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즘 매일 알록달록 작은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는다. 올해 엄마 나이 구십하나. 엄마가 종이학을 처음 접기 시작한 시기는 2016년 봄, 내가 야간 M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늘 대학 공부를 꿈꿔왔던 나는 쉰일곱에 어렵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만학도의 열정으로 2년 동안 개근했다. 어느 깊은 가을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 11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는 그 시간까지 종이학을 접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 오니?” “저녁은 먹었니?” 엄마는 내가 집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접던 학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드셨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러 가는 딸의 고단한 생활이 걱정되어 종이학으로 지..
몽테뉴를 읽다가 책장을 덮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나갔다. ‘죽음은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대에게 관여치 않는다니… 왜냐하면 둘 다 그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여운을 안고 늘 가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늘따라 풍성한 숲 그늘이 보기 좋다. 쓰르라미란 놈이 세차게 울어댄다.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그렇게 들은 일본 시인 이싸(一茶)가 생각난다. 목청 찢어지게 울 수 있는 고작 며칠이 전부인 삶을, 쓰라리고 쓰라린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미생물의 왕성한 번식, 감각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내게 생명의 계절이 아니라 언제나 죽음의 계절로 기억되는 것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대부분도 여름에 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름을 환각(幻覺)이라고 말했다는데 보들레..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점점 짜진다. 아내의 변명을 빌리자면 차린 반찬이 줄지 않아 자꾸 데우고 끓여서 그렇단다. 아니다. 아내의 기억력 때문이다. 아내는 금방 간한 것을 까먹고 여러 번 간을 한다. 그러니 간이 짜질 수밖에, 매번 똑같은 변명을 하는 아내가 측은하기 그지없다. 날이 갈수록 해마(뇌)가 줄고 알약 숫자는 늘어난다. 의사는 유전인자 때문이라 하는데 실은 내 탓인 것 같아 죄스럽다. 군인이었던 나를 따라 전후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삿짐을 수도 없이 묶고 푸는 사이 내조의 병이 돋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모처럼 같이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 노점상 할머니가 파는 봄나물 냉이가 보였다. 서너 발자국 뒤따라오던 아내가 뜬금없이 나싱개를 캐러 가잔다. 아내가 말하는 나싱개란 냉이를 말한..
한때 독서클럽에서 정한 도서로≪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에 버금갈 정도로 명석한 스웨덴 물리학자 스베덴보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가사假死상태에서 여러 차례 사후세계를 다녀와 쓴 책이라 전해진다. 우리가 죽으면 중간지대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생전 선악 행위의 결과에 따라 아홉 단계의 천국과 아홉 단계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천당과 지옥 모든 곳을 다녀왔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라는 사명을 받고 방대한 내용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인간은 사후에 누구나 천당과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각각 9단계가 있다. 판단의 기준은 양심과 선행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시장 한 귀퉁이에서 '노지 깻잎'이라고 쓴 쪽지가 담긴 바구니를 발견했다. 뜻밖에 어머니의 흔적을 만난 것 같아 덥석 집어 들었다. 가을 일을 끝낸 어머니의 손바닥처럼 거칠거칠한 감촉에서 진한 깻잎 향이 났다. 그리움이 입맛을 당기듯 싸한 향기가 나를 부른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가을 이맘때면 어머니는 노르스름하게 단풍 든 깻잎을 소쿠리에 가득 따오셨다. 더는 내어줄 영양분이 없는 이파리를 서둘러 거두어도 이제 남은 것들은 스스로 알맹이가 되어 영글어 갈 것이었다. 윤기가 빠져나간 얼룩진 이파리는 하나같이 멍들고 찢어져 상처 난 것들뿐이었다. 뜨거운 햇볕에 바래고 비바람에 맞서던 이파리엔 깨알 같은 점들이 모여 있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엔 시련을 이겨낸 사람의 꺾이지 않은 꼿꼿한 결과 기가 살아..
나의 청소년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 가운데 '울어도 사랑이요 웃어도 사 랑, 거리 거리 등불 아래 여자가 있네' 라는 것이 있었다. 앞과 뒤의 가사는 생각 이 나지 않고, 이 구절만 이 가락과 함께 기억에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이 안주할 곳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남정네의 시야를 파고든 등불 아래 여인들의 모습, 매우 통속적이기는 하나 그런대로 정취가 서린 한 폭의 그림이다. 요즈음의 우리나라 여자들은 40년 전 또는 50년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듯한 인상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거리를 지나면서, 또는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토록 미인이 흔한가 하고 감탄할 때가 있다. 영양과 의상이 좋아지고 화장술까지 발달한 덕분일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의 종류에 따라서 만나게 되는 미인들의..
사무장과 경민이는 비빔냉면을 시키고 나는 돌솥비빔밥을 주문하였다. 여자 종업원이 주방을 향하여 "비냉 둘, 돌밥 하나!" 하고 소리쳤다. '열무비빔밥'은 열밥'이고 '콩나물밥'은 '콩'이란다. 배달원 머슴아가 금속 배달통을 들고 비호처럼 달아난다. 돌솥비빔밥을 돌이라 말하고 비빔냉면을 비냉이라고 줄여서 말하지 않는 나 자신도 그리 여유로운 시간을 느긋하게 살고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다음 손님을 의식하며 쫓기듯 점심을 먹고 나면, 겨우 차 한 잔 마시곤 약속에 묶여서 가 볼 데가 있다. 표가 날 정도로 해놓는 일도 없는 주제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과 몸이 바쁜 일정이다. 명색이 학자 또는 문필가로 되어 있어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에도 마음은 이리저리 헤매기에 대체로 분주하다. ..
나는 그림에 대한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소년 시절에 닭을 그리면 오리 모양이 되었고, 백합을 그리면 호박꽃에 가깝게 보였다. 미술가를 부러워했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정확한 말로 나타내는 일은 나에게는 닭이나 백합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도 더욱 어렵다. 정확할 필요가 없는 말, 이를테면 '안녕하십니까? 하는 따위의 의례적인 인사말이나 그 밖의 어떤 허튼소리라면 별로 부담없이 지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이 요구될 경우에 적합한 언어를 찾아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말 가운데서도 정확성을 가장 요구하는 철학의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릴 때 말을 몹시 더듬어서 말을 적게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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