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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흐고비 수필읽기339

옹이 / 박덕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왼쪽 엄지발가락이 살살 아파온다. 퇴근 후에 양말을 벗다 말고 왼발을 살핀다. 엄지발가락이 둘째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있고, 엄지발가락의 관절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뭉툭한 모양새가 나무의 몸에 박힌 옹이 같다. 서러운 제 속내를 소리 없이 꺼내놓기라도 하는 듯 돌출된 관절이 빨갛게 부어 있다. 슬픔이라는 바닥짐을 지고 혼자서 외로이 여기까지 걸어온 무소의 뿔 같기도 하다. 살아온 내력은 이리도 선명히 좁은 틈 비집고 아픔을 내민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태권도장에서 대련을 했다. 나의 옆차기 공격을 방어하는 상대방의 주먹에 맞아 엄지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몹시 아파 절뚝거리며 집으로 왔지만, 혼날까 봐 어머니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말하지 않.. 2022. 2. 10.
화음 / 김영희 오늘은 동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형님댁에서 김장을 하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에 들어서니 흥이 실린 목소리들이 화음처럼 울려 퍼진다. 형님은 직접 농사지은 배추를 소금에 절여 소쿠리에 물기를 빼두었다. 커다란 다라이에 젓갈, 고춧가루, 마늘, 찹쌀풀 등 양념을 섞어가며 속 준비에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갓, 무, 쪽파 등을 다듬는 손길이 재바르다. 형님은 간은 맞는지 더 넣을 것은 없는지 절인 배추에 양념을 쓱 묻혀 생굴을 얹고 깨를 묻혀 입에 넣어준다. 첫맛은 톡 쏘는 매운맛에 조금 짜다 싶지만 자꾸 받아먹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맛이다. 각자의 입맛에 따라 짜다, 간이 맞다, 맵다 한마디씩 거든다. 미식가인 막내 동서가 이프로 부족하다는 사인을 보내자 눈치 백 단인 형님은 누른 호박과 곶감 달인 물.. 2021. 12. 24.
햇살이 그녀에게 / 이경숙 그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오른발을 내디딜 때는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한다. 장애등급을 받은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거기다 이혼한 시동생과 아이들 뒷바라지한 지 8년이 되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녀를 효부라고 한다. 그 말이 칭찬처럼 혹은 놀림처럼 들린다. 어느 날 밤, 그녀가 마트에 조카들 간식을 사러가다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옆집 아주머니는 이제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보내고 그녀의 건강부터 챙기라고 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밤 껍질을 깎는 부업을 해서 살림과 시어머니 칠순잔치에 보탠 것을 아는 아주머니는 그녀가 애처로웠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간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옆집 아주머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불같은 성미의 시어머니가 어찌 마음을 다스렸는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2021. 12. 15.
그리운 우리 집 별미 닭죽 / 김인현 최근 학교 앞에 삼계탕 식당이 생겼다. 찹쌀이 듬뿍 들어간 삼계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닭죽이라는 이름의 상품이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을 모두 잘게 뜯어서 풀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서 시켰는데 기대했던 바대로였다. 맛있었다. 닭죽은 나에게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아버지 어머니 5남매 9명이 기본가족이었다. 복날 근처에는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름에 두 차례 세 차례씩 꼭 닭죽을 해먹었다. 어머니는 영해시장에 가셔서 생닭을 한 마리 사 오신다. 물을 팔팔 끓여서 닭을 물에 담그면, 닭의 털이 쉽게 떨어진다. 나신이 된 닭을 삶은 다음 살코기를 잘게 만든다. 쌀에 닭고기를 넣어서 죽을 만든다. 특별.. 2021. 11. 15.
어머니와 아버지의 설득의 기술 / 김인현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태풍 때문에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대문을 달고 있었던 좌우 담장 약 20미터가 사라진 상태이다. 건물이 훤히 보이는 것이 무언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담장을 다시 쳐야 할 터인데, 장남인 형이 있으니 형과 상의해서 결정할 사항이다. 저녁을 친구들과 먹고 9시경에 샤워를 하고 어머니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야야”하고 부르신다. 어머니는 만면에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담장 무너진 한 쪽에 조립식 건물 조그마하게 짓지 못하나, 애비야”. 나는 답을 했다. “예, 전에도 어머니 편하시게 모시려고 우리가 조립식 건물 짓는 것을 논의했습니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너가 자주 축산집에 오니, 지금 여기가.. 2021. 11. 15.
