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금이 가 있다. 들었다 놓을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귀에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디선가 자주 들어 본 소리다. 자배기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테두리에 감겨있는 철사가 녹슨 걸 보면 금이 간지도 오래되었나 보다. 사연 있는 이 장독대에 나이 먹지 않은 것은 없다. 큰 독, 작은 독, 멸치 젓국 냄새가 배어 있는 독과 소래기, 자배기, 구석에 숨겨둔 약탕관까지 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나이를 먹었을 게다. 간장 수십 독은 퍼냈음직한 아름드리 장독에서는 여전히 진한 짠내가 난다. 대가족 둘러앉은 밥상 냄새가 거기에 있다. 도시로, 외국으로 돌다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외가 가까운 동네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어릴 때 방학이면 외가에 와서 지낼 때가 많아서 외가에 대한 추억이 소복..
무작정 집을 나섰다. 마스크만 쓰고,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보니 체한 듯 답답했던 명치끝이 조금은 시원하다. 전망대에 털썩 주저앉아 내려다본 풍경은 내 유년 시절을 품어주었듯이 따뜻하다. 그리움이 출렁이며 춘풍에 머리카락이 가볍게 날린다. 언제나 이곳에 오면 바람은 부드럽게 내 감성을 살찌운다. 물 냄새가 가볍게 코끝을 간질이고 두 눈을 감는다. 호수를 내려다본다. 만수(滿水) 위로 수상가옥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전에 없던 좌대가 낚시꾼을 기다리며, 어릴 적 내 놀던 곳을 가늠해 본다. 아슴아슴한 기억이 저쯤이라고 일러준다. 맞아 저쯤에 우리 집이 있었지, 살짝 들어간 산허리에는 다랑논이 있었고, 그 위로 밭이 있었어, 밭가의 너구리굴도 무서웠어, 그러나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도 걱정..
해맑은 날씨에 눈이 부시다. 봄물이 번져가는 벚나무 둥지에 꽃망울이 브로치처럼 앙증맞다. 간절기 이불을 빨래하고 의류 건조기 안에 넣으려다 꺼낸다. 이불을 베란다 창틀에 툭 걸쳐놓고 하늘을 바라보니 나비 구름이 흘러가며 유혹한다. ‘이불은 햇살 좋은 날, 마당 어귀 담에 널어서 말리는 게 최고야.’ 하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득한 날, 나의 요람은 헌 이불이었다. 어머니는 푹신한 이불을 마주하면 “네가 태어나던 순간이 떠오른다.”라고 하며 애잔한 눈빛이다. 할머니는 태아의 탯줄을 자르고 이불로 핏덩이를 감싸서 밀쳐 두었다. 아버지는 외동아들인데 내리 딸이 태어나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서운함이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엄마의 일생을 들춰보면 가슴 먹먹한 일들이 스르르 풀린..
쿵작쿵작 쿵따라쿵짝, 악단이 전주를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가수는 전주의 끝자락을 놓칠세라 발 박자를 치며 리듬을 탄다. 전주는 1절의 멜로디를 무대에 깔아놓고 암막 뒤로 비켜선다. 가수가 노랫말을 음미하며 감정을 잡는다. 가수가 1절의 멜로디를 손끝으로 낚아채며 객석을 휘어잡는다. 가수가 생로生老의 아름답고 숭고한, 병사病死의 연약하고 덧없는 서사를 숨김없이 토해낸다. 1절의 노래를 끝낸 가수가 가쁜 숨을 고른다. 악단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감미롭게 간주를 연주하고, 2절의 멜로디를 가수에게 넘긴다. 가수가 2절을 열창하면 악단은 오선지를 박차고 나올 엔딩을 준비한다. 가수가 청중의 희로애락을 멜로디에 실어 노래한다. 트로트의 신내림이 빙하의 피오르가 되어 청중의 가슴을 후벼 파며 객석을 휘몰아친다..
명절이 턱밑으로 다가서면 나는 부엌칼부터 손본다. 제물祭物을 준비할 때마다 칼날이 무디다는 집사람의 타박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단 철철이 이어지는 종갓집의 기제忌祭를 모시고 있는 내 정성의 단초이기도 해서이다. 칼을 갈려면 우선 숫돌부터 챙겨야 한다. 숫돌은 칼이나 낫 따위를 갈기 위한 천연 석재를 이용한 살림도구의 하나로, ‘수’와 ‘돌’이 어우러져 형성된 합성어合成語이다. 이때 ‘수’는 어원적으로 돌石의 의미를 내포한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석질이 부드러운 퇴적암 등을 채취하여 거친 숫돌과 고운 숫돌로 구분하여 사용해 왔다. 그런데, 근자엔 탄화규소나 산화알루미늄을 활용한 인조 숫돌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뒤란 샘가에 웅크리고 앉아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
저녁 산책길에 금계국을 만난다. 산기슭이 물감을 들인 듯 노란색이 일렁인다. 큰 키에 쭉 뻗은 몸매가 이국적이다. 어린 시절엔 못 보던 꽃이다. 그럴 것이 그들의 고향은 북아메리카란다. 무슨 연유로 한국으로 이민 와 다문화 가족이 되어 살고 있을까. 노란 꽃받침과 검은 씨방은 해바라기의 동생일 것 같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잔디와 클로버 사이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색의 민들레가 가엽게 보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 했던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다. 엎드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개망초의 큰 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개망초 꽃은 나름 당당한 모습이다 비록 꽃잎은 작아도 금계국 키와 비슷해서인지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잎사귀도 거의 비슷하다. 꽃 크기와 색깔만 다를 뿐이다. 닮은 데는 ..
어제인가 그 여자는 나에게 자기의 유년시절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이야기했다. “화창하게 맑은 날 한낮 때쯤에 뒷산 앞산 소나무 숲속으로 낙엽을 긁으러 갔어요. 쇠갈퀴하고 멱서리를 가지고, 어른 나무꾼들을 따라서, 아마 내가 여섯 살 되던 해의 늦은 가을이었을 거예요. 멱서리를 무덤 앞에 놓아두고 숲속에 들어가서 낙엽을 한 줌씩 긁어가지고 와서 멱서리에다 담곤 했어요. 낙엽이 멱서리 시울까지 차올라왔을 때 그것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 낙엽을 담은 멱서리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끙끙 안간힘을 쓰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왔어요. 우리 집 사립에 막 들어서니까는 어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땔나무 많이 해오는 것 좀 보소! 하고는 그 멱서리를 받아들었어요. '아니, 무슨 놈 갈퀴나무 조금 담은 ..
한 겨울날 아침 일찍이 어머니는 김 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엘 갔다. 중학생인 나를 앞세운 채 시오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김을 팔아 내 등록금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장들이 덮여 있었다. 금방 함박눈송이를 쏟아놓을 것 같았다. 장바닥에 김을 펼쳐놓았다. 가능하면 빨리 그것을 팔아넘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른 김은 눈비를 맞으면 망치게 되는 상품이었다. 어머니는 점심때가 가까웠을 때 한 상인에게 통사정을 하여 김을 넘겼다. 등록금과 차비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나서 어머니 주머니에 얼마쯤의 푼돈이 남았을까. 그 푼돈은 가용으로 써야 할 터이다. 이제 어머니와 나는 헤어져야 했다. 나는 장흥행 버스에 올라야 하고, 어머니는 고향 집으로 걸어서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점..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