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酒幕)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향수(鄕愁) / 김용호 바다 저편에/ 산이 있고// 산 위에/ 구름이 외롭다.// 구름 위에/ 내 향수는 조을고// 향수는 나를/ 잔디밭 위에 재운다.// 고향으로 간다 / 김용호 어느 간절한 사람도 없는..
“사랑으로 사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어? 그냥 룸메일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뭐 그리 화내고 흥분할 일도 없더라구.” 결혼한 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친구들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사랑이 식었는지 변했는지,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인지 3개월인지, 드라마 속 불륜에서 주변 누군가의 바람으로 이어진 대토론(?)에서 한숨으로 정리된 1차 결론이다. 대화에 끼지 못한 나를 느닷없이 무대에 세우며 2차가 시작된다. 본인들은 룸메에게 기대도 희망도 없다면서 내게 이제라도 짝을 구해보란다. 그러면서 어떤 짝을 원하는지 이상형을 말해보라 했다. 지금껏 이상형 같은 거 다 쓸데없다고 말한 건 뭔지... . 뛰어난 외모는 늘 불안해 지키기 어렵고, 여유있는 경제력은 생각보다 실속이 없다면서 어느 정도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
“아빠랑 나는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사진을 받아도 잘 안 보여요. 다음에 올케가 오면 보여 줄 거예요.”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동생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간 지 3년 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동안 부모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는 부모라면 누구나 짐작이 가능할 테고, 자식은 아마도 부모가 되어야 그 맘을 헤아리게 되지 않을까싶다. 학교 공부를 마치자마자 시험을 봤고 11월에 결과가 나왔다. 그 사이에 올케와 조카들은 한국으로 들어왔고 동생만 그곳 로펌에 취직을 해서 남아있다. 12월에 자격증을 받았다고 전화로만 들었는데 며칠 전 올케를 만났더니 자격증을 받고 찍은 사진과 한인 신문에 이름이 난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었다. 말로만 들었던 것보다 실감이 나고, 순간 시골에 계신 부모..
느닷없이 네 앞에 거울을 들이대면 아마 놀랄 걸. 네 무표정이 낯설다싶을 거야.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을 땐 더 심하지. 그 때 그 엄마 생각나지? 배우처럼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삼십대 초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안이지만 항상 못마땅한 표정의 모습, 다른 선생들이 눈 한 번 마주치고는 뒤로 물러났잖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굴을 온통 망가뜨렸던․ ․ ․ . 드라마에 CG를 넣는다면 레이저 나오는 눈, 독을 뿜어내는 입을 실감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잖아. 넌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정도의 차이라는 거지. 그래 알아, 네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건. 그렇지만 너만 모르는 게 있어. 사실 너는 네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정말 모르겠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싫을 때 네 표정이..
돌아오지 않는 새들을 기다리며 / 이승하 귀기울이면 저 강 앓는 소리가 들려오네// 신음하고 있는 700리 낙동강/ 내 유년의 기억 속 서걱이는 갈대밭 지나/ 가물거리는 모래톱 끝까지 맨발로 걸어가면/ 시야엔 출렁이는 금비늘 은비늘의 물살/ 수백 수천의 새들이 나를 반겨 날고 있었네/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많은 물떼새들/ 왕눈물떼새․검은가슴물떼새․꼬리물떼새․대기물떼새……/ 수염 돋은 개개비란 새도 있었네/ 물떼새 알을 쥐고 돌아오던 어린 날의 낙동강/ 내 오늘 한 마리 물고기처럼 회유해 왔네// 아무것도 없네, 그날의 기억을 소생시켜 주는 것이라고는/ 나루터 사라진 강변에는 커다란 굴뚝의 도열, 천천히/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네, 천천히/ 땅이 죽으면 강도 따라 죽을테지 등뼈 휜 물고기의 강/ 대지를..
2019년 한미수필문학상 장려 노인은 말이 없으셨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았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노인이 꼬깃꼬깃 접은 약포지를 내미셨다. 그 약포지에는 ‘부산 탑 클리닉’이라는 병원명과 내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생각이 났다. 6개월 전에 지리산 강청 마을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였다. 개원 1년 차. 의약분업이 시작되어 의료계가 어수선하던 2000년 가을이었다. 소아과를 개원하고 계시던 선배 의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 원장, 11월 초 주말에 1박2일로 지리산 강청 마을로 의료봉사를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예. 좋아요.”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이제 막 개원하여 하루하루..
느릅나무에게 / 김규동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아름드리로 자라/ 희멀건 하늘 떠받들고 있느냐/ 8ㆍ15 때 소련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그래 맞아/ 너의 기억력은 백과사전이지/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산 목숨보다 죽은 목숨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 하나도 빼지 말고 들려다오/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죽여주옵소서 / 김규동 놀다보니 다 가버렸어/..
번역문과 원문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 可也. 학문지도무타, 유불식, 집도지인이문지, 가야.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 「북학의서(北學議序)」 해 설 1781년(정조5)에 연암 박지원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에 서문을 써 주면서 그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박제가는 1778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북학의』는 그 견문의 기록이다. 박제가의 중국 전략보고서인 셈이다. 박지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780년에 중국을 다녀왔다. 그의 『열하일기』는 이후 대표적인 연행록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두 사람은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의기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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