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엔 춤추고 싶다. 옥상 위에 널린 하얀 이불 호청이 되어 출정하는 배의 돛폭처럼 허공으로 힘차게 펄럭이고 싶다. 살아갈수록 때가 끼는 마음 자락을 씻어내어 볕 좋은 날 빨랫줄에 나란히 널어 말리고 싶다. 묵은 세월에 얼룩지고 땀내에 절은 나를, 빨래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내고 싶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빨래비누에 치댄 속 고쟁이를 우그러진 놋양푼에 담아 바글바글 삶곤 하셨다. 삭아서 고무줄이 툭툭 터지는 속옷들을 신명나게 방망이질하여 마당에 내다 말리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햇볕이 아깝다, 정말 아까워." 하시던 말씀이 이제는 딸아이에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되었다. 저 무수한 햇볕을 공으로 쏘이면서 단 한 번도 그것에 고마워하지 않은..
이야기 하나 작고 수필가 허천 선생에 대한 글을 쓸 때다. 당시 그분의 지인을 만나 귀한 일화 한 토막을 들을 수 있었다. 허천 선생은 평소 오영재 화백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오 화백은 부산미술의 개척자로 평생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기로 유명했다. 그가 가난에 쫓겨 부산 변두리의 외진 마을로 들어갔을 때 허천 선생은 심심찮게 그곳에 들러 종일 보내다 돌아오는 낙을 즐겼다. 그런데 두 분은 아침나절부터 해거름까지 별말도 없이 지냈다고 한다. 화백은 좁은 방의 벽을 향해 스케치만 하고, 허천 선생은 창밖 풍광이나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가끔 빈 종이에 글 몇 줄 끄적거리는 일이 전부였다. 점심때가 되면 화백의 빈처貧妻가 내어온 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저녁까지 조용히 지내다 돌아오..
김언 시인 1973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산문집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가 있다. 미당문학상,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박인환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의 말 / 김언 이상하게 외로운 시만 계속 썼는데, 이상하게 외로워지지 않는다. 아직 덜 외로운가? 그래서 더 외로운 시를 썼는데, 닳는 것은 시고 닳으면서도 부대끼지 않는 것이 또한 시라는 말씀. 참 외롭다. 외롭게 들리지만 외롭게..
스물세 살에 나와 결혼한 아내는 늘 생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다녔다. 첫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 어느 날 아내가 파마를 하고 내 일터까지 찾아와서 들뜬 모습으로 “여보 나 어때?”하고 물었다. 아내가 생전 처음 한 파마였는데 예쁘다거나 잘 어울린다거나 듣기 좋은 말로 맞장구쳐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광판리에서 콩 팔러 온 아줌마 같네”라고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 버렸다. 그날 이후로 오늘까지 나는 아내의 파마머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보면 얽히고 설켰던 그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지난날의 사소한 오해나 엉뚱한 말 또는 깊게 생각하지 않은 말로 사태를 그르쳤던 모든 것을 헤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소리나 감촉이 없지만 말과 행동을 통해서 향기, 감촉,..
한 해에 두 번씩 혼사를 치르는 일은 결단코 하지 않겠다던 내가, 일이 묘하게 되느라고 큰 녀석 장가보내던 해, 남부끄럽게도 딸마저 시집을 보내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딸애가 하루는 마음에 드는 청년이 생겼다고 집으로 데려와 인사를 시키면서 “아버지 때문에 사귀게 된 거에요.” 라고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었는데, 알고 보니 녀석의 이름이 나와 똑같은 ‘영수’라는 거였다. 아버지와 이름이 똑같다는 사실이 운명의 끈인 양 잡아 끌더라며 “아빠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그럴싸한 핑계였다. 그러나 혹여 올해 안에 식을 올리자면 어쩌나 싶어 “청년이 내 맘에도 썩 든다마는 한 해 두 번 혼사는 치를 수 없으니 서둘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 놓았다. 이때만 해도..
두어 달 만에 고향 집을 찾았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 무언가 서먹서먹하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잠을 청하지만, 눈이 감기질 않는다. 되레 정신만 말똥말똥하여 온갖 상념이 강물처럼 이어진다.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 더미 속에 처박은 너절한 일들이 떠오르고,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연들까지 차례로 나타나 머리를 어지럽힌다. 고향도 멀어지면 타향이라 했던가. 처음 떠나 살 때는 문득문득 그리웠다. 골목길도 그리웠고, 그 골목길에 들꽃같이 곱게 피어 웃는 이웃들도 그리웠다. 맞이하고 떠나보낸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도 잊을 수 없었고, 봄이랑 가을이랑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몰아오던 바람결도 잊을 수 없다. 솜털 같은 바람이 대지를 쓰다듬으면 빈터마다 무리지어 꽃은 피었고, 여울물 소리 같은 바람이 ..
번역문과 원문 고을 수령이 되는 자는 아침에 바뀌고 저녁에 갈려서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는데 구실아치들은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일을 맡으므로, 마음대로 부려서 늘였다 줄였다 함이 오로지 그들 손에 달려 있으니, 단지 장부를 숨기고 재물을 훔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세속에서 이른바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爲官者朝更暮遞 席不暇暖 而胥輩從少至老 任事自若 操縱伸縮 專在其手 非止絶簿書盜財物而已 俗謂江流石不轉以此 위관자조경모체 석불가난 이서배종소지로 임사자약 조종신축 전재기수 비지절부서도재물이이 속위강류석부전이차 - 이수광李睟光,1563~1629), 『지봉유설(芝峯類說)』 16권 「잡설(雜說)]」 해 설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
28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작 ‘여백(餘白)을 가득채운/저 숨가픈 날갯짓,/꿈꾸는 세상(世上)은/아직도 아득한데/바람이/키운 씨앗들/눈꽃으로 피어난다.//무위(無爲)로 뿌려놓은/수많은 아우성,/별빛에 씻기우다/꽃등에 맺힌 이슬은/어쩌다/서럽게 흘린/눈물인 줄 알았다.//세월(歲月)뿐인 산등성이/적막(寂寞)도 인연(因緣)이니/덩실덩실 춤추고/허공을 걷노라면/무심한/가을 노을도/너털 웃음 터뜨린다.’ 한 계절 아름다운 채색(彩色)과 향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미나 모란, 국화 등은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애지중지하며 가꾸어진다. 그에 비해 억새풀은 결코 뭇사람들의 관심을 갖고 자라나는 풀이 아니다. 물론 화려한 빛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짙은 향기를 품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찌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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