다시 ‘시인과 농부’ / 한승원 대나무는 뿌리를 수직으로 뻗지 않고, 옆으로, 옆으로 뻗어가서 죽순들을 밀어올림으로써 자기 영역을 한없이 넓히는 식물이다. 농민은 이웃의 솜대 밭에서 자기네 밭으로 뻗어온 뿌리들을 파서 내던져 버린 다음, 다시는 그 뿌리가 뻗어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네 밭과 대밭의 경계에 무릎이 잠길 만큼의 기다란 참호를 팠다. 인근에 사는 시인은 그 대나무 뿌리 여남은 개를 가져다가 자기 서재의 서편 창문 앞 울타리에 줄줄이 심었다. 밤이면, 서쪽으로 기우는 달빛으로 말미암아 서창에 드리워질 수묵화 같은 대나무 그림자를 완상할 생각으로, 또 속이 텅 비고 올곧게 살아가는 대나무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내 속으로 대나무가 들어오게 할 생각으로. 그리고 사철 내내, 바람에 사각거리는 그들의 싱싱하고 풋풋한 속삭임과 꾸.. 2021. 10. 2.
호박꽃도 꽃이다 / 박병률 “호박꽃도 꽃이냐?” 그런 말을 들으면 “장미꽃만 꽃이냐.”라는 말이 내 입안에서 뱅뱅 돈다. 끝내 말할 수 없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통증을 느꼈다. 오래전 집 울타리에 덩굴장미를 심었는데 해가 갈수록 줄기가 손가락 3개를 합친 만큼 두꺼워지고 가시가 사방으로 무섭게 뻗쳤다. 해마다 장갑 낀 손으로 가지치기를 하다가 손과 팔뚝에 가시에 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민 끝에 장미를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호박을 심었다. 얼마 안 가서 울타리에 호박 줄기가 무성하게 번졌다. 내가 키우고 싶은 방향으로 순을 접으며 줄기를 끈으로 군데군데 묶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호박꽃이 피었다. 수꽃은 대만 길게 올라오고 암꽃은 달걀만 한 열매를 달고 꽃이 핀다. 호박꽃이 피면 벌들이 꿀을 따려고 모여든다. 꽃은.. 2021. 8. 12.
별 / 문경자 감악산이 멀리 보이는 곳. 시집에서 염소를 키우고 있던 시절. 새댁인 나는 가족들이 들에 나가고 없을 때는 집을 지키는 얼룩무늬 강아지에게 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을 치면서 놀아 주었다. 어쩌다가 들에 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집 앞을 지나기도 하고, 논이나 밭에 나가 일을 많이 하여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웃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왔다. 마을이나 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까지도 훤히 알고 상관하는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지게를 지고, 여자들은 보따리를 이고 오일장에 나가기도 하였다. 그런 날에는 아랫마을에 누가 아프다든가, 어느 집 아들 딸들이 결혼을 했다 느니 연애 중이라는 등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 듣.. 2021. 8. 9.
등산 / 김상용 등산이 분명 일종의 스포츠이나, 이것이 스포츠이면서도 스포츠 이상의 어떤 의미를 소유한 데서 나의 등산에 대한 동경은 시작되었었다. 룩색에 한 끼 먹을 것을 넣어 지고 자그마한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비롯해, 몇 달 혹은 몇 해를 허비해 가며 지구의 용마루와 싸우는 본격적인 등산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근골은 쓰여지는 것이고, 이것이 쓰여짐으로 말미암아 그 단련의 결과도 나타나는 점에 있어 등산의 스포츠적 성격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수도의 한 과정같이 어떤 철학적 분위기로 우리의 심령을 정화해 주는 데 초 스포츠적 매력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등산가의 한 가지 긍지는 굳이 다언을 피하는 기벽이 있으니, 이는 눈은 산봉과 하늘을 바라보고 오르되 이 순간 심령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안.. 2021. 8. 4.
두척산 쑥부쟁이 / 임영주 산에 오르다 입동 立冬이 눈앞이다. 한더위가 엊그제 같은데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점심 후 간편한 등산복을 입고 두척산으로 향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산인데도 정상 등산은 1년에 고작 서너 번 한다. 서원골 입구에 주차를 했다. 건너편 노랗게 단풍 든 은행나무가 장엄하게 서 있다. 조선 중기 대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이 심었다고 전하는 수령 500여 년이 된 나무다. 이곳은 정구 선생과 그의 제자 미수 허목을 배향한 회원서원 터로 지금은 부속건물이었던 관해정만 오도카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차장 앞에 마산씨름체육관이 보인다. 1970•80년대 한국 씨름을 주름잡았던 김성률, 이승삼, 이만기, 강호동 장사 등이 활약한 기념으로 건립한 씨름장으로 알려져 있다. 잘 정돈된 진입로를 따라.. 2021.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