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무료하기에 텔레비전을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사자 가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여섯 마리의 어미 사자와 너댓 마리의 새끼 사자. 단란하고 평화로운 광경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화면은 바뀌어 처절한 생존경쟁의 현장을 연출하였다. 여러 마리의 암사자가 무리를 벗어난 한 마리의 얼룩말을 목표로 삼고 덤벼든다. 쫓고 쫓긴 끝에 결국 얼룩말은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고, 사자 가족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얼룩말의 참사가 사자 가족에게는 다시 없는 경사였다. 하지만 그 경사스러운 잔치도 오래 가지 않았다. 배고픈 하이에나의 무리가 떼를 지어서 나타난 것이다. '백수의 왕'이라기에 사자에게는 적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무식을 비웃는 듯, 생사를 건 처절한 ..
50년 전의 어린이들은 종아리를 맞아 가며 컸다. 글공부를 잘못했다고 글방 선생님의 매를 맞을 경우도 있었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맞을 경우가 더 많았다. 종아리 채로는 주로 싸리나무를 사용했으며, 매 맞을 어린이에게 그것을 구해 오도록 명령하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꽤 여러 번 종아리를 맞았고 맞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인지 납득하지도 못하면서 매를 덜 맞기 위하여 우선 그렇게 말한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 몰랐지만, 좀 자란 뒤에야 비로소 그때 잘못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몇 살 때의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번은 밥상머리에서 실언을 한 허물로 인하여 되게 종아리를 맞았다..
소년 시절에 양(羊)에 관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 한 토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놈들이 여름에는 서로 붙어서 자고,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서 자는 습성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여름에 붙어서 자는 까닭은 친구들을 더욱 덥게 만들기 위해서이고, 겨울에 떨어져서 자는 까닭은 친구들을 추운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양을 착한 사람에 비유하고 염소를 악한 사람에 비유한 마태복음 25장의 구절은 몰랐지만, 양이라는 놈이 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던 터였다. 교회의 주변이 아니더라도 '같이 순하다'는 말은 흔히 들을 수가 있었고, 목동이 양 떼를 모는 교과서적 그림을 볼 때마다 평화를 연상하곤 하였다. 그래서 양들에게 짓궂은 일면이 있다는 그 이야기는 아주 뜻밖이었고..
'소 궁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 주둥이가 되라.'는 중국의 옛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이라면 대개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었을 때였고, 더구나 그 말은 『사기(史記)』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책에 실린 말이라고 하니, 그 말은 매우 좋은 처세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닭 주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소 궁둥이가 되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 중국의 유명한 말의 뜻이 힘센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라는 데 중점이 있다면, 그것은 백번 옳은 교훈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선생님은 반드시 그런 뜻으로만 가르치지는 않았다. 어느 편이냐..
연구원에서 보내 준 자동차가 대문 밖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듣고도 나는 10분 이상 꾸물거렸다. 세미나 장소까지 가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문을 나섰을 때 운전기사는 자동차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 같은 손을 태울 때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기다리는 것이 보통인데 차 밖에 나와 서 있는 것은 예외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기사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운전 시동을 걸었다. 큰길로 들어서자마자 운전기사는 회의가 시작되는 시간을 물었다. 여덟시 반부터라고 대답했더니 좀 빨리 가야겠다며 그는 안전벨트를 어깨에 걸었다. 가는 도 에 도로 확장하는 곳이 있어서 평상시보다 시간..
옷을 입는 방식에도 예절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나, 나에게는 그것이 공연한 부담으로 느껴 질 때가 많다. 여름에도 의관을 단정히 하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옛날 양반의 정신이 나에게는 희박한 편이어서, 옷이라는 것은 몸에 편하도록 입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운 여름날에는 셔츠 바람으로 다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넥타이라는 것을 생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배짱이 그다지 두둑한 편이 아니어서, 나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관습이라는 것에 얽매여 살고 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과 옷차림이 다르면 공연히 마음이 불안하다. 남의 이목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나와는 정반대로 아주 파격적인 옷차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
고부간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며느리 편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사회의 시어머니들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며느리 시절에 부당한 구박을 받은 여인이 시어머니가 된 뒤에는 옛날 생각을 하고 좋은 시어머니 노릇을 함직도 한데, 사실은 그 반대임에 놀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시어머니에게 동정이 가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내 나이와 신분이 시어머니에게 가깝게 되었기 때문이기보다는 세상의 판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양지에 그늘이 지고, 음지가 양지로 변한 것이다. 어떤 여자 교수가 미국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약간 충격적이다. 그 교수는 미국의 여러 양로원을 돌아보았으며, 그곳에서 한국의 할머니들을 여러분 만났다고 하였다. ..
두메 산골의 하루 해는 어린 나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겨우 세 가구가 모여 살던 우리 이웃에서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고, 어른들은 일손이 바빠서 어린아이 상대할 여가가 없었다. 형들과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서 친구가 되기 어려웠다. 우리 집 바로 이웃에 '언년'이라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였고 얼굴은 수수한 편이었으나, 살림이 가난해서 늘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이들의 훈육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거의 없는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언년이는 한마디로 야생마 같은 아이였다. 세 가구 이웃에는 언년이밖에 같은 또래가 없었다. 자연히 자주 만나게 되었지만, 아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남자는 남자끼리 놀아야 한다는 유교식 교육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또는 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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