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저자에 갔던 아이가 창포 한 묶음을 사들고 왔다. 우리의 모든 세시 풍속이 날로 잊혀져 가는 요즘 세월에 그나마 단오절을 기억해서 창포를 베어다 팔아 주는 아낙네가 있어 주었던가 싶으니, 우리 겨레의 멋을 말없이 이어 주는 숨은 정성이 아직도 우리 둘레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시켜 창포를 삶아 그 물을 뜰 모퉁이 작은 상추밭에 두어 밤이슬을 맞히게 하고, 목욕탕에 물을 넣도록 일렀다. 이슬 맞힌 창포물을 섞어 머리를 감고, 또 상추 잎에 내린 이슬방울을 받아 분을 찍어 아이에게도 발리고 나도 화장을 했다. 가르마엔 분실을 넣고, 창포 뿌리엔 주사를 발라 곤지를 찍었다. 올해 여든이신 어머님께서도 화장을 시켜 드렸더니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셨다. 밥..

화목을 손꼽을 때 나는 먼저 매화를 생각한다. 겹겹이 둘러싼 겨울의 껍질을 비집고 맨 먼저 봄을 밝혀든 매화 봉오리의 연연하면서도 안으로 매운 동양의 여성 같은 정조! 바야흐로 동터 오르는 여명을 받으며 눈바람을 이겨 선 매화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고향의 산하를 마주한 듯 반갑고 낯익은 모습에 눈물겨워 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날로 그 모습을 변모해 가는 이 세월! 접목접지로 하여 화목마저 그의 본질을 잃을 만큼 색향이 요란해져 가고 있는 이 판국에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기를 새벽하늘에 풍기며 아직도 얼어붙은 황량한 뜨락을 불 밝힌 매화! 무리를 멀리한 그 고독은 어쩌면 빈 들판의 눈얼음을 뚫고 움돋는 민들레 같은 눈짓으로 내 가슴에 밀착해 온다. 먼저 사랑을, 먼저 다사함을 소곤대듯 가냘픈 애원..
소만(小滿)에 이르렀다. 여름 문턱에 들어선 후 처음 만나는 절기로 햇볕이 많고 만물이 점점 생장하여 가득 차오른다는 의미를 가졌다. 실제로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는 시기,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던 꽃이 제 임무를 다하자 나무에게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이 져야만 하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만은 멸(滅)에서 생(生)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시기이다. 도도한 봄날이었다. 담벼락에 줄지어 서서 오줌을 누는 개구쟁이들처럼 노란 개나리가 새실거렸다. 목련은 나뭇가지 위로 촛대를 세우고 심지에 불을 밝혔다. 돌 틈에 앉은 영산홍도 한껏 타올랐다. 뒤이어 조팝과 이팝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하얀 튀밥을 쏟아냈다. 배와 사과며 복숭아나무에도 꽃이 피어 서로의 존재를 알렸다. 꽃을 보..
재채기 소리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들려온다. 재채기 한 방에 창문이 덜커덩거리고 이 여파로 아파트 담벼락까지 흔들리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 몸속에 장착된 대 포탄. 버튼을 제 맘대로 조작하는 천지무법자 하나가 분명 몸 어딘가에 살고 있다. 심심하면 쏘아대며 이웃인 내 마음에 난동을 부린다. 뉴스에서 보니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견디다 못한 아래층에서 막대기로 천장을 쑤셔댔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 이웃 아파트에서는 한밤중에 어느 아저씨가 코뿔소처럼 씩씩대며 윗집을 들이박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한쪽이 이사를 가는 일이 일어났다. 어디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우발적 칼부림까지도 일어난다니 일상이 테러 밭 같다. 발자국 소리, 물 내리는 소리, 가전제품 돌아가는 소리에 비하면 재채기는 시답잖은 소리인가. 그..

불 꺼진 창문 앞을 오랜 시간 서성이다 돌아온 날이면 압화 접시를 꺼내 든다. 어딘가에서 눈비 맞으며 피었던 꽃잎들인가, 아니면 어느 길가에서 철없이 피어 원도 한도 없이 향기를 뿜어왔던 꽃들인가. 하얀 접시 위에 다시 피어난 꽃들과 눈을 맞춘다. 물관으로 들이마시는 숨을 내뱉기가 힘이 들었다. 아마 심장이 짓눌리고 숨통이 조여들어, 마신 햇살과 바람이 전신을 통과할 때 여리디여린 몸피는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의 힘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왔다. 누군가 모로 뉘어주어 바늘구멍 같은 숨통이라도 열어주었으면 싶었다. 살고 싶다는 절규의 시간도 이미 사그라졌다. 이대로 눌려야 한다. 산에서 들에서 바람 따라 햇살 따라 어우렁더우렁 지내왔던 시간도 있었지만 비..

나는 집을 세 채 가지고 있다. 평소 집을 관리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산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입을 댄다. 참 욕심이 많다느니, 고생을 사서 한다느니. 하나 정도는 처분하고 홀가분하게 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모르는 말씀이다. 나의 집들은 모두 맞물려 있어 한 채를 포기하면 나머지도 힘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하나도 포기할 수 없고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긴밀할 때 삶이 탄탄해지듯 나의 집들이 그렇다. 첫 번째 집은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이다. 식구들은 집을 소유하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 응당 모두 기뻐할 줄 알았는데 나의 기대가 빗나갔다. 대출이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안정된 직장 없이 빚을 갚아간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모든 것에는..

세상 아내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남편들이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늘 불평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건성으로 들어 넘기는 것 같아도 출근할 때 던진 아내의 한 마디는 종일 남편의 뇌리에 박혀 있게 마련이다. 반짝이는 동전처럼. 여기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깨 한 섬 값이 5만 원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깨장수 허씨는 대문을 열고 나오다 말로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아무래도 한 줄금 할 것 같은 하늘이다. 안에 대고 소리를 친다. "여보, 우산." 잠시 뒤 아내가 검정 박쥐우산을 들고 나왔다. "우산 잊지 마세요." 아내가 당부했다. 금년 들어 벌써 두 번이나 우산을 잃어버렸으니 아내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허씨는 듣는 둥 마는 둥 행하니 골목을 나섰다..

외할머니 눈썹은 초생달처럼 둥그런 데다 부드럽게 송글송글 겹쳐진 편이었다. 어머니의 눈썹은 외할머니의 초생달 같은 눈썹을 산산(散散)이 짝 뿌려 놓은 듯 눈두덩이까지 부드러운 털이 더욱 송글송글한 편이었으나 인생을 호소(呼訴)한 듯한 고운 눈빛은 하나의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모계(母系)를 닮은 것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여학교를 갓 나오던 해였다. 그 무렵부터 나는 얼굴에다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엇보다도 화장용 크레이언으로 눈썹을 그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스스로 숱이 작은 눈썹에 대하여 어떤 열등감을 느꼈든가, 눈썹이 솔밭처럼 짙은 딴 여성을 부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발관에 가서 면도를 할 때마다 눈썹을 지우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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