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대가야 숲길을 걷는다. 산이면 보통 산인가. 오백 이십 년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이 이곳에 묻혔다. 낙타 등같이 봉긋봉긋 솟은 칠백여 기의 왕릉과 묘가 즐비하다. 주산성에 올라 능선을 타고 미숭산을 향해 한참을 오르면 삿갓봉 정상에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탔다는 정자가 보인다. 이름하여 ‘청금정(聽琴亭).’ 청금정에서 내려다보면 북동쪽 골짜기엔 거대한 우륵지(于勒池)가 눈에 들어온다. 우륵지 아래로 정정골이라 불리는 가얏고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 대가야의 후손들이 팽이버섯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가얏고 마을 바로 옆에 가야금을 형상화하여 지은 우륵박물관이 장엄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보이지 않지만 냄새로,..
강연우 시인 2017년 계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원고지의 윤리 / 강연우 어머니가 일기장을 원고지로 내어주면서부터 나는 일기를 쓰지 못 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 빈 원고지에 어머니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일조차 일기가 되지 못했다.// 가로 세로가 만든 빈칸, 다음 칸를 넘어가기 전 세로로 놓인 선분을 바라보며 눈 내리는 가자 지구 라파*의 밤을 생각한다.// 들어서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곳을 넘어선다 해서 그곳에 눈이 내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봉쇄된 지면이 멀뚱멀뚱 천장만 내다본다.// 소모품인 지우개는 비품이 되었다. 돌돌 글자를 말소해 나가는 지우개는 제 부피를 언제까지고 보존한다 연필에 들어 있는 다량의 낱말이 지우개의 부피를 들인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 무게는 그냥..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일백오십 리쯤 가면 ‘영해 만세시장’을 만날 수 있다. 옛날 예주고을로 불렸던 곳으로 소싯적에는 가장 큰 동네로 여겼던 곳이다. 십 리 떨어진 우리 집에서 밤에 보면 전깃불이 휘황찬란한 마을이었다. 산골 호롱불 아래서만 살던 문중 어른이 우리 집에 다니러 와서 밤에 그 불빛을 보고 ‘저 동네는 별이 참 낮게도 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 말기에 물물교환의 터전으로 각 면에 각각의 장마당이 펼쳐졌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인근의 병곡, 창수, 축산은 장마당이 폐쇄되고 영해로 모이게 되었다. 현재 영덕군에는 아홉 개의 읍면이 있는데 영덕(4일, 9일), 영해(5일, 10일), 강구(3일, 8일)에만 상설화된 5일장이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해만세시장이 규모도..
여든여덟 해 동안 묵묵히 그 힘든 자리를 지키신 아버지를 위해 꽃상여를 태워 드렸다. 상여꾼과 문상객이 하나같이 명당 중의 명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 소리에 부모 잃은 슬픈 마음이 조금은 위안된다. 그래도 상여 나갈 때와 달구질할 때 앞소리꾼의 청승궂은 소리는 흡사 아버지의 생전 한인 듯하여 가슴 한구석이 휑하다. 달구질의 한 켜가 오를 때마다 앞소리꾼이 이 아들 저 딸을 부른다. 장례식장에서도 교대로 한 사람씩 빈소를 지키라 했거늘, 문상객 술자리에만 머물든 동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아버지 새집에 켜가 바뀌는지 모른다. 몇 번을 부르고 찾아서 아버지 곁으로 보낸다. 봉분 가운데 꽂힌 막대기에 이어진 새끼줄에 봉투가 늘어난 재미에 앞소리꾼이 또다시 백관을 찾는다. 작은아버지 둘이 손사래 치며 거절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1875~1926) 오스트리아 태생 독일의 시인, 작가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 부친은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퇴역하여 철도회사에 근무하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양친은 성격의 차이로 해서 릴케가 9세 때 헤어지고 말았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
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 / 최문자 막다른 집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다./ 헐어빠진 나무대문들을/ 희망처럼 보이게 하려고/ 페인트로 파랗게 칠을 했었다./ 대문의 나뭇결은 숨을 그치고/ 그날부터 파랗게 죽어갔다./ 늦은 밤 돌아와 보면/ 길고 좁은 골목 마지막 끝에/ 자기 그림자 꼭 껴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그런 흔들림으로 서 있던 파란 대문/ 그 대문을 바라보고/ 가끔 생각난 듯 개가 짖어댔다./ 덧바른 낯선 색깔을 알아보고 짖어댔다./ 어느 날은/ 죽은 나무대문이 다시 나무로 살아날 것처럼/ 사정없이 짖어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긴 골목도 없이 나를 막아서는 802호/ 지금은 거기에 산다./ 열쇠를 돌리려면 한참씩 문 앞에서 달그락거리지만/ 잠긴 저 안은 언제나 쇠처럼 고요하다..
2021년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 슴베는 칼이나 호미, 낫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혀 있는 뾰족한 쇠붙이를 말한다. 땅속에 묻힌 나무뿌리처럼 자루 속에 숨어서 농기구를 지탱해 날이 잘 들게 해준다. 쇠붙이와 자루인 나무는 오행의 운행에서 금극목(金克木)으로 상극(相克)이라 한다. 낫은 나무를 쳐내고, 나무는 쇠붙이를 녹일 수 있어 상극이라는 것. 그런 상극관계인 쇠꼬챙이와 자루가 상생하여 온전한 낫이 되도록 해주는 역할이 슴베다. 조선낫 슴베도 물푸레나무로 된 자루 안에 숨어 있다. 나는 산소에 벌초를 할 때는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사용했던 조선낫을 쓴다. 그 슴베 덕분에 조선낫은 굵은 나뭇가지도 거침없이 쳐낼 수 있다. 슴베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야 제 기능을 한다. 그래서 시뻘겋게 달군 ..
2021년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 물레 위 흙덩이에 온 마음이 놓였다. 미끄덩거리고 부드러운 촉감에 흙덩이를 불끈 잡는다. 손가락 사이에서 미어터지듯 삐져나와 버리는 것이 아쉬워 남은 것을 그러모아 다시 주먹을 쥐어본다. 시원하고 차진 흙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그릇을 만들기 위해 질흙을 잘 반죽해 떼어 놓은 덩어리를 ‘꼬박’이라고 부른다. 두드리고 비비고 매만지며 썰질 할 땐 무엇을 만들지 기분이 들뜬다. 조형토를 주물러 도톰한 사발이든 너른 접시든 얼추 형체가 드러날 땐 설렘도 커진다. 옆자리의 도공은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의 속도를 잊은 듯 혼신의 기를 모아 자유자재로 형태를 넓혀간다. 꼬박은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이다. 어릴 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꾸었던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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