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에 온지 며칠 되어서 아침에 나서 거닐다가 이상한 노인 하나를 보았다. 회색 상목으로 지은 가랑이 넓은 바지에 행전 같은 것으로 정강이를 졸라매고 역시 같은 빛으로 기장 길고 소매 넓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헝겊으로 만든 승모를 쓴 것까지는 늙은 중으로 의례히 하는 차림차리지마는 이상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주름이 잡히고 눈썹까지도 세었으나 무척 아름다왔다. 여잔가, 남잔가. 후에 알고 보니 그가 영당 할머니라는 이로서 연세가 칠십 팔, 이 절에 와 사는지도 사십년이 넘었으리라고 한다. 지금 이 절에 있는 중으로서는 그중에 고작 나이가 많은 조실 스님도 이 할머니보다 나중에 이 절에 들어왔으니 이 할머니가 이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내가 이 절에 오래 있게 되매 자연 영당 할머니와..
구강공화국(口腔共和國)에는 다섯 고을이 있었다. 고을마다 씨족이 모여서 살았는데, 그들은 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건실하였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현실에 잘 적응하는 삶을 꾸려나갔다. 힘을 키우기 위해 소유하는 법이 없었고,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며 행복만을 추구했다. 물론 고을마다 땅의 모양이나 형질이 달라 생업에 차이가 있고, 그들의 됨됨이나 개성도 현격한 특징이 있었다. 씨족이 다르다 하여 서로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옹졸함은 없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하며 어려움을 풀어가기도 하고, 조화롭게 절충하는 데에도 능숙하였다. 간혹 의견이 달라 다투기는 하였으나 별달리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다른 고을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일에 그리 열중이지 않았다. 모두가 다 있을 수 있는..
밀면 먹으러 간다. 시원하다, 맛이 괜찮다, 로 의견일치를 본 점심메뉴다. 골목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그와 나 사이에 10m쯤의 간격이 벌어진다. 워낙 키 차이가 난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가는 마음이 편안하다. 젊었을 땐 서로 보폭을 맞추어서 걷고, 자주 손을 잡고 걸었다. 그때 오늘처럼 그가 앞서 걸었다면 아마 다투었을 것이다. 그는 대체로 자상하며 나를 잘 살피는 사람이었다. 우린 늙어가고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는 예사롭게 혼자 걸어가고 나는 또 그런 그가 전혀 고깝지가 않다. 잠깐 돌아보고 섰다가 그가 식당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럽다. 우리 이렇게 편하게 늙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늙어서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걸음걸이가 불안하거나 아주 불편해지면 다시 젊..
도라지꽃은 깔끔한 꽃이다. 도라지꽃은 달리아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칸나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다 피어도 되바라진 데가 없는, 단아하고 오긋한 꽃이다. 서양 꽃이라기보다 동양 꽃이요, 동양의 꽃 가운데서도 가장 한국적인 꽃이다. 예쁘면 향기는 그만 못한 법이지만 도라지꽃은 그렇지 아니하다. 그 보라색만큼이나 은은하다. 차분한 숨결이요 은근한 속삭임이다. 도라지꽃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핀다. 가을꽃이라기 보다 여름꽃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패랭이꽃과 함께 가을꽃으로 친다. 그 보라색 때문일까. 아니면 길숨하게 솟은 꽃대궁이 주는 애잔한 느낌 때문일까. 도라지꽃에서는 언제나 초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도라지꽃은 언제나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들국화나 코스모스처럼 무리를 지어 피는 법이 없다. 양지..
애주가는 술의 정을 아는 사람, 음주가는 술의 흥을 아는 사람, 기주가嗜酒家, 탐주가耽酒家는 술에 절고 빠진 사람들이다. 이주가唎酒家는 술맛을 잘 감별하고 도수까지 알지만 역시 술의 정이나 흥을 아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술을 마시는 데도 서로 경지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생활은 하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생활을 알고, 생활을 말할 수 있는 그리 많지가 않다. 누구나 책을 보고 글을 읽지만 글 속에서 글을 알고 글을 말 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드물다. 민노자閔老子의 차를 마시고 대뜸 그 향미와 기품이 다른 것을 알아 낸 것은 오직 장대張岱뿐이다. 그는 낭차閬茶가 아니고 개차岕茶인 것을 알았고, 봄에 말린 것과 가을에 따 말린 것을 감별했고 끓인 물이 혜천惠泉의 물인 것까지 알아내어 주인을 놀라게..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 좋은 수필을 쓰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일 것이다. 잘 씌어진 수필을 대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평화롭다.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과 사물을 분석하여 혼을 실은 글을 대할 때마다 머리가 숙여진다. 수필공부를 하면서 선배작가들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이러한 욕심은 부질없는 나의 생각이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움이 앞을 가로 막았다. 처음에 붓 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인 줄 알았다. 무조건 지나온 나의 삶을 신변잡기로 글을 썼으니 내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 사고가 없는 글에 얼마나 식상했을까? 어느 날 책을 읽는 도중 관조란 낱말이 내 뒤통수를 호되게 때렸다. 관조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여 비추어 보는 것이라 했다. 나의 부족한 사고로 생활 ..
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하지만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어시장에서 만난 개복치가 그랬다. 오래된 어물전 귀퉁이에 내걸린 개복치의 사진은 좀 유난스러웠다. 평범한 생선의 대가리를 뚝 잘라놓은 듯한 외형에 몸의 끝부분엔 아래위로 뾰족한 지느러미가 뿔처럼 돋았다. 배지느러미도 없어서 얼핏 보면 생선이라기보다는 꼬리가 떨어져 나간 연 같았다. 배는 잿빛이 간간이 섞인 흰색에다 등허리는 푸른색이었다. 거대한 몸에 이목구비는 어쩌면 그리 오종종한지 기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피부 만은 철갑처럼 견고해 보였다. 어설픈 생김새 때문에 개복치는 제대로 생선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름마저 귀한 대접과는 거리가 먼 물고기였다. 복어과 이면서 생선을 낮추어 부르는 치자를 단것도 서러운데 앞머리에 하찮다는 뜻을 가진 개 ..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살을 가르는 뱃머리에 올라서서 가뭇없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수년 전에 보았단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서, 언젠가는 다시 와봐야지 하면서도 마음 같지 않았다. 내 눈을 멀게 하여 다른 꽃들은 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 동백꽃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섬에 닿자 다급해진 마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육지로 돌아가려고 죽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와 섬을 둘러싸고 있는 동백 숲을 울려다본다. 오늘도 언덕배기에 무더기로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한껏 들뜬 걸음걸이로 언덕을 올랐으나 기대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서 꽃이 피려다가 멈춰 버렸을까. 동백터널에는 꽃망울조차 맺지 않았다.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절벽에는 바람이 데려다 놓은 파도만 하얗게 기어오른다. 섭섭함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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