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꾼이다. 좋은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충직하게 소임을 다하는 심복이다. 어떤 주인을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손의 사명이 달라지듯이 병고를 치유하는 인술(仁術)의 손이 있는가 하면 파괴와 살생을 일삼는 저주받은 손도 있다. 기왕이면 좋은 손을 갖고 싶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겸손한 그런 손을. 어느 가정이거나, 주부는 그 집의 손이어서 모든 것을 알아서 관리한다. 겨울채비를 하느라고 이불에서 커튼까지 있는 대로 빨아 널고, 화초 분 갈이 하고, 김장을 담그고 나면 내 손은 엉망이 되고 만다. 조심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일이 서투른 탓인지 손이 성할 날이 없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손등은 생채기투성이고 손가락은 군데군데 칼자국이 스쳐 가관이다. 낮에는 바빠서 별로 모르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면..
강화도 최북단 철산리 뒷산에 있는 180오피는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 하구의 질펀한 해협이 굽어 보이는 돈대 위에 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위해서 흑색 쾌자를 입고 돼지털 벙거지를 쓴 병졸들이 창을 들고 불란서 함대와 맞서 있었음직한 곳이다. 나는 43년 전, 이곳에서 해병 제1여단 예하의 어느 중대에서 위생병으로 파견 근무를 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만치 아름다운 노을을 나는 그때 이후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집에서 하서(下書)가 당도했는데, 강원도 귀래라는 곳에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참한 규수가 있어서 네 배필(配匹)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이었다. 배필이라는 아버님의 굵직한 필적이 젊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평생 같이 뛰게 내 옆에 붙여줄 암말 한 필, 나는 저녁식사 후면 ..
맥주를 마실 때는 맥주잔을 11도로 기울여 따라야 가장 맛있다고 하고, 농구에서 골이 잘 들어가는 슛의 각도는 대개 46~54도라고 한다. 살아가는 데도 각도가 있다면, 삶의 각도가 몇 도 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각도기의 중심에서 보면 1도라는 각은 아주 작다. 그러나 작은 각일지라도 각도기의 바깥쪽을 향해 계속 뻗어 나가게 한다면 각이 벌려놓는 거리는 점점 커지게 된다. 삶의 각도도 그렇다. 1도만 바뀌어도 십 년 이십 년이 흐른 후에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서 삶의 패러다임도 바뀌게 된다. 심신이 고달플 때 우리는 좁은 굴속이나 수직으로 서 있는 절벽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 대신 넓은 초원이나 나지막한 고향의 뒷동산을 떠올리며 움츠린 어깨를 펴고 고단한 마음을 풀어놓는..
아버지의 방이 없다. 방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열 수 있는 문고리와 외풍을 막는 문풍지가 있었는지 아랫목은 따뜻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수필가는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며 자랐다는 표현을 했다. Y선생은 딸과 사위가 우산을 받들고 나란히 집으로 오는 모습을 마음의 벽에 걸었고, J씨는 대학시험에 떨어지던 날 ‘어이구 가시나야’ 하며 돼지고기 반 근을 사 오신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한 한 근으로 마무리했다. 시를 쓰는 J선생은 화가라는 호칭으로 전시회도 여는데, 미술을 하고 싶어 방황하던 여고시절 완고한 아버지가 자신을 방에다 가둬놓고 감시를 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가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혹은 아버지 사랑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는 참으로 생소하다.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
유년기에 내 시선은 재봉틀에 열중하신 엄마 젖무덤의 흔들림에 멈추곤 했다. 한여름 세모시 적삼을 적시는 엄마의 땀방울보다 젖무덤 사이의 'ㅅ'자를 거꾸로 한 곡선이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일까. 그럴 때면 엄마는 삯바느질 마감으로 분주한 손놀림을 멈추지도 못한 채 물끄러미 서있는 내게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재봉틀 앞에 앉아서 단이나 똑바로 박히게 잡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청상과부가 된 뒤 사십여 년을 살아오셨지만 강골(强骨) 기질로 큰 병은 없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환갑잔치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에 왼쪽 가슴에 멍울이 크게 잡힌다며 걱정을 하셨다. 대학병원을 찾은 날 의사는 조직 검사도 할 틈이 없다며 서둘러 제거 수술을 권했다. 나 역시 동의서를 썼다. 이제 어머니의 가슴은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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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종의 야만사회가 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것은, 인간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안다는 점이다. 사실 동물이 탐욕스럽게 보이기도 하나, 대다수 야생 동물은 자기가 취할 정도의 먹이만 거두지 더 이상의 탐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게걸스럽게 자신의 먹이보다 훨씬 더 않은 재물이나 권력ㆍ명예 등을 욕심낸다. 미래라는 환상을 인간이 인식하기에 생기는 일종의 병리현상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한국 사회에 일종의 《선비정신》이 통용되었다. 자신만의 이익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나 집단을 위해서 말도 되지도 않는 주장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기에 아예 꺼내지도 못하던 정상적인 일종의 도덕률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작금 일어나는 사태는 어떠한가. 다수를 차지하면 헌법 같은 기준선은 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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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의 삶에 문학이 있어야 하는가. 문학이 주는 무엇을 어떻게 소유하여야 하는가. 그런 보람을 매일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매번 이러한 의문을 품는다. 문학이라는 괴물 아닌 괴물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문학은 체험을 언어로 형상화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체험은 1차원적이고 생리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을 말한다. 늘 평범한 것에 비범한 무엇이 숨어 있는 법이다. 그 정체는 "지금 여기에 있는 이 사람"으로서 우리가 인상 깊다고 여기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더 큰 기쁨과 아픔으로 이것을 느낀다. 그 발견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1세기는 지난 시대와 판이하게 다르다. 50여 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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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 언덕이었다. 언 땅이 곡괭이를 튕겨내서, 모닥불을 질러서 땅을 녹이고 파내려갔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육군에서 갓 제대한 무직자였다. 아버지는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씩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너 이러지 말고 나가서 놀아라. 좀 놀다가 부대에 들어가야지.” 아버지는 장작처럼 마른 팔다리를 뒤척이면서 말했다. 땅을 파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관이 구덩이 속으로 내려갈 때, 내 어린 여동생들은 따라 들어갈 것처럼 땅바닥을 구르며 울었다. 불에 타는 듯한, 다급하고도 악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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