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를 날마다 보고 산다. 익숙해지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내성을 키워야 하는 ‘집콕’ 생활에 적잖이 위로가 된다. 여름 땡볕 아래에서 푸른 잎을 맘껏 펼친 자유와 당당함이 부러워서일까. 그런 무던한 파초 하나 집에 있었으면 했다. 파초를 들먹이면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을 아니 떠올릴 수 없다. 박연구 수필가가 고서점에서 고색이 창연한 마분지로 된 수필집 한 권을 들고 몸을 떨기까지 했다던 그 ‘무서록’. 책장에 범우문고판 ‘무서록’이 있어 가끔 꺼내 든다. 거기에 실린 짧은 수필 ‘파초’를 읽곤 하는데 몇 군데 밑줄을 그어놓았다. 특히 “나는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情調를 명상한다”는 문장을 되짚으며 파초를 심은 정원을 꿈꾸곤 한다. 절에 들를 때 나무인가 싶을 만큼 푸르른 풍채가 ..
저마다의 바람이 액자에 걸렸다. 대나무 잎을 간질이는 바람, 잔물결에 노닥거리는 바람, 꽃잎에 속살대는 바람, 여인의 봄바람,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실체 없는 바람이 각양의 모습으로 액자 속에 담겼다. 종종 바람이 일었다. 세파의 파랑이 살 만하면 덮치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불쑥 불어 닥쳤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고, 갖고 싶고, 가고 싶은 내면의 바람은 가슴 속에 체념의 굳은살을 박여놓았다. 차곡차곡 재어둔 소박한 버킷리스트가 늘어났다. 그것은 내일이 있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탄탄대로로 뻗은 도로가 아닌 울퉁불퉁 흔들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오며 스스로 단련된 면도 없지 않았다. 나를 일으킨 보이지 않는 힘은, 나의 바람이 끈질기게 응축된 응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평생 진행형인 희망은 그 끝..
허겁지겁 쫓아다니다가 문득 만난 자판기. 스토리 웨이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음료들을 보는 순간 심한 갈증을 느낀다. 지폐를 넣자 캔 사이다 하나가 덜커덩 떨어진다. 뚜껑을 젖히니 딱, 소리가 나고 찬김이 피어오른다. 음료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땀이 걷히고 서늘해진다. 얼마나 편리한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쫓기듯 살아가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상징물이다. 자판기에 진열되는 상품들은 날마다 진화한다. 과자와 라면이 있나 하면 책까지 팔고 있다. 이웃나라에서는 아이스크림, 피자, 화장품도 판다니, 가만히 있어도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상술에 그저 놀랄 뿐이다. 500원이면 처방을 받는 ‘마음 약방 자판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유년의 기억은 감자로 시작된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감자는 늘 가까이 있었다. 궁핍했던 60년대 저녁은 찐 감자 몇 개와 한 사발의 오이 냉국이면 만족했다. 냉국이 없어도 걱정할 일은 없다. 젓가락에 푹 꿰어진 감자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면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에 입맛이 동했다.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감자는 식감이 단단한 강냉이밥을 부드럽게 할 때는 밥 위에 올라앉았고, 고추장을 뒤집어쓰고 냄비 안에서 불 고문도 당했다. 옴팍한 대접에는 간장으로 바짝 졸인 쪼글쪼글한 새끼 감자조림은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했다. 강판에 갈아 지진 감자 부침개는 별미다. 그러나 최강의 감자 요리는 감자를 썩혀 얻은 전분으로 만든 감자떡이다. 하굣길, 배고픈 아이들을 감자밭이 유혹했다. 줄기가 무성한 감자포기의 옆구리를 ..
‘인도와 티베트 여행기’에 꺼얼무에서 라싸까지 1,115Km를 버스로 30 시간 간다는 장면이 있다. 티베트 여행을 허가증도 없이 불법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요변을 해결해야 할 때만 차를 세운다. 이때 우루루 내려서 풀밭으로 내려가서 볼일을 본다는 내용의 글을 읽으면서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티베트를 여행했던 작가는 휴게소도 없는 허허벌판을 서른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더 신 시간을 가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니 정당방위다. 나의 어처구니 없는 일을 이 작가의 글에서 떠올리는 건 뻔뻔하다. 동유럽여행 구 일째 밤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길다는 슬로베니아의 포스토니아 종유동굴을 보았다. 슬로베니아에 발을 디뎠다는 것이 현실감이 없다. 종유동굴을 보기 위해 코끼리 열차를 타고 수많을 얼굴을 한 종유석을 ..
인생의 종점까지는 아직 까마득하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고 싶을 정도로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힘들어질 때가 있다. 삼일이나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신비한 약이 없을까, 과학자들은 뭣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퇴직한 후, 밥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있다.'는 아주머니들의 푸념을 자주 듣는다. 먹는 것 때문에 가정불화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집에서 밥만 축내는 나도 '삼식이'가 아닌지 염려가 된다. 직장 동료들이 요리한 옻닭이나 추어탕을 먹어 본 적이 몇 번 있다. 맛을 떠나서 직접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지만 나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직장생활 30년을 끝낼 때까지 내가 끓일 수 있는 것은 라면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보다 일찍 퇴직한 아내는 현실에..
쥐를 영어로 마우스(mouse)라 한다. 쥐와 마우스는 같은 말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쥐'라는 말은 보기가 흉하고 징그러운 모습을 연상시켜 미간이 찌푸려진다. '마우스'는 깜찍하고 예쁜 모습이 생각나 저절로 미소를 머금는다. 주택이나 골목에서 쥐가 튀어나오면 '마우스가 나타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컴퓨터 작업 중에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쥐를 만진다'고 하지 않는다. 분명 같은 말인데 왜 그럴까. 중학교 시절. 우리는 일본식 슬레이트집에서 살았다. 얇은 합판으로 된 천장에는 몇 개의 못만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밤마다 합판 위에서는 쥐들의 운동회가 두세 번씩 열렸다. 경쟁적으로 달리는 소리, 서로 싸우는 소리, 뭔가를 갉아먹는 소리로 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가족들은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잠을 청..
어쩌면 지금 내 나이가 그런 나이인지 모른다. 딸이었다가 엄마, 할머니까지 된 지금 몸은 아내, 엄마, 할머니 쪽에 있으나 마음은 내 어머니의 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출근하듯이 어머니에게 가자고 진즉 마음을 먹었으나 일주일 만에, 그것도 주무실 시간이 다 되어가는 이 밤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갔다. 몇 달 사이, 어머니의 육체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깜빡거리고 있다. 신체의 모든 기능이 다 떨어졌는데 그중에서도 인지능력이 더 떨어졌다. 어머니가 뭐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입 가까이 귀를 대고 들어본다. 어머니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린 자식을 찾고 계신다. “얘들이 왜 이렇게 늦지?” “엄마, 엄마 딸 여기 있어요. 집에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면 반가워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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