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공직에 있을 때다. 차관이 국장을 부르더니 장관의 경고를 전했다. ‘회의 때 장관 뜻에 반反하는 의견을 말하지 말라.’였다. 귀를 의심하고 넋을 잃은 국장은 장관과 다른 의견을 말했던 두어 번의 일을 더듬어낼 수 있었다. 대면의 일자(一) 충고와 삼자를 건너는 갈지자(之) 힐난詰難은 모양새만 봐도 네 배의 강도强度로 세게 꽂힌다. “중지衆智를 모으자는 회의 아니던가요?” 목에 걸린 가시를 내뱉듯, 국장의 대꾸는 받은 힐난의 충격보다 더 불손했다. 처신을 살피게 해 주려다 머쓱해진 상관의 면전에 뱉어낸 부하의 다음 한 마디에는 더욱 가시가 돋아있었다. “목에 칼이 와도 해야 할 말은 해야지요!” 피의 왕 연산은 신하들에게 신언패愼言牌를 채워 입을 봉쇄하고, 유일하게 진언進言했던 내관 김처선金處..
입은 정교하게 설계된 콘서트홀이다. 그곳에서는 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된다. 막이 오르면 무대 중심에서 주인공인 혀가 상하로 마주보게 놓인 피아노를 앞에 두고 앉아 상아빛 건반을 번갈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물론 훌륭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언제나 뒤에서 성실하게 받쳐주고 있다. 팀파니나 북 등 리듬악기를 연주하는 심장, 첼로나 하프를 켜는 가슴, 바순을 코로 오보에를 목으로 내뿜는 폐…. 공연의 성공 여부는 혀의 신중하고 절제 있는 연주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혀가 박자나 리듬, 화음 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면 공연은 엉망이 되고 만다. 다행히 자상한 창조주께서는 혀를 두 귀와 한 뿌리에 묶어 놓았다. 혀가 연주하는 어떤 것이라도 외부..
그가 쓰러졌다. 육중한 몸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질 못했다. 방과 식탁 사이에 누운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지도 돌아눕지도 못한 채 눈만 껌벅였다. 한쪽 팔과 다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여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의 꿈 내용이었다. 기분 좋은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꿈도 아니었다. 잠에서 깬 뒤, 꿈은 곧 잊혔다. 다만 뭔지 모를 복잡한 일들이 한꺼번에 터졌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어딘가로 한없이 쫓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주위 사물들이 형체 없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쓰러져 있는 그를 보자마자 왜 꿈이 떠올랐는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예감을 상징하듯 의식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러갔다. 입던 옷 그대로 그는 구급차에 실..
1971년 여름, 나는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 팬 대회에 참석하게 된 기회에, 약 40일 동안 세계 몇몇 나라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다 알다시피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신생 공화국인 에이레의 수도다. 갈 때에는 자유 중국의 타이베이로 해서 홍콩, 이탈리아의 로마, 프랑스의 파리에 들렀고, 올 때에는 미국에 들러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시카고를 돌아 보고, 일본의 도쿄를 거쳤다. 그 중, 자유 중국과 일본은 나라에서 퍽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같은 아시아 국가들일 뿐만 아니라, 전에도 가 본 일이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이라는 데서 오는 흥분이나 불안은 느끼지 않았으나, 그 밖의 나라들에 대해선 적잖은 흥분과 불안을 함께 느꼈다. 아니, 흥분보다 불안이 앞섰다고 하는 거시 옳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불안..
학이 받쳐 든 술잔 여기 술잔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술잔은 적어도 백유여 년을 창공에 높이 떠 물 흐르듯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언제까지나 떠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정말 술잔이 창공에 떠서 물 흐르듯 흐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떠 있는 바에야 어찌하랴. 일찍이 이 땅에 한 무명 도공이 있어, 그 도공의 슬기가 능히 이러한 이적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내 눈앞에 선연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술잔은 정작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는 그 무명 도공이 나고 살고 또 죽고, 그리고 죽어서 묻혀 있을 그 어느 외딴 산골짜기의 흙임에 틀림없다. 종생토록 고된 노역으로만 다루어진, 그 곰의 발같이 생긴 무디고 억센 손, 그 손으로 이 흙을 빚어 구워 낸..
늦가을이긴 해도 11월은 어린 우리들에게 오싹하리만큼 추웠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폐허처럼 황량했고, 누렇게 말라가는 플라타너스 잎의 버석대는 소리에 더욱 스산하던 그날, 우리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폐병을 앓던 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아무리 슬픈 생각을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다. 심보가 고약한 것이 탄로날까 봐 침을 찍어 바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방과 후에 선생님을 따라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이 순자의 집으로 갔다. 시장 통 어물전 뒤에 대문도 없는 가난한 단칸방 앞에서 순자의 어머니는 아이가 입던 옷가지와 책가방을 태우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 화장했심더. 조금만 더 댕기믄 졸업인데 망할 기집애..
비는 내리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자진(自盡)한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직립으로 생을 마치는 비의 강렬하리만치 단순한 생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고개를 숙인다. 대지를 북가죽처럼 두드리는 비의 기세를 바라보면서 나무가 곧다, 깃대가 곧다, 탑이 곧다, 사람도 그러할 수 있다고 되뇌어 본다. 수평이 주는 평온을 마다하고 수직의 고통을 잃지 않으려는 것은 지조일까, 오기일까. 여름의 무더위를 식힐 겸 정자의 고향인 함양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함양으로 가는 길은 몇 구비를 돌고 돌았다.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도 뱀처럼 휘돈다. 물길과 찻길이 굽으니 마을 골목도 반달처럼 굽고 주민들의 발걸음도 느릿해 보인다. 백 개가 넘는다는 정자조차 눈발같이 흩뿌리는 계곡수 곁에서 다..
“아이고, 온 집안에 잎사귀들 뿐이네.” 아내는 청소를 하면서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온 집안 곳곳에는 펼쳐진 식물도감과 주워온 나뭇잎들로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나는 창밖의 팔공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들은 그 숲속에서 주워 온 것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평생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아왔으면서도 결국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도 부모님 직업을 조사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농사짓는 사람 손들어.”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반 아이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대충 훑어보시고 이번에는..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