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처럼 눈은 작은 창을 향한다. 그러다 이내 텔레비전으로 돌리고 만다. 더 이상 그 창을 그윽하게 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즈음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이 느낄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난리법석 속에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 남편도 출근하고 설거지에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면 오전의 전쟁이 끝난다. 그제야 나른함이 물려오고 습관처럼 커피를 담아 들고 낮은 탁자 앞에 털썩 앉는다. 늘 보아왔던 작은 창밖의 세계, 나는 그곳을 어느 유명한 화가가 그린 명화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라져버린 그곳에 더 이상 눈을 둘 수가 없다. ‘노르웨이 숲’이라고 불렀던 그곳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숲은 한낮에도 어둑해 보일 정도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이기에, 마치 은..
인터넷에 올라온 이탈리아 여인의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끈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에게 일 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몸의 일부라도 떼어주겠다는 기사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서른여덟 살의 아들이 다시 웃음을 찾는다면 자신의 신장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아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겠다는 모성애에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의 마음은 동서를 막론하고 다 같은 모양이다. 그저께 조카의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낯선 풍경을 경험했다. 온 가족이 출동해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했던 예전의 졸업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주인공들이 비워둔 자리에는 모진 늦추위만이 맴돌고 졸업식은 그저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진행되었다. 대학 졸업은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여 당당히 사회를 향해 내딛는..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산속에 바다가 펼쳐졌다. 육중한 전각을 떠받치는 기단에 게와 거북이, 온갖 물고기가 바다를 가로질러 뒤따른다. 기단과 기단으로 이어진 사다리 문양은 틀림없는 배의 용골이다. 측면 바다에 그려진 용비어천도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서 바다를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그 기묘함에 조심스럽고 엄숙해진다. 계단에 새겨진 성난 파도는 금방이라도 산을 삼킬 듯하다. 파도를 타고 한 치 흔들림 없이 굳건히 자리 잡은 전각은 극락전이며 극락정토로 안내하는 반야용선이었다. 극락전을 세울 때 이미 반야용선 사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극락전(보물 제836호)이 자리한 곳은 청도 화양읍 송금리 대적사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다시 중창하는 등 전란 때마다 고초를 겪었으며 지..
낮에 느끼는 애로티시즘은 시각적이고 밤에 느끼는 그것은 다분히 촉각적이다. 맞는 말이다. 낮에는 보이는 눈이 먼저 작전을 꾸미고, 밤에는 느끼는 손과 몸이 임무를 수행한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있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는 구절도 눈을 경계하는 낮의 말씀이지 밤의 에로스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성경을 읽을 때 이 구절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온갖 상념에 빠져들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어 29절에는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또 오른 손이 그러거든 찍어 내버리라." 고 경고하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마음속으로 간음을 하거늘 '빼어 버리고 찍어 내버리라'했으니 어떡하면 좋아요.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독생자 우리..
눈이 보는 대로 귀가 듣는 대로 마음에 물결이 일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몸이 벌떡 일어나 마음더러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동생이 형의 손목을 잡아 이끌듯이 몸이 마음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중국 육상산陸象山이나 왕양명王陽明같은 심학心學의 철학가들은 마음이 몸을 주재한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몸도 마음을 선도先導할 수 있는 것 같다. 공연히 울적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동네의 목욕탕에라도 들어가 보라. 뜨거운 물에 몸을 한참 담그었다 나오면 마음이 한결 상쾌해지는 것이다. 날씨마저 울듯이 꾸물한 날에는 더운 구들목을 지고 한나절 뒹굴다 보면 마음의 울결도 어느새 풀어지고 만다. 마음이 앓아 눕고 싶은 날은 그래서 몸이 먼저 쉰다.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따라서 가벼워지는 것이다. 아파..
우리 집 작은 방 벽면에 수묵화 한 점이 걸려있다. 사방이 겨우 한 뼘 남짓한 소품인데 제목은 이다. 조선조 중기 이정李禎이란 사람이 그린 그림의 영인본이다. 오른쪽 앞면에는 수초水草가 물살 위에 떠 있고 어깨에 도롱이를 두른 노인이 막대를 비스름하게 쥐고 있다. 간단하면서 격조格調높은 그림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배 한 척이면 그것이 실경實景이 되었건 그림이 되었건 간에 무조건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 문화재보호협회에서 보내준 안내문을 보게 되자 곧바로 달려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잔잔히 흐르는 물살, 그 위로 떠가는 시간. 그러한 강물과 마주하게 되면 이내 서사정 '逝斯亭' 이 떠오르고 그 다음으로는 '가는 자 이와 같은가' 했다는 공자의 그 말이 생각나곤 ..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화사한 봄기운에 떠밀려 가볍게 길을 나선다. 고향 마을에서 멀지 않은 성밖숲이 나를 부른다. 성밖숲, 왕버들에 가만히 손을 대어 전설을 듣는다. 투박하고 거친 세월이 손끝에 전해온다. 자세히 바라보노라면, 밑둥치가 마치 얼굴이 동그란 전설 속의 아이가 왕버들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나무의 정령이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숲길을 걸으면서 오랜 시간을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자연의 소리에 이끌려 선석사로 방향을 잡았다. 선석사 전경을 살피다 특이한 법당이 눈에 띄었다. 태실법당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전각이다. 다소곳이 합장을 하며 태실법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를 봉안한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산실의 비릿한..
우리 집에는 의자가 많다. 혼자 앉는 의자, 둘이 앉는 벤치, 셋이 앉는 소파…. 언제부터 우리 집에 그렇게 의자가 많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소용이 있어서 사들였을 텐데, 정작 우리 집에는 한 개만 있으면 족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려앉아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 비어 있는 의자들이 하품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안돼 보여, 심심한 촌로 뒷짐 지고 마을 가듯, 이 의자 저 의자에 가서 그냥 등 기대고 앉아 본다. 의자의 사명은 누구를 앉히는 것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비어 있는 의자에 앉힐 사람들을 돌려가며 초대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그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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