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어머니가 화장대 앞에서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칠십 년의 세월이 말해주듯이 하염없이 거친 얼굴이다. 한여름의 밭에서 기미가 올라왔고, 스킨과 로션 없는 생활을 해오면서 요철이 심해졌다. 형광등에 반사될 때마다 초배지(初褙紙) 같은 피부가 아른거린다. 초배지는 초배할 때 사용되는 종이다. 초배가 정식으로 도배하는 정배 전의 애벌도배라면 초배지는 애벌벽지다. 초배지의 특성상 보이지 않는 장소에 작업하기 때문에 벽지보다 허름한 신문지나 부직포가 사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허름한 종이여도 초배하지 않은 벽은 매끄럽지 않고 벽지가 쉽게 떨어진다. 외유내강이라는 한자성어처럼 외부가 말끔하기 위해서 초배지가 내부에서 단단하게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신혼집..

2021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그 집에서 아이가 주로 지내는 놀이방은 나의 일터다. 놀이방 한 켠에 공이 오종종히 모여 앉아 있다. 한데 어우러진 노랑, 초록, 빨강, 분홍색 공이 줄기를 자른 꽃송이를 둥글게 묶어 만든 플라워 볼처럼 보인다. 공을 집어 들어 바닥에 던진다. 저녁 강 물 위로 뛰어오르는 피라미처럼 탄력적으로 튀어 오른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바닥을 칠 때, 공은 제 몸을 딛고 일어난다. 방바닥을 박차고 오른 공이 아치형 발걸음을 뗀다. 그러다 냅다 달음질친다. 공이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준다. 공을 품에 안은 네 살짜리 아이 얼굴에서 분홍색 실타래 웃음이 풀려나온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두 눈에 미음 돌 듯* 그늘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아니던가. 아이를 안아준 공은..
우리 마을 앞 언덕배기에 초가 한 채가 따로 있었다. 대문도 없는 집이었다. 광복 다음 해 봄, 그 지붕에 난데없이 대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꽂혔다. 가끔 그 집 울타리를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온 마을에 안개처럼 울려 퍼졌다. 교인이라야 부인네 예닐곱, 초등학생 대여섯이었다. 대처에서 집사 노릇을 하던 분이 귀향하여 왔다가, 자기 집 마루에 차린 예배당이었다. 집사님은 키가 작고 검은 테 안경에 중절모를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상해에서 귀국한 김구 선생과 닮았다. 그해 여름, 나도 꼬마 예수쟁이가 되었다. 난생처음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목사님 말씀도 들었다. 반백 년이 더 지난 옛일, 이제는 그 초가 예배당의 기억이 아스라하고 집사님의 얼굴도 감감하나, 오직 한 그릇 국수를 얻어먹은 일만은..
남들도 그러기에, 어느 화사한 봄날, 집사람 칠보단장을 시켜서 부부동반 나들이를 하였다. 장안에서도 한복판 명동 거리를 바자니는데, 유리창 속에 벌여놓은 금은보석을 구경하고, 옷가지도 들여다보는 눈요기를 할 만하였다. 청승맞게 둘이서 손을 잡고, 동서남북 기웃거리는 꼬락서니가 오래간만에 상경한 와룡선생, 바로 그 모양새였다. 배가 촐촐하여 아내가 소원이던 자장면을 먹고, 리어카 목판에서 구슬 가방도 하나 골라 샀다. 가난한 남편의 호주머니가 달랑달랑하였으나, 예까지는 아무 탈이 없었다. 안사람은 좋은 남편을 두었다고 행복이 넘치는 듯하였다. 입가심으로 아내가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 비싸다고 되뇌인 커피도 마셨으니 말이다. 사건은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졌다. 어쩌다가 보는 옛친구와 만났다. 서로 가벼운 악수를..

밥 먹듯이 담배를 먹는다고 한다. 모닥불을 피우듯 담배를 피운다고도 한다. 연기를 들이켜니 담배를 먹는다고 하겠으나, 죄다 넘기지 않고 입과 코 밖으로 연기를 품어내니 피운다는 말도 옳다. 먹으나 피우나 매한가지지만, 예부터 우리네 사람들은 대개 담배를 먹는다고들 하였다. 담배 연기는 마시는 연주(煙酒)요 연차(煙茶)이던 것이다. 매운 연기를 먹는 판에 못 먹는 것이 없고 안 먹는 것이 없다. 허구한 날 굶주리고 곯아서인지 먹는 데 이골이 났다. 욕을 먹고 나이도 먹는다. 눈칫밥도 밥이다. 빨래 풀 먹이고 연장에 기름도 먹인다. 어떤 권투 선수는 챔피언을 먹었다고 외쳤다. 옛말에 저 혼자 사또, 현감 다 해먹는다고 나무랐다. 국회의원을 해먹는다는 말은 만 번 옳다. 소금장수 얘기의 첫머리는 으레 ‘옛날 ..

문학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글쓰기에 관한 강의다. 주제는 '좋은 수필 창작론' 이다. 이 강의에 빠져드는 순간 머리에 번쩍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저거다. 그만 그 낚싯바늘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나는 인의(仁義)와 절개(節介)를 존중히 여기는 고장인 경남 고성에서 해방되기 한 해 전 소작농의 집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대독자이신 아버지는 무남독녀였던 어머니를 만났다. 내 밑으로 내리 다섯의 동생을 더 낳은 것으로 보아 두 분의 어린 시절이 각각 무척이나 외롭게 지내셨나 싶었다. 아홉 남매나 되는 많은 가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등짐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는 늘 타지방에 나가 돈을 벌거나 아니면 남의 집으로 삯일을 ..

누구네 집 울타리인지 정갈하게도 다듬어 놓았다. 둘레길을 걷다가 잠시 낯선 집 탱자나무 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울타리도 절반은 탱자나무였다. 나무 윗부분은 빽빽하게 잘 관리되어 담장으로서 훌륭했지만, 아래쪽은 구멍이 숭숭한 허점투성이였다. 멀리 정문까지 돌아가기 싫은 아이들의 쪽문이었고, 지각을 목전에 둔 학생들에게는 구원의 문이었다. 사랑이 묻어나는 점심 도시락이 슬며시 남모르게 넘나들었고, 길 가던 어른들이 곁눈질로 제 아이를 훔쳐보던 감시망이기도 했다. 더하여 아이들이 뛰노는 까르르한 소리가 넘어 나오고, 아지랑이 따라 봄기운이 스며드는 길목이기도 했다. 안과 밖, 학교와 외부를 가르는 담이지만 사실은 경계를 알리는 형식이었을 뿐이었다. 탱자나무가 꼭 무엇을 가로막는 금단..

발암산에 가는 길이다. 영산휴게소에 들렀다. 주차장이 알이 꽉 찬 옥수수처럼 빼곡하다. 봄맞이 여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주말이다. 휴게소 식당으로 들어선다. 생각 했던 것 보다 한산하다. 된장찌개 하나를 주문하고 식당 종업원에게 말을 건네 본다. "관광 성수기인데 장사가 왜 이리 안 되죠?" 노려보듯 눈매가 곱지 않다. 그러더니 이내 체념 한 듯 한숨부터 내 쉰다. “저기를 보세요. 저러는데 장사가 되겠어요?” 벤치 부근에 몇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 저마다 일회용 밥그릇과 국 그릇, 수저를 쥐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밥과 국을 열심히 퍼주고 있다. 화장실에는 기다리는 줄이 삼 십여 미터가 넘는다. 줄도 몇 개나 된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마다 서 너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 어떤 여자들은 아예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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