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峨嵯山)을 오르는 중이다. 산 중턱쯤에서 언니가 멈춰 선다. “이 나무좀 봐라, 나는 이 나무를 보면 그냥 못 지나가겠다. 그래서 이렇게 꼭 쓰다듬는다.” 언니가 말하는 나무를 보니 내 어깨 높이쯤, 한 가지는 남쪽으로 또 한 가지는 서쪽을 향하여 ㄷ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이 나무가 이렇게 휘어져 자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겠니, 너무 안쓰럽다.” 언니 말을 들으며 나도 한번 나무를 쓰다듬는다. 반드레한 느낌이다. 나무가 거칠거칠하지 않고 반들반들한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휜 모습이 안쓰러워 아마 나무를 많이 쓰다듬었나 보다. 나는 휜 나무를 쓰다듬고 올라가면서 그렇게 휘어졌는데도 용케 살아남은 나무가 신통하게 생각되었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곧게..
무슨 일일까, 며칠째 딸아이가 시들하다.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표정까지 굳어 있다. 아이 방에 들어가 눈치를 보며 서성이는데 대뜸 혼자 있고 싶다고 한다. 큰딸은 동실한 보름달을 닮았다. 크고 까만 눈에 뽀얀 얼굴은 달처럼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아이는 눈웃음을 짓지만 돌아서면 콧잔등을 찡그리곤 하였다. 둥그런 달을 닮았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인 적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갸름하고 작은 얼굴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어릴 적엔 연년생으로 동생을 보아 그런지 깨알만한 딱지를 내밀며 호 해달라고 어리광을 부렸었다. 매사에 적극적인 딸은 말재간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몰린다. 한 해가 지는 마지막 날에도 가족끼리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 한 살씩 예쁘게 꼭꼭 씹어 먹자' 고 해 모두들 ..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정보 시스템의 '잠시 후 도착' 칸에 내가 탈 버스의 번호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기 위해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람처럼 달려온다. 급하게 앞문에 오르면서 그녀의 지갑에서 흘러나온 동전 하나가 바닥으로 떼구루루 굴러간다. 문이 닫히면서 버스는 곧바로 출발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전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던 버스를 탄다. 빈자리가 없어도 서서 갈 공간이 충분해서 좋다. 예순이 넘은 중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도 없지만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에 넋이 빠져있는 학생 옆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눈치 볼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넣는다. 조금 전에 주운 동전이 만져진다..
내 방의 창문 바로 앞이 조그마한 숲이다. 몇 종류의 나무가 있긴 하나 거의 아카시아다. 5월이 되면 창문은 탐스럽게 핀 아카시아를 잔뜩 그려놓은 액자로 착각할 정도다. 아침에 창문을 열고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모양이 눈에 띈다. 하얗고 탐스러운 꽃들이 향기와 함께 창문으로 고개를 드려 민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꽃송이들이 점차로 사람 얼굴로 변한다.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어릴 때, 자주 놀러 다니던 산에서 보았던 그 아카시아인지도 모르겠다. 번식력이 강해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을 살리기 위하여, 아카시아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삽시간에 전국에 퍼졌다고 하니, 그 나무의 후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 6.25 한국동란이 났을 때, 우리 가족은 동대문 옆의 창신동..
‘전주식당’이어서 전주에 있어야 하고 ‘서울식당’이어서 서울에 있는 건 아니다.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밥집이름이다. 세월이 비껴간 도심 속 달동네처럼 예나 지금이나 매양 같은 모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가끔 이런 밥집을 간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내 아련한 시간들이 머물러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움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허름한 식당 구석자리에 앉아 백반 한 상을 기다리는 잠시잠깐의 그 시간이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 그 편안함이 내 안의 상념의 조각들을 불러낸다. 어머니가 차린 두레상. 두레상에 둘러앉은 가족들과의 기억들이 따뜻하다. 늘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 아침. 아궁이에 장작 타는 냄새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 무쇠솥에서 뿜어내는 흰 포물선은 하루의 시작을 ..
오랜만에 어머님이 사시던 집에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지만 집은 주인이 있는 양 온전하다. 나름 견고하게 지은 집이라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의 온기가 가신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기둥은 예나 다름없이 기개를 펴고 있다. 마루 역시 세월의 흐름을 표면의 얼룩진 자국들로 감추진 못해도 저만큼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다. “이 마루 우리 집으로 옮기면 좋겠다.” 네모만을 고집하는 요즘의 아파트가 싫어 남편은 주택을 선호한다. 나 역시도 아파트의 폐쇄된 공간이 마땅찮아서 남편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다행이 여유로운 집터에 산 지 오래 되어 좁은 공간에 들면 답답함을 밀어내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문득 거실 앞에 툇마루라도 놓고 싶은 욕심이 일어 남편에게 의견을 내놓았..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지난해 멧돼지가 들이받아 나무둥치가 찢긴 채 땅에 누워버렸던 나무다. 그렇게 상처를 입었던 나무가 올봄 꽃을 소담하게 피워냈다. 콩알만 한 복숭아가 맺혔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움켜잡고 있었다는 것이 신비스러움을 지나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부여된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수행자 같다.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그만도 못한 자신이 더없이 부끄럽고 마음의 회한으로 남는다. 오랫동안 가꾸어 온 농장이 너무 방대한 탓에 관리가 소홀해졌다. 야산을 개간해서 만들었던 농장이 그동안 나무와 숲이 우겨져서 다시 야산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다시 날고 기는 짐승들의 터전이 되어버렸다. 농장에 심어진 복숭아는 익을만하면 멧돼지가 주인이었고, 맛이 든 감은 새들이 먼..
벼가 치자 빛으로 물들어 간다. 들녘의 메밀꽃은 하얗게 솜사탕을 풀어내고 소슬한 바람이 차창 가로 스친다. 긴 세월 얽매인 직장의 매듭이 풀리자마자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그 말에 “이왕이면 홀로 계신 시이모님 두 분도 같이 모시고 가요.” 하는 내 말에 그 사람은 “어머니가 더 좋아하겠네.” 하며 소년처럼 들떠서 완도 여행길에 올랐다. 나이 들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어머니는 이모들과 전화만 할 뿐 만나지 못해 답답하다고 넌지시 푸념을 했다. 폐를 갉아먹는 병마에 지쳐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가랑잎 같은 시어머니. 잠시나마 파리한 그 얼굴에 웃음 띠게 할 수 있다면 맘의 부담쯤이야…. 앞에 앉은 세 여인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끝없이 말 꾸러미를 풀어낸다. 모처럼 만났으니 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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