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ㅡ 봄비는 겨우내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을 두드리며 온다. 비들은 오, 저 "시체들의 창고"(파블로 네루다)인 땅을 맹인이 지팡이로 두드리듯 두드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얼어붙은 땅은 풀리고 땅속에 숨은 씨앗들은 싹을 땅거죽 밖으로 밀어낸다. 봄비가 충분히 내리고 난 뒤에야 작약의 붉은 움이 돋고 모란의 묵은 가지들에도 꽃눈이 돋는다. 들창 너머로 혼자 내다보는 봄비는 쓸쓸하다. 곡식이 있으면 밥을 끓이고 곡식이 끊기면 굶는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은 책 읽는 것이다. 깊은 산속 쑥대 갈대 아래 숨어 사는 오류선생이나 다름없다. 이승의 인연들을 끊고 시골구석에 들어와 빗소리나 키우며 사는 건 그윽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다만 조금 적적할 뿐이다. 살을 맞대고 체온과 냄새를 킁킁거리며 잠들 이가 곁에 없..

아, 드디어 집이다. 늦은 밤, 곤죽이 되어 택시에서 내렸다. 오늘도 하루라는 숙제를 마쳤다. 불 꺼진 아파트의 창들, 새벽의 도시는 어쩜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잠들어 있을까. 하수구로 흘러드는 물줄기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홀짝홀짝 물을 마시며 사람 눈치를 살피는 그 가여운 목선이 아릿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정오에 멈춰있다. 내가 어금니로 음식을 으깨어 먹기 바빴던 그 시간, 이 녀석은 소리도 없이 죽었던 거다. 그 놈의 밥이 없어서. 더운 물에 몸을 씻고 자리에 누운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아침잠을 깨우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맞다, 오늘이 월급날이었지. 잠결에 실눈을 뜨고 액수를 확인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때 되면 꼬박꼬박 통장에 밥을 넣어주니. 덕분에 ..

매일 아침 하던, 등산이라기보다는 산길 걷기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첫눈이 온 후부터는 그만두었다. 산에 온 눈은 오래 간다. 내가 다시 산에 갈 수 있기까지는 두 달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걷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지만 눈길에선 엉금엉금 긴다. 어머니가 눈길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치신 후 칠팔 년간이나 바깥 출입을 못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생긴 눈 공포증이다. 부족한 다리 운동은 볼일 보러 다닐 때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 타느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벌충할 수 있지만 흙을 밟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맨땅은 이 산골 마을에도 남아있지 않다. 대문밖 골목길까지 포장돼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안마당을 몇바퀴 돌면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아차산에는 서울 사람들이 새해맞이 일출을 보러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구성진 옛노래가 기타선율에 얹혀 들려온다. 느닷없는 소리에 순간 모두 멈칫했다. 시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첫 제삿날이다. 어머님이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아버님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친척들과 가족에게 들려주시는 것이다. 어머님 짐작에 30여 년 전에 녹음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사십 대 중반이다. 목소리가 낭랑하게 젊다. 시숙부님들은 감회에 젖어 연신 감탄하시며 전축 가까이 다가앉으셨다.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하던 나도 잠시 마루 소파에 앉아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디잉 디딩 딩다다 디딩 당~, 아버님의 기타연주와 노래가 아마추어를 넘는 솜씨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시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다. 시간만 나면 아버님은 안방에서 기타와 건..

우리나라에도 작년 세모에 '텔레비젼'의 대량 월부가 있었다. '텔레비젼'을 놓으면 주부가 일손을 쉬게 되고, 애들의 공부에 지장이 많다는 통폐론에도 불구하고 이에 감연히 한몫 끼인 것은 무엇보다도 어린것이 아직 학령 전이요, 월부라는 편리점에서였다. 방의 크기로 보아 14인치라도 그리 작은 감이 없이 잘 조화가 되고, 더구나 화면이 일그러지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농담(濃淡)도 고르고 음향도 깨끗하여, 이 진귀한 문명의 산물이 내방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족했다. 그리하여 밤마다 저녁을 끝내고는 찾아오는 '팬'도 생기게 되었다. 꼬마도 물론 훌륭한 팬 노릇을 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는 동안에 이 이채로운 텔레비젼도 그리 변변치 못한 우리 살림의 다른 가구들과 제법 어울리게 되어 그대로 자리가 딱 잡히게 되었..

200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오랜만에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고향 집 안채는 먼 친척이 살고 있다. 잠실로 쓰던 아래채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쓰시던 가재도구와 농기구들이 시간이 정지된 채 서 있다. 시대의 흐름에 밀릴 대로 밀린 잠박들도 모퉁이에 높이 쌓여있다. 금방이라도 누에가 기어 나올 것만 같다. 주인을 잃은 채 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잠박들 사이로 얼핏 어머니가 서있는 모습이 겹쳐온다.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층층으로 쌓아 올린 잠박 위의 수많은 누에들이 뽕을 먹느라 여념이 없다. 정겨운 소리이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아침을 맞았다. 직사각형의 잠박은 누에를 칠 때 사용하는 채반이다. 가난이 일상인 시절 농촌에서는 누에치기가 큰 농사 중의 하나였다. 뽕밭이 푸르름으..
떨어진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낚시에서는 연실 나오는데 또 한 사람의 낚시에서는 피라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못 잡은 사람이 연실 잡아대는 사람한테 가서 미끼를 무엇으로 쓰냐고 물었다. 떡밥을 쓴다고 했다. 자기도 떡밥을 쓰는데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무슨 비결이 있지 않느냐며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너무 끈덕지게 조르는 통에 귀찮아서 송충이로 밑밥을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뒷산으로 올라가더니 송충이를 잡아서는 짓이겨 흙과 섞어뿌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밑밥을 뿌리자 이윽고 고기가 잇달아 나오기 시작하고 연실 나오던 사람의 낚시에서는 입질이 끊어졌다. 송충이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낸 그는 빈 도시락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 가득 잡았다...
지공족(지하철 경로우대)이 된지 6년째인 올해 들어서부터 나는 전철을 타면 버릇처럼 노약자석으로 간다. 앉아서 갈 확률이 높은 데다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내 딴에는 아직 다리 힘이 멀쩡해 구태여 노인입네 티를 내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에서 자리가 나도 선뜻 가서 앉지 않았었다. 게다가 노약자석에선 가끔 지린내 같은 기분 언짢은 냄새도 났고, 때로는 낮술에 취한 노인들이 침을 튀기며 시국을 개탄하고 젊은이들을 싸잡아 성토하는 바람에 귀가 피곤해지고 앉아 듣기도 민망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나는 될수록 전철을 타면 중앙으로 가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점차 눈치가 보였다. 꼭 젊은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아 앉는 염치없는 늙은이가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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