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휘황한 네온사인도, 대형마트도, 요란한 차량의 행렬도 없다. ‘열려가 참깨!’를 외치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나. 제복 입은 경비원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 내리는 고층빌딩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길목 어름에 구멍가게 하나, 모퉁이 뒤에 허름한 맛집 하나 은밀하게 숨겨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일상의 맥박삼아 두근거리는, 웅숭깊고 되바라지지 않은 샛길이어서 좋다. 골목은 자주 부끄럼을 탄다. 큰 줄기에서 뻗어 나와 섬세한 그물을 드리우는 잎맥과 같이, 골목도 보통 한길에서부터 곁가지를 치고 얼기설기 갈라져 들어간다. 하여 골목의 어귀는 대충 크고 작은 세 갈래 길을 이루기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골목들은 입구 쪽을 어수룩이 숨겨두기를 좋아한다. 한두..
우리집과 등성이 하나를 격한 야학당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편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에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 가는 소리와, 아홉 시 반이면 파해서 흩어져 가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틀에 한 번쯤은 보던 책이나 들었던 붓을 던지고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에서 남녀 아동들이 80명이나 들어와서 세 반에 나누어 가르친다. 물론 5리 밖에 있는 보통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는 극빈자의 자녀들인데 선생들도 또한 보교를 졸업한 정도의 청년들로, 밤에 가마니때기라도 치지 않으면 잔돈 푼 구경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네들은 시간과 집안 살림..
흰 구름이 벽공에다 만물상을 초 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만경에 굼실거리는 청청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잡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 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다가 탄식하였다. 서녘 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배는 아산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가치내'라는 조그만 섬에 와 닿았다.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만 한 ..
핸드폰을 해지하러 대리점에 갔다. 주인 잃은 핸드폰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해지 전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전원을 켰다. 다시 생명을 얻듯 불빛이 반짝였다.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왔다. 잘못 누른 걸까. 재빨리 소리를 줄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음악 파일이 재생 중이었다. 꿈속에선 보이나 봐. 꿈이니까 만나나 봐. 그리워서 너무 그리워. 꿈속에만 있는가 봐. - ‘부활’의 노래. ‘생각이 나’ 남편의 핸드폰은 다시 살아나 노래를 불렀다. 가슴이 일렁거렸다. 눈물샘은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대리점 안은 고객들로 소란스러웠고,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숙여, 흘러내린 머리카락 안으로 숨었다. 가려진 작은 공간에서 노래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사진이란 빛이 잠시 머물다간 흔적이라 생각했다. 가까운 친구가 사진작가여서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는 되었지만 그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순간의 흔적을 담아 언제든 그 순간을 재현할 수 있는 것 정도가 내가 유추해 낼 수 있는 사진의 가치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읽은 책의 한 문장에 순간적으로 사로잡혔다. “사진의 가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내는 데에 있다.” 소설가 정찬의『새의 시선』에 실린 대화체의 문장이다. 그는 이것이 영국의 저명한 작가인 존 버거의 말이며 ‘사진의 가치’가 아니라 ‘사진의 권력’이라 말했다고 정정해준다. 유독 이 짧은 글이 한순간에 와 닿았던 것은 요즘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나의 짓거리라 해야 할지 마음의 행태라 불러야 할지 모를 일 때문이다...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경기만 등대를 찾아' 중에서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지나던 발걸음을 멈춘다. 골목시장 포장집에서 붕어빵 틀을 치우고 어묵 솥을 걸었다. 주황색 포장 천막에 '오뎅끼데스까'라고 쓴 비닐 간판이 재치 있다. 동강 난 무가 뜨거운 육수 속에 담기고 굵은 대파 사이로 청홍초가 띄워졌다.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잠긴 어묵들이 얌전하다. 뿌옇게 피어오르던 김이 바람에 흩어져 내린다. 마치 자욱했던 물안개가 사라지듯 가뭇없다. 짭조름한 물 냄새가 난다. 때로는 냄새가 시간을 돌려놓기도 하는 법. 내게도 순식간에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음식 냄새가 있다. 강물같이 파란 재첩국 내음을 맡으면 "재칫국 사이소" 외치며 발품을 팔던 어머니의 여윈 목소리에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첫 소풍 때 아버지가 조선간장을 뿌려 토관같이 둘둘 말아 주었던 김밥의 고소함은 아직도 코..
알랭이 그의 "행복론"에서, '파리의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말은, 언제 생각을 해 보아도 재치 있고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기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뒤를 이어 기다리고 있고, 직책상 그것을 처리하지 않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 하품을 하거나 적적한 느낌이 들 때는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이란 일을 하는 데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사실, 일에 열중하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에 일종의 리듬이 생겨 쾌적한 느낌을 맛볼 수 있고, 일한 자리가 생기게 되므로, 역시 일종의 정복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특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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