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깃장부리지 않고 차분히 살다가도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남편과 나는 부산의 낯선 길로 차를 몰곤 했다. 길섶으로 우거진 나무를 끼고 달리다 산중턱에 이르면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는 우연히 금련산 산마루를 넘어 과거 속으로 들어선 듯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비탈에 층을 이룬 슬레이트 지붕 집들은 시골이나 과거 모습을 복원해 놓은 것처럼 딴 세상 같았다. 하나같이 단조롭고 소박한 집들 사이사이로 빨래가 널려있고 도란도란 장독들도 가족처럼 둘러있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경사지고 좁아 차가 마주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불안하기까지 했다.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한편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며 돌아왔다. 그 뒤 ‘골목 에세이’라는 TV..
무언가 허전하다 싶더니 휴대폰을 깜박 잊었다. 지하철역 승강장에 와서야 집에 두고 온 걸 알아챘다. 출근길인 데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그대로 지하철을 탔다. 나를 애타게 찾는 지인이나 고객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본의 아니게 여유가 생길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휴대폰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사람들은 직접 통화하지 않아도 문자 기능을 활용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오늘 나에게 문자나 카톡을 한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발신 후 1시간이 지나도 읽지 않으니 업무가 바쁜가 보다고 여길 것이다. 3시간이 지나면 내가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라고 의심받기 십상이다. 5시간이 되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할 것 같다. 급기야 나에게 전화를 걸면 신호는 가는 데 받지 ..
첫추위 예보에 옷장을 연다. 바로 입을 수 있는 카디건 하나를 손쉬운 위치로 옮겨놓는다. 사실 이 옷은 내 손에서 떠나보낼 뻔했다가 돌아왔다.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풀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 느꼈던 보드라움에 비해 질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취급 부주의인가 하고 각별히 조심해보아도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보풀을 핑계로 함부로 입기 시작했다. 형편없는 옷이 되고 말았다. 현관 앞에 내놓았다. 분리수거함에 넣기 위해서였다. 현관을 드나들다 어느 날 봉지 속에서 카디건을 건져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탁소에 맡겨보았다. 옷이 멀쩡해져서 돌아왔다. 보풀은 옷 전체를 생각하면 별 것이 아니었다. 그 옷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샹젤리제 거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을 때 개선문 쪽에서 눈바람이..
문득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들은 내겐 삶의 이유이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때론 진부한 일상에 나태해질 때면 무작정 길을 나서게 된다. 그 낯선 길에서 빠져드는 사유는 또 다시 방랑을 하게하고 거기서 겪는 새로운 경험들은 놀라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 달콤한 유혹에 매혹되어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 보니 그만 세상 끝에 와 버렸다. 안데스 산맥을 등뼈처럼 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끝자락 파타고니아까지 몇 날이 걸렸는지, 기억에도 없다. 그저 꿈을 꾸듯 훠이훠이 오다 보니 순백의 빙하 위에 서 있었다. 칼날같이 치솟은 설산을 뒤로하고 그레이 호수 위로 무너져 내리는 빙하는 오싹한 소름마저 돋게 했다. 우레 같은 천둥소리를 동반한 파편들은 곧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유히 수..
바다는 손을 헹구지 못한 채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면서 손님을 맞았다. 무쇠 솥에 불을 때다가 부지깽이 던져두고 뛰어나와 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보이던 언니를 닮았다. 갯벌 가까이 있는 바다는 그랬다. 흙과 바람 속에서 뚜벅뚜벅 걷는 사람처럼 꾸밈이 없고 투박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밴 물이랑을 일궜다. 바다는 온갖 목숨들을 거두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것들을 부추기고 쓰다듬고 다독이느라 분주하다. 인적 드문 산골에 터를 잡고 하루하루를 엮어내는 언니는 때 묻은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그저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다. 누구를 그립다고 한 적도 없고 삶이 외롭다고 툭 내뱉은 적도 없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품고 눈 끔벅거리는 일 소 한 마리 먹이는 것이 사는 일의 전부인 줄 아는 듯했다. 세상 구..
울산은 동으로 무룡산 동대산이 병풍이 되고 서쪽은 태화강의 원류(原流)가 되는 고봉준령이 둘러 서 있다. 가지산 고헌산을 비롯해 영남알프스 7봉이 모두 1000미터를 넘는다. 이러한 울산의 서쪽 땅에 자리한 언양에 3미(味)가 있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세 가지 맛이다. 언양 불고기가 첫째요 미나리 강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이 두 번째이고 못안 흰쌀밥이 세 번째 맛이다. 강회는 이른 봄에 돋아난 향미가 강한 햇미나리를 살짝 데쳐 봄맛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고추·달걀·석이·차돌박이·편육 등을 채로 썰어 잣을 가운데 세우고 옆으로 돌려가며 세운 다음 끓는 물에 데쳐낸 미나리로 감는다. 감을 때 민간에서는 상투 꼴로 감았고 궁중에서는 족두리 꼴로 감았다. 색상이 아름답고 맛이 깔끔해서 술안주로 애용된..
오전 내내 먹구름만 차오르더니 정오가 지나서야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낮인데도 저물듯이 어둑하다. 일찌감치 청소를 끝내고 그윽한 조명 아래 책을 펼쳐본다. 이보다 더 안온할 수 있을까. 북데기 같은 머리를 질끈 묶어놔도 신경 쓸 일 없는 안식처이다. 그 공간이 나만의 섬인 양 포시랍게 안착한다. 최면에 걸린 듯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이윽고 눈이 감긴다. 완벽한 평화에 느닷없이 균열이 생긴다. 아랫집에서 괄괄하게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여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다구니를 내뿜는다. 점잖은 이웃을 만난 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매일 들끓는 굉음을 분출해내며 육아의 설움과 자신의 건재함을 꾸준히 알린다. 점잖은 이웃답지 않게 야멸찬 표현을 쓰는 건, 저들이 지난밤 선을 넘는 치열한 싸움과 소음을 발산한 때문..
여기저기서 봄꽃 소식이 낭자하다. 매화가 먼저 봄을 깨우니 목련 진달래 산수유가 앞다투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봄에는 꽃소식이 제일 반갑다. 마음이 꽃 같았던 오래전 봄날이었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 마음이 달떠서 몸살이 났다. 그럴 때는 지리산 서쪽 자락에 있는 구례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봄 길을 여는 꽃과 단아한 고택을 보노라면 갈증 난 꽃바람이 해갈되었다. 꽃눈이 몽실몽실 움트는 하동 십리벚꽃길을 지나 섬진강을 따라가면 제일 먼저 토지면에 있는 운조루가 반겼다.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숨어 사는 집 운조루. 삶 속에 풍류를 끌어드린 고택 앞에 서니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지를 앞에 둔 솟을대문 양옆으로 뻗은 긴 행랑채가 성곽처럼 당당했다. 240년 전에 99칸이나 되었던 고대광..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