듯 길옆 공터에 서 있는 거뭇한 차림의 사람들이 문득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제우 선생의 동학 관련 자료를 읽다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나온 터였다. 서점부터 들렀다. 문 닫을 시각이 다가오는 현대백화점 안의 교보문고에도 파장 같은 흐름이 묻어났다. 원하는 책이 검색을 해봐도 없었다. 습관처럼 서가 앞에서 두어 책을 빼 들고 목차를 읽으며 내용을 헤아려보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입도 가리고 말도 줄여야 하는 황망한 세태에 갈 데가 마..
호수에 떨어진 낙조의 해기둥이 눈부시다. 물을 건너오는 찬바람 맞받으며 옷깃을 여민다. 송림수변공원 세 바퀴 둘레길 걸음에 배어 나온 등의 땀도 이내 잦아지며 선득해진다. 일렁이는 붉은 물결을 멍하니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는 데 내가 흔들리며 떠내려가는 환각에 빠진다. 그렇다. 지금 모두가 떠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말만 무성하다. 하나같이 입 가리개를 두른 사람들의 종종걸음은 역병의 끈을 떨쳐내려는 몸짓이다. 숙지려나 했는데 추위를 타고 다시 힘을 쓰는 마왕의 기운 같은 그자 앞에 갈 데가 없다. 두문불출이 최상의 길이라 하지만 사람이 어찌 그리 살아내랴. 하여 내가 팔공산 길을 한 바퀴 휘돌아 여기 물가에서 숨을 고르고 있듯이 모두 나름의 마음 풀 길을 찾아 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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