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석 시인 전남 해남 출생. 2004년 『모던포엠』으로 등단. 시집으로 『별빛 체인점』, 『내가 나를 노려보는 동안』 등이 있다. 광양제철 재직. 소화기 / 김정석 단 한 번의 불길을 위해/ 터지도록 제 몸에 압력을 채우고/ 사는 소화기, 당신// 또 헛방이다// 제대로 한번 쏘아보지도 못하고/ 실금실금 빠져나가는 압력처럼// 이 웃음/ 이 세월/ 당신// 소화기 하나 들고 거기 벌서라/ 내가 불 지를 때까지// 전디다 / 김정석 '견디다' 하면 머리가 하얘지는데/ '전디다' 하면 가슴까지 뻐근해져서/ '전디다'라는 말이 좋다// 볼트와 너트가 입 앙 다물고 상대를 전디듯/ 바이러스가 어지럽힌 세월을 전디고/ 세월이 빠져나가는 나를 전디고// 당신을 전디고// 저물녘 당신 / 김정석 제철소에서/ 뻘겋게..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10여 년 만에 울진 천축산 불영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 길은 108개 연꽃이 새겨진 불영교를 건너 원시림이 울창한 숲으로 접어든다. 길게 이어지는 흙길 따라 있는 오밀조밀한 경관이 눈맛을 선사한다. 옥상상제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삼지구엽초가 자랐다는 신묘한 벼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암괴석과 우거진 소나무 숲, 뫼비우스 띠처럼 펼쳐지는 맑은 불영천 물길이 우렁우렁 흐르며 감정회로를 자극한다. 이곳의 원시자연에는 불심이 들어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의 절경에 불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이상하다. 억겁의 시간에 걸쳐 빚어낸 대자연의 빼어난 솜씨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지 싶다. 불영사에 다와 가자 숲이 우거진 명상의 길이 구부정하게 이어진다. 바..
유홍준 시인 1962년 경남 산청 생초면에서 출생. 1998년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돼 등단. 시집으로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등이 있다. 젊은 시인상, 시작문학상, 이형기 문학상, 농어촌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청마문학상, 지리산지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순천대 문예창작학과와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목기에 담긴 밥을 /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들풀 무성한 황룡사 공터에 장대비가 아프게 내리꽂힌다. 터줏대감인 양 둔중한 몸을 펼친 바윗돌이 비를 맞고 누웠다. 부동의 저 돌들도 한때는 우람한 사원의 뼈와 살이었을 텐데…. 일렁이는 풀 바람, 천년의 정기를 들이키며 서둘러 황룡사 역사문화관으로 들어선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어귀 깊숙한 맞은편에 기괴한 물체가 시선을 붙든다. 날개를 펼친 봉황 같기도 하고, 기도하는 등신불 같기도 하다. 하단 안내지에 고딕체로 써진 두 글자, ‘치미(鴟尾)’였다. 새의 꼬리를 뜻하며 궁전이나 사찰의 용마루에 얹는 장식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전시된 치미는 지난날 몽고군의 습격으로 잿더미가 된 황룡사지에서 1970년대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높이 182㎝, 무게 100..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는 글에서 나오는 향기와 책에서 나오는 기운을 의미한다. 냄새를 맡거나 눈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제된 생활과 수양된 인품이 배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읽는 책이 가슴에 쌓여 청정한 기운과 우아한 향기를 뿜을 때, 그 기운과 향기를 일러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아들 상우에게 유배중 보낸 서찰에 자신의 서예관을 피력 한 말이다 胸中淸高古雅之意 又非有胸中 文字香 書卷氣 不能現發於腕下指頭 又非如甚尙楷書比也, 須於胸中 先具 文字香 書卷氣 爲隸法張本 爲寫隸神訣 ”예서 쓰는 법은 가슴속에 맑고 드높으며 고아한 뜻이 있지 않다면 손에서 나올 수가 없느니라. 가슴속의 맑고 드높으며 고아한 뜻은 또한 가슴속에 문자향과 ..
최근 학교 앞에 삼계탕 식당이 생겼다. 찹쌀이 듬뿍 들어간 삼계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닭죽이라는 이름의 상품이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을 모두 잘게 뜯어서 풀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서 시켰는데 기대했던 바대로였다. 맛있었다. 닭죽은 나에게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아버지 어머니 5남매 9명이 기본가족이었다. 복날 근처에는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름에 두 차례 세 차례씩 꼭 닭죽을 해먹었다. 어머니는 영해시장에 가셔서 생닭을 한 마리 사 오신다. 물을 팔팔 끓여서 닭을 물에 담그면, 닭의 털이 쉽게 떨어진다. 나신이 된 닭을 삶은 다음 살코기를 잘게 만든다. 쌀에 닭고기를 넣어서 죽을 만든다. 특별..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태풍 때문에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대문을 달고 있었던 좌우 담장 약 20미터가 사라진 상태이다. 건물이 훤히 보이는 것이 무언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담장을 다시 쳐야 할 터인데, 장남인 형이 있으니 형과 상의해서 결정할 사항이다. 저녁을 친구들과 먹고 9시경에 샤워를 하고 어머니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야야”하고 부르신다. 어머니는 만면에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담장 무너진 한 쪽에 조립식 건물 조그마하게 짓지 못하나, 애비야”. 나는 답을 했다. “예, 전에도 어머니 편하시게 모시려고 우리가 조립식 건물 짓는 것을 논의했습니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너가 자주 축산집에 오니, 지금 여기가..
김재혁(金在爀) 시인 1959년 충북 괴산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릴케 연구자로서 시인 및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4년 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아버지의 도장』 『딴생각』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바보여 시인이여』 『릴케의 예술과 종교성』, 『릴케의 작가정신과 예술적 변용』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릴케 전집 1-기도시집 외』, 『릴케전집2-두이노의 비가 외』, 『릴케 : 영혼의 모험가』, 『노래의 책』, 『로만체로』, 『넙치 1,2』, 『푸른 꽃』, 『겨울 나그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소유하지 않는 사랑』, 『골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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