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이 나를 부르는가. 불현듯 일탈을 하고 궁으로 발길을 옮긴다. 녹번역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하차하면 서울메트로 전시관을 지나간다. 전시회를 감상하고 가면 운치가 있어서 좋다. 전시관을 지나 석재로 만든 불로문을 통과한다. 불로장생한다는, 백수를 누린다는 그 문을 지나 지하 통로로 스무 발자국을 걸으면 이내 궁으로 통하는 마당이 나온다. 왼쪽 한편에는 고궁박물관이 있어 그곳에 들러 왕과 왕비의 연대표를 읊조린다.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세운 경복궁, 설계는 정도전이 했다고 하는데 어찌 그리 정교하고 운치가 있는지. 전각 이름도 지었다고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훗날에 태종 이방원이 부왕 태조보다 정도전의 비상함에 한 나라에 왕이 둘일 수는 없다 해서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더욱이 왕자의 ..
나비 한마리가 날아왔다. 주방 안으로 날아들어 나풀거리는데 어찌나 큰지 천장을 뒤 덮는다. 황금색 날개에 흰점이 박혔고 그 날개 끝을 아버지가 부여잡고 두둥실 떠 있다.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버지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아버지 날개 부러지니 빨리 내려오세요.” 그제야 내 말을 들으셨는지 아버지께서 나비를 놓아주었는데 어인 일인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황금빛 나비는 청색을 띤 호랑나비로 변하면서 몸은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로 바뀌었다. 이럴 수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한 꿈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은 채로 한동안 멍하니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요즈음 중국 드라마인 '후궁견환전'에 흠뻑 젖어 들어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청나라 옹정..
이원 시인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시간과 비닐봉지」 외 3편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현대시학작품상, 현대시작품상, 형평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사랑은 탄생하라』 등이 있다. 사랑은 탄생하라 / 이원 우리의 심장을 풀어/ 발이 없는 새/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하나의 돌은// 바닥까지 내려온 허공이 되어 있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봄이 혼자 보낸 얼굴/ 새벽이 받아놓은 편지// ..
택배 상자가 부쩍 쌓인다. 택배 물품목록이 주로 스포츠 용품에 집중된다. 자세히 보면 바람막이, 가방, 모자, 바지, 신발 등이다. 도심에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갑갑한데 산속은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고 호흡할 수 있어 등산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는데 그 무리에 딸이 합류하였다. 가까운 황령산과 금정산, 장산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이 아닌 평일 낮을 골라 다니니 조심하라는 부탁 말고는 딱히 할 말은 없다. 딸아이는 운동을 즐긴다. 실내 운동으로 암벽등반을 하다가 요가를 겸한 체형 교정인 피트니스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창궐한 전염병에 어쩔 수 없이 운동을 멈추었다. 퇴근한 딸이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한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역병은 인간과의 전투..
나는 술과 친하지 않다. 무슨 신념 때문이 아니라 체질상 술과는 거리가 멀다. 소주 한두 잔만 걸쳐도 얼굴은 금세 홍당무로 변해 오해받기 일쑤다. 직업상 자주 찾아오는 술자리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술자리에 가면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하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술 세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 일쑤다. 잔꾀를 부려도 술자리에 합석한 이상 기본량은 비켜가기 힘들다. 일제히 한 잔을 비워야 한다든지 선배나 상사가 면전에서 술잔을 건네면 피할 길이 없다. 초반 한두 잔은 그럭저럭 버틴다. 분위기가 익어가면서 잔이 돌고, 급기야 폭탄주마저 춤을 추면 좌불안석이 된다. 비주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심정이다. 힘겨운 버티기 작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입에 갖다 대는 시늉만 하고 슬그머니 잔을 빼돌린다. ..
여행은 언제나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풍광을 감상하고 별미를 맛보며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떠올릴수록 즐거운 일이다. 다채로운 문화와 다양한 삶의 체취를 느끼면서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그곳이 낯선 땅, 먼 곳일수록 호기심과 기대감은 한층 더해진다. 몽골에서 보낸 여름 여행을 잊을 수가 없다. 늘 콘크리트 빌딩 숲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리다시피 살아온 나로서는 일상의 탈출은 생활 속의 오아시스와 다를 바 없었다. 여행의 대상지도 천혜의 자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몽골이 아닌가. 머나먼 낯선 땅에서 자연에 푹 빠져보고 싶은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온갖 상상력을 끌어들여 몽골 여행을 그려보았다. 광활한 초원, 밤하늘의 별빛, 칭기즈칸의 흔적, 들판에서의 말타..
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군에서 출생.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 패기만만한 문학청년이었으나 졸업 후 입사한 종합무역상사의 해외지사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및 이집트 카이로 등지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근무했다. 2002년 《문학마당》과 2003년 《정신과 표현》에 시가 있는 수필을 각각 게재, 연재한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추억의 문 밖에 선 등불 / 김영찬 생각해봐요, 우우~ 생각을, 생각 좀 해봐요 시간의/ 양쪽 끝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끈이란 끈은 모두 끊어져 못쓰게 되잖아요// ( (( ((( (( ( 우우 )))/ (우/우/우) ) )) ))) )) ) )) )..
우원호 시인 1954년 서울에서 출생. 1983년 육군 중위 예편. 2001년 월간 《문학21》 시 부문 신인작품상에 당선. 시집으로 『도시 속의 마네킹들』, 『폴 세잔의 정물화가 있는 풍경』, 『아! 백두산』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주간 역임. 웹진 『시인광장』과 계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 도서출판 『시인광장』 대표. 설국(雪國) / 우원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지금/ 설국(雪國)이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기습적인 눈폭탄의 투하로 인해/ 서울 전지역에 대설주의보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새볔부터 다시 어마하게 눈폭탄이 계속해서 투하되던/ 엄동설한(嚴冬雪寒) 속의 어느 날의 늦저녘,// 늘상 북적대던 자동차의 행렬도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사람들도 자신들의 아지트나 피난처로 대피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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