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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지방을 밟고 넘는다. 바닥에 경사면이 느껴진다. 움푹 닳아 파인 면과 닳지 않아 불룩한 바닥 면이 시차를 두고 신발에 닿는다. 올려다보니 정문에 이인문(履仁門)이란 현판이 당당하게 걸려있다. 인(仁)을 밟고 있는 내 발끝이 잠시 무거워진다. 수봉정(경북기념물 제102호)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자리한 수봉 이규인의 고택이다. 수천 평 면적에 수봉정, 홍덕묘, 전사청, 열락당, 무해산방, 중간 사랑채, 안채, 곳간 등이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지형 따라 둘러쳐진 담장이 이웃과 인정을 나누었던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경북문화재로 지정한 후 수리한 공간과 세월 따라 무너진 담벼락에서 지난날 융성했던 가문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불국사 가는 한적..
앤딩크래딧의 검은 바탕에 하얀 찔레꽃이 겹쳐보였다.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그래서 울었다고 절규하는 노래가 있다. 처음에는 조용히 남정네 혼자서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읊조린다. 그러다 점점 톤을 높인다. 혼자로는 성에 안 차는지 대규모 합창단과 함께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프다고, 그래서 울었다고, 목 놓아 울었다고 울부짖는다. 왜 슬픈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질이 없었다. 오래 전 그 노래를 들으며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는 남정네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 했었다. 비극적 전설을 차용했다거나 배고픈 민중의 한을 노래했을 거라는 문제는 크게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저 시적 화자의 지나친 감성을 탓하던 내가 찔레꽃 향기가 왜 그리 슬프다고 울었는지 이해하게 된 건 다행인가? 내가 살던 아파트 울타리는 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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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솟을대문의 빗장을 푼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대문이 스르르 열린다. 오수에 잠겼던 고택이 기지개를 켜며 낯선 이에게 품을 내어준다. 천하의 길지, 운문산 시루봉 기스락에 자리 잡은 내시 종택이다. 조선 마지막 내시로서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낸 김일준의 집이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되었으며 운림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문에 들어서니 왼쪽 편 큰 사랑채가 안채를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대문 맞은편으로는 중 사랑채가 안채를 지키는 호위무사인 것처럼 가로로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 사랑채 마지막 칸에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인 중문을 달았다. 큰 사랑채와 중 사랑채에서 안채로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내시 고택에 어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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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영양 두들 마을에 갔다. 입구에서 보면 앞집 뒤로 뒷집의 지붕이 보이는 지형이다. 골목을 훑고 가는 바람이 가만가만 지나간다. 담장 안은 소란한 것을 멀리한다는 듯 고요가 내려앉은 처마가 푸르게 살아있다. 저절로 발소리를 죽이고 매무시를 단정히 하였다.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해설사를 만났다. 그는 장계향이 반가의 여인으로 시가와 친정을 일으킨 서사, 시·서·화에 빼어난 실력, 자녀 교육에 있어 학식보다 착한 행동의 실천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아낌없는 지원을 한 군자라고 열변을 토했다. 한 가지를 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방면에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니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유교적 환경이 선한 영향을 주었겠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수양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숨찬 겨울을 건너온 동백이 뚝, 하고 모가지를 꺾으면 통영으로 봄 마중을 간다. 이르게 핀 동백이 막 목숨을 다할 즈음 애쑥은 올라오고 도다리 몸에도 제법 살이 오른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애쑥은 아직 초록을 띠지 못하고 이파리 가득 솜털이 하얗다. 두 닢 사이로 봄 햇살이 쏟아지고 바다 둔덕에 애채들이 잎을 틔우면 통영 바다색도 한결 순해진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조각공원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금방이라도 멸치 떼들이 튀어 오를 듯 눈부시다. 겨울 건너, 봄까지 산란을 마친 도다리 몸은 이때가 가장 차지고 쫄깃하다. 부풀대로 부푼 봄기운이 도다리 몸속으로 스며들었는지 적당히 기름기가 돌고 연해진 살이 애쑥을 만나면 그 맛이 순식간에 폭발한다. 이 폭발적인 맛을 보려면 중앙시장의 번잡함을 지나..
산비탈 공지에 큰 느티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다. 속은 텅 비고 썩어, 죽은 등걸 같은데, 위의 가지들을 꽤 번성해서 넓게 녹음(綠陰)을 짓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 나무 밑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슬그머니 졸음이 와서 책을 덮었다. 머리 위에서 쏴! 하고 시원한 바람 소리가 스쳐왔다. 비가 오다가 뚝 그친 뒤에 쏴 하고 일제히 우는 매미 소리를 연상케 한다. 잔 휘초리들이 바람에 씰리는 소리다. 위를 쳐다보니, 파란 하늘 아래 나무잎들이 물 속의 피라미 새끼들같이 나부끼고 있었다. 파들파들 떨며 나부끼는 잎 사이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뭇 새소리와도 같은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빽빽한 잎과 잎, 가는 휘초리와 휘초리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인 듯했다. 가만히 귀 모아 들으면 바람 소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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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 월영교를 건넌다. 조선 시대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나무다리이다. 먼저 떠난 지아비를 그리워하는 여인의 애틋한 절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물은 바람 따라 유유자적 노닌다. 다리 마주한 저편에 밥집이 보이는 것을 보니 마침 점심때인 것을 알리는 듯하다. 안동 하면 헛제삿밥이지 하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기와를 올려 고풍스러운 두 밥집이 나란히 이웃해 있다.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 과연 선비의 고장답다. 어느 집이나 내가 살던 고향의 옛집을 닮았다. 자리에 앉자 밥보다 먼저 구수한 숭늉이 나온다. ‘숭늉’이라는 말 그 자체가 예스럽다. 숭늉은 제례를 행할 때 반드시 뒤따르는 물이다. 옛날에는 ‘익은 물’이라 해서 숙수라고 불렀다.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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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구름이 지구를 수백만 번 감고 돌았으리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사계절은 또 몇 번이나 오고 갔을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감각이 없어지고 주변의 풍광이 생경할 정도로 바뀌어갈 즈음, 낯선 두려움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도 꿋꿋이 돌 위의 글씨를 붙잡고 버텨온 것이었다. 깊은 땅에 거꾸로 처박혀 있어서 숨이 안 쉬어질 때면, 차분히 호흡을 고르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으리라. 본인의 몸통에 아로새겨진 그때의 기록을 품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1988년 추운 겨울에서야 땅속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니, 잘 견뎌냈다고 혼잣말을 내뱉어보았다. 처음 만난 세상은 참으로 이질적인 시공간이었을 터. 기뻐할 새도 없이 포클레인으로 온몸이 들려져 길옆 개울에 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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