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는 사람이 없어야 폐허가 된다. 역사의 한 부분을 떠들썩하게 채워 넣던 도읍지였을망정 인걸이 간데없어지면 폐허가 된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지음 / 효형출판, 2014)는 문장에서 폐허를 생각한다. 사람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 중요한 유기체다. 유기체는 공간에 모여 구분 불가능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공간 속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의 힘은 달콤하면서 힘이 있다. 사람 구경 할 수 있는 시장이나 백화점, 극장이나 공연장,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계단이다. 나에게 세종문화회관은 정신세계의 중심이었다.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의 명맥을 이어 예술의 통로가 되었던 세종문화회관의 계단..
하물며, 골목 바람도 리듬을 탄다. 느긋한 바람이 강아지풀을 쓰다듬으며 살랑거리다가도 남쪽 동백꽃 내음을 골목으로 부려 놓을 만큼 세차게 불기도 한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시래기가 왜바람 따라 바스락거린다. 거칠어진 바람에 돌쩌귀 빠진 철대문이 덜커덩덜커덩 녹을 닦는다. 바람의 장단에 골목은 부풀었다가도 이내 고요한 풍경이 된다. 사람이 만드는 바깥바람에도 골목은 술렁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진다. 후미진 골목의 리듬이다. ‘슬로우슬로우 퀵퀵’ 휘파람 불 듯 발음해야 하는 이 말을 내가 맨 처음 들었던 때는 골목이란 골목을 죄다 이어 나만의 세상을 만들던 어린 날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와 골목을 휩쓸다가 숲을 타고 산등선 너머로 사라지던 바람을 뒤쫓는 일이 당시 아이들의 놀이였다. 순간순간 속..
늙은 강아지가 좋다. 눈물이 그린 세월의 흔적, 윤기 없는 털이 서로를 꼭 붙든 모습,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회색 눈동자, 이 모든 것이 좋다. 인생의 고난을 반려견 똘똘이의 황혼기와 함께했기 때문일까. 길을 걷다 보면 피부가 마모된 개들에게 유독 시선을 빼앗긴다. 첫 직장이라는 절벽에서 호기롭게 뛰어내린 젊은 독수리는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말았다. 날개 꺾인 독수리를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본 건 황토색 새치 가득한 요크셔테리어였다. 일원도 못 버는 백수가 똘똘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전거 앞에 바구니 하나 매다는 것뿐이었다. 다리가 닳고 닳아 걷지 못했던 작은 강아지는 바깥바람을 좋아했다. 앉는 것조차 힘든 늙은 아이를 위해 바구니에 푹신한 천도 깔았다. 유일한 단골 승객을 조수석에 태우고 올..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 더워 오는 추억의 노래가 있다. 유년의 동구길을 짓까불며 오가면서 부르던 동요들. 그중에서도 ‘나 어른이 되면’이라는 노래이다. 홍진의 더께가 묻지 않아 하얀 광목 빛처럼 눈부셨던 그 순진무구했던 날들. 어른들의 오염된 가치와 일탈된 행동들에 실망한 나머지 도리질을 하며, 어른이 되면 주변의 어른들을 반면교사 삼아 어른다운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목청을 높여 그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좁은 시야 탓인지 내 주위에 어른다운 어른은 없었다. 비록 머리에 하얀 서리 내리고 얼굴의 검버섯들이 그동안 어른들을 스쳐 지나갔던 세월의 무게를 증거하고 있었지만, 내 이상형의 어른들은 찾을 길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빨리 내 몸의 나이테가 더해지기를 갈망했고, 그만큼 어른이 ..
창안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벽에 옷이 걸려있다. 날지 못한 새처럼 벽에 달라붙어 있다. 화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난 후 남편에게 내 작품의 누드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을 한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을 해 준다. 나는 화요일마다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특별한 작품이니 힘도 특별히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아침이 되면 몸 준비를 단단히 한다. 생각나면 먹는 비타민도 꼭 챙겨 먹고, 밥이나 과일 등 먹으면 힘이 나겠다 싶은 것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는다. 마음 준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맛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자, 이제 작품을 만들어 보자. 누드 모델이니까 발가벗기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남편은 온몸을 내게 맡긴다. '네 멋대로 하라'..
엄마는 요즘 매일 알록달록 작은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는다. 올해 엄마 나이 구십하나. 엄마가 종이학을 처음 접기 시작한 시기는 2016년 봄, 내가 야간 M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늘 대학 공부를 꿈꿔왔던 나는 쉰일곱에 어렵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만학도의 열정으로 2년 동안 개근했다. 어느 깊은 가을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 11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는 그 시간까지 종이학을 접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 오니?” “저녁은 먹었니?” 엄마는 내가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접던 학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드셨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러 가는 딸의 고단한 생활이 걱정되어 종이학으로 지..
몽테뉴를 읽다가 책장을 덮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나갔다. ‘죽음은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대에게 관여치 않는다니… 왜냐하면 둘 다 그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여운을 안고 늘 가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늘따라 풍성한 숲 그늘이 보기 좋다. 쓰르라미란 놈이 세차게 울어댄다.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그렇게 들은 일본 시인 이싸(一茶)가 생각난다. 목청 찢어지게 울 수 있는 고작 며칠이 전부인 삶을, 쓰라리고 쓰라린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미생물의 왕성한 번식, 감각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내게 생명의 계절이 아니라 언제나 죽음의 계절로 기억되는 것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대부분도 여름에 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름을 환각(幻覺)이라고 말했다는데 보들레..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점점 짜진다. 아내의 변명을 빌리자면 차린 반찬이 줄지 않아 자꾸 데우고 끓여서 그렇단다. 아니다. 아내의 기억력 때문이다. 아내는 금방 간한 것을 까먹고 여러 번 간을 한다. 그러니 간이 짜질 수밖에, 매번 똑같은 변명을 하는 아내가 측은하기 그지없다. 날이 갈수록 해마(뇌)가 줄고 알약 숫자는 늘어난다. 의사는 유전인자 때문이라 하는데 실은 내 탓인 것 같아 죄스럽다. 군인이었던 나를 따라 전후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삿짐을 수도 없이 묶고 푸는 사이 내조의 병이 돋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모처럼 같이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 노점상 할머니가 파는 봄나물 냉이가 보였다. 서너 발자국 뒤따라오던 아내가 뜬금없이 나싱개를 캐러 가잔다. 아내가 말하는 나싱개란 냉이를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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