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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금상작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멀리서라도 들을 수 있다면, 가끔 강가로 나가 물결의 춤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는 자연의 사람이다. 어쩌면 일생동안 큰 선물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다. 강 중에서도 낙동강을 그리며 산지 꽤 오래 되었다. 미쁜 여동생이 예천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시작된 인연이다. 물이 맑고 달다고 하는 곤충의 도시 예천, 그곳은 낙동강으로 인해 드높은 영원의 이름을 얻었다고나 할까? 예천 풍양면에 위치한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이 2017년 우리나라 걷기여행축제에 선정된 것은 나처럼 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횡재한 듯 가슴 벅찬 일이다. 강 못지않게 나무를 사랑하기에 청곡길에 위치한 삼수정(三樹亭)에 제일 먼저 들르기로 한다. 예천은 몇 번 다녀왔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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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금상작 불어오는 봄바람에 가지에 남은 눈을 비집고 연분홍 벚꽃이 피어 벚꽃 날리는 오후는 온통 눈이 내린다. 눈으로 만이라도 담아두려 했는데 너무 빨리 져 버려서 매년 늘 아쉽다. 코로나로 나가서 보지 못하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예전 내 모습을 보니 그래도 행복해 보여 봄이 좋다. 요즘은 텔레비전 드라마 속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엄마와 나는 드라마 동지다.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같이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었던 것 같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어른들이 그러셨는데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닮아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코로나로 학교도 쉬고 어디 갈 데도 없던 차..
설 대목이 가까워져 오면 우리 집 아랫목에 식구 하나가 더 불어난다. 목단 꽃 이불 아래 칠 남매 발 묻기도 급한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객식구가 하나 있다. 위는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낙의 엉덩이마냥 펑퍼짐한 우리 집 부조단지다. 동네잔치가 있으면 엄마가 단술을 빚어 부조하는 단지라 해서 우리는 곧잘 부조단지라 불렀다. 아래는 검은 유약이 저절로 흘러내려 검게 물들어 있고 위는 붉은 황토색이다. 부조 단지가 우리 사이에 끼여 어엿이 식구 행세를 하는 걸 보면 설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서로 발을 비비다 단지라도 건드리는 날은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부조단지가 이불 안으로 들어오는 날은 우리도 덩달아 얌전해져야만 했다. 겨우내 마실 요량으로 만드는 단술은 질금 윗물만 따라내서 맑게 앉히지만 ..
글을 쓰는 일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소름끼치는 끔찍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아침 5시에 일어나 한 시간쯤 글을 쓰고 약수터에 갔다가 와서 아침 먹고 녹차 한 찬 마시고 한두 시간쯤 더 글을 쓴다. 점심 먹고 녹차 마시고 글이 잘 써지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저녁 산책을 하고는 이른 저녁밥을 먹고 밤 9시쯤 뉴스를 보면서 잠을 잔다. 이게 직업이 되다가 보면 쓰고 싶은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쉬고 싶을 때도 어찌할 수 없이 써야 하는 것이다. 만일 어디 여행을 하려면 미리 그 동안의 연재될 글들은 써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잡지사나 출판사의 사정을 보아 언제까지 글을 써서 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글은 써지지를 않고 시간은 가고 미칠 지경인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환..
대화할 때 서로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상이나 사물은 보통 문장에서 생략한다. 정황으로 알 수 있다면 주어나 목적어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애써 완전한 문장으로 말을 계속하면 오히려 대화가 껄끄러워진다. 우리말의 중요한 특징이다. 점심을 먹다가 아내가 묻는다. “부쳤어요?” 역시 문장의 주요 성분을 생략해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미루어 짐작할 거란 의미이다. 아내가 묻는 내용을 반듯한 문장으로 재구성해 보면, ‘오늘 군에 있는 큰애에게 소포를 부쳤어요?’쯤 되겠다. 오늘이나 큰애, 소포 등은 서로 묵인하는 것이므로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궁금한, ‘부쳤어요?’라는 동사만 남겨 놓는다. 덧없이 사라지는 행위, 즉 부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나에게 그걸 확인하고..
연못이나 웅덩이에 고인 물에 돌멩이를 던져보면 안다. 얼마나 물이 정직한 지를. 돌 하나를 떨어뜨려놓고 물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살펴보라. 솔직한 물은 자신의 정곡이 정확하게 꿰뚫렸음을 수면 위에다 과녁을 펼쳐 담담하게 시인할 것이다. 몇 번을 시도해보아도 마찬가지다. 돌이 자신의 깊이를 관통하는 동안, 물은 수면에 소포를 펼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심에 명중되었음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 어렸을 때 나는 물수제비를 잘 떴다. 하굣길에 시냇가를 지날 때면 늘 맵시가 고운 작은 밀돌을 주워 모로 엇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인 자세로 팔매질을 했다. 돌이 물 찬 제비처럼 수면을 담방담방 밟으며 날렵하게 미끄러져갔다. 다섯 번 이상 뜨는 것은 예사였다. 그때마다 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이 밟고 간 자리에 재빨리 작..
산을 오른다. 산행에서 누군가를 젖혀 보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욕심이라며, 행여 그런 거라면 애초에 빠지라는 말에 발끈 오기가 치민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나를 중환자 취급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사뭇 못마땅해 이를 악물고 따라나섰다. 누가 뭐래도 산행을 하기에 나의 체력은 충분했다. 남정네들은 일찌감치 걸음을 치고나갔다. 나를 걱정해서인지 큰아들 놈이 느린 내 보폭을 맞추며 동행한다. 무리였을까. 중턱까지도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식은땀이 나고 산멀미가 치밀었다. 아찔한 현기증에 백안이 되어서야 못 이긴 척 바위에 몸을 기댔다. 아들놈이 산행을 멈추고 내려가자 성화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태 전, 암 진단과 더불어 몸의 한 곳을 도려내고 수시로 나타나는 익숙한 증상이다. '이러고 조금만 ..
동장군이 때려눕힌 강 한 마리가 뻣뻣하게 기절한 채 뉴스화면 가득 널브러져 있다. 흐르는 물을 멈추게 하는 위력만으로도 장군의 작위가 무색치않겠다. 쇄빙선에 올라탄 포클레인이 사마귀 같은 턱을 주억거리며 희푸른 살점을 물어뜯어 보지만 군데군데 생채기나 낼 뿐 의식 잃은 강을 핥아줄 때까지, 강은 죽은 척,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골목 어귀마다 한뎃잠을 자다 얼어 죽은 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웅덩이 같은데서 대책 없이 미적거리던 물도 기습적 한파에 얻어맞았는지 갈비뼈가 와장창 부서져 나가 있다. 세상 만물 중 가장 추위를 타는 게 물이라는 사실을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알았다. 영하로 떨어지면 가장 먼저 얼어 죽는 게 물이다. 지표에 닿은 빗물이 서둘러 땅속으로 스미는 것도, 강물이 끊임없이 바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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