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이 글은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끓이고 또 먹어온 나의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시작했는데, 도입부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면과 분말스프를 넣고 나서 4분 30초 정도 더 끓이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센 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류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불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 면이 불으면 국물이 투박하고 걸쭉해져서 면뿐 아니라 국물까지 망친다. 또 물은 550ml(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00ml(4컵) 정도를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하게 끓는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기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화산 터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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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내 마음속에는 국악의 장단이 일어선다. 일어선 장단이 흘러가면서 나는 한 글자씩 원고지 칸을 메울 수 있다. 이 리듬감이 없이는 나는 글을 쓸 신명이 나지 않는다. 내 몸속에서 리듬이 솟아나기를 기다리는 날들은 기약 없다. 그런 날 나는 때때로 술을 마시거나, 자전거를 타고 강가로 나간다. 휘몰이 장단으로 글을 쓸 때, 내 사유는 급박하게 솟구치는 언어 위에 서려서, 연결되거나 또는 부러진다. 사유가 부러지고 다시 이어지는 대목마다 문장이 하나씩 들어선다. 이런 문장들은 대체로 짧고 다급하다. 문장은 조바심치면서, 앞선 문장을 들이박고 뒤따르는 문장을 끌어당긴다. 휘몰이로 몰고 나가는 문장은 거칠다. 나는 이런 문장을 한없이 쓰지는 못한다. 힘이 빠지면 내 문장은 중모리쯤으로 내려앉는다. 중..
유방성형수술을 받은 여자들이 집단 부작용을 일으켜서 우리나라 젊은 여자들의 젖가슴이 크게 망가져버렸다고 한다. 젖퉁이를 크고 팽팽하게 만드느라고 그 속에 실리콘이라는 이물질을 넣었는데 모양은 도톰해졌지만 좀 지나니까 진물이 흐르고 염증이 깊어져서 아예 젖을 도려내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TV 뉴스를 보면서 아깝고 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자들의 젖가슴이란 그 주인인 각자의 것이고 그 애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신라금관이나 고려청자나 백제금동향로보다 더 소중한 겨레의 보물이며 자랑거리다. 여자들은 누구나 다 한 쌍의 젖가슴을 키워내서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젖가슴은 더욱 보편적이고 더욱 소중한 일상의 보물이며, 민족적 생명과 에너지의 근본인 것이다. 희소가치가 없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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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하늘이 몸을 연다. 주산主山이 붉은 눈을 뜬다. 크고 작은 무덤들이 섬처럼 떠 있는 산등성이에도 햇발이 비친다. 시공간을 넘어 천년을 오갈 수 있는 길, 왕릉 길 문턱을 조심스레 넘어선다. 과거를 잇는 탯줄 같은 좁은 길이 산잔등까지 이어진다. 낯익은 듯 낯선 땅. 태고의 숨소리로 가득한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잿빛으로 박제된 옛 도시 곁에서 흐르고 있는 오늘의 풍경이 기묘하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길에서 문득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길 중간 중간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볼 때다. 천오백 년이 넘도록 비바람에 씻기고 깎이면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은 무덤은 단순한 비경이 아니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였다. 이채로..
번 역 문 산에 올라가 옥을 캔 뒤에야 범을 만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바다에 들어가 진주를 캐낸 후에야 물속의 위험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괴물이 작은 못에서 고통당할 때 기린과 봉황이 어찌 하늘 못의 용보다 어질지 못했겠는가? 그들이 이 괴물에게 어질지 못했던 것은 작은 못에 사는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고 또 구해 줄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저 하늘 못의 용 또한 어찌 기린과 봉황보다 어질었겠는가? 그가 괴물을 도와준 것은 분명 하늘 못의 용도 작은 못에서부터 자라 그 재주를 이루었기에 괴물의 고통을 잘 알았던 것이다. 괴물의 고통을 잘 알고 도와줄 방법이 있었는데도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하늘의 처벌을 못 면했을 것이다. 신기하구나! 이 괴물이 기린과 봉황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괴물이 비..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 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간밤의 그 미칠 듯한 슬픔과 미움과 무질서와 악다구니 속에서, 그래도 배가 고파서 집어먹은 두부김치며 낙지국수며 곱창구이가 똥의 원만한 조화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반쯤 삭아서 가늘게 새어나오고 있다. 이런 똥의 냄새는 통합성이 없다. 덜 삭은 온갖 재료들이 저마다 제각기 덜 삭은 비명을 질러댄다. 그래서 이런 똥의 냄새는 계통이 없는 아우성이다. ..
자전거는 땅 위의 바퀴다. 자전거는 갯벌을 지나서 물 위로 갈 수 없다. 자전거는 늘 갯벌에서 멈춘다. 그리고는 갈 수 없는 먼 바다를 다만 바라본다. 나는 어느 날 갯벌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늘 바라보기만 하던 바다로 나아갔다. 항구에서 연근해 어선을 탔다. 어선의 갑판에 널린 물건들은 지저분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어선은 그 무질서해 보이는 모습 속에 가지런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어선의 갑판에는 필수 불가결한 물건들만이 정확한 제자리에 놓여 있는데 그 전체의 모습은 어수선해 보인다. 내가 탄 배는 병어 잡이를 주목적으로 삼는 배였지만, 그물을 걷을 때마다 새끼고래에서 꼴뚜기까지 다양한 생선들이 올라왔다. 그 배에서 4박5일을 지냈다. 내가 탄 배는 10박 11일의 일정이었다. 흔들림에 약한 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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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는 마을. 내성천이 삼면을 휘감고 도는 물도리동 마을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다. 무섬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그제야 사람들이 발붙이고 사는 곳이란 현실감이 온다. 마을에는 반가의 기품이 흐르는 고택이 여러 채 있다. 세월의 화살을 비켜간 듯 정정한 집들은 그 후손이 거주하는 곳도 있다. 내 발길은 마을의 한 집 앞에서 멈췄다. 만죽재 고택 바로 옆의 김덕진 가옥이다. 성채처럼 견고해 보이는‘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앗간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구조다. 남정네들의 공간인 사랑채와 여인들의 거소인 안채가 한 몸처럼 붙어있는 게 독특했다. 규방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탓에 고졸한 맛은 덜하다. 하지만 거처하는 사람의 불편을 담보로 하는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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