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에 대한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소년 시절에 닭을 그리면 오리 모양이 되었고, 백합을 그리면 호박꽃에 가깝게 보였다. 미술가를 부러워했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정확한 말로 나타내는 일은 나에게는 닭이나 백합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도 더욱 어렵다. 정확할 필요가 없는 말, 이를테면 '안녕하십니까? 하는 따위의 의례적인 인사말이나 그 밖의 어떤 허튼소리라면 별로 부담없이 지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이 요구될 경우에 적합한 언어를 찾아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말 가운데서도 정확성을 가장 요구하는 철학의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릴 때 말을 몹시 더듬어서 말을 적게 하는 ..
자기 고향 근처에 조용하고 경치 좋은 저수지가 있으니 낚시질도 할 겸 방학 동안에 한번 가지 않겠느냐는 어떤 젊은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솔깃했다. 서울 근교의 산만 당일치기로 오를 것이 아니라 삼박 사일 정도로 지리산을 종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누가 제안했을 때도 좋은 의견이라고 찬성하였다.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마당이니 좀 자주 만나자고 어느 동창 친구가 전화를 걸었을 때도 나는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였다. 정년 퇴임을 한 뒤에도 쉬지 말고 학문을 위해서 또는 그 밖의 문화 영역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라는 격려의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지나가는 인사말일 수 있겠지만 나 자신도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은 태산 같다. 이미 손을 대놓은 일도 몇 가지 있고, 또 앞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만 ..
"바보가 되어라." 어떤 정신병 의사의 이 말이 내 마음에 들었다. 요즈음처럼 온갖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긴장을 풀며 살아가자면, 때때로 바보가 되는 것이 정신 위생을 위하여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다. 비단 긴장 완화를 위한 묘방(妙方)일 뿐 아니라, 처세 전반에 걸친 보다 근본적인 교훈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분노와 짜증이 치밀기 쉬운 맹랑한 세상이다.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활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대세가 그렇고 풍조가 그렇다. 사리(事理)를 따지며 흥분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다. 공연히 신경만 피로할 뿐이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만 같지 않다. 필경 바보가 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이 된다. 아예 바보가 되기로..
시간이 무료하기에 텔레비전을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사자 가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여섯 마리의 어미 사자와 너댓 마리의 새끼 사자. 단란하고 평화로운 광경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화면은 바뀌어 처절한 생존경쟁의 현장을 연출하였다. 여러 마리의 암사자가 무리를 벗어난 한 마리의 얼룩말을 목표로 삼고 덤벼든다. 쫓고 쫓긴 끝에 결국 얼룩말은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고, 사자 가족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얼룩말의 참사가 사자 가족에게는 다시 없는 경사였다. 하지만 그 경사스러운 잔치도 오래 가지 않았다. 배고픈 하이에나의 무리가 떼를 지어서 나타난 것이다. '백수의 왕'이라기에 사자에게는 적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무식을 비웃는 듯, 생사를 건 처절한 ..
50년 전의 어린이들은 종아리를 맞아 가며 컸다. 글공부를 잘못했다고 글방 선생님의 매를 맞을 경우도 있었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맞을 경우가 더 많았다. 종아리 채로는 주로 싸리나무를 사용했으며, 매 맞을 어린이에게 그것을 구해 오도록 명령하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꽤 여러 번 종아리를 맞았고 맞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인지 납득하지도 못하면서 매를 덜 맞기 위하여 우선 그렇게 말한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 몰랐지만, 좀 자란 뒤에야 비로소 그때 잘못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몇 살 때의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번은 밥상머리에서 실언을 한 허물로 인하여 되게 종아리를 맞았다..
소년 시절에 양(羊)에 관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 한 토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놈들이 여름에는 서로 붙어서 자고,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서 자는 습성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여름에 붙어서 자는 까닭은 친구들을 더욱 덥게 만들기 위해서이고, 겨울에 떨어져서 자는 까닭은 친구들을 추운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양을 착한 사람에 비유하고 염소를 악한 사람에 비유한 마태복음 25장의 구절은 몰랐지만, 양이라는 놈이 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던 터였다. 교회의 주변이 아니더라도 '같이 순하다'는 말은 흔히 들을 수가 있었고, 목동이 양 떼를 모는 교과서적 그림을 볼 때마다 평화를 연상하곤 하였다. 그래서 양들에게 짓궂은 일면이 있다는 그 이야기는 아주 뜻밖이었고..
'소 궁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 주둥이가 되라.'는 중국의 옛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이라면 대개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었을 때였고, 더구나 그 말은 『사기(史記)』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책에 실린 말이라고 하니, 그 말은 매우 좋은 처세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오히려 반대로 '닭 주둥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소 궁둥이가 되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 중국의 유명한 말의 뜻이 힘센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라는 데 중점이 있다면, 그것은 백번 옳은 교훈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선생님은 반드시 그런 뜻으로만 가르치지는 않았다. 어느 편이냐..
연구원에서 보내 준 자동차가 대문 밖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듣고도 나는 10분 이상 꾸물거렸다. 세미나 장소까지 가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문을 나섰을 때 운전기사는 자동차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 같은 손을 태울 때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기다리는 것이 보통인데 차 밖에 나와 서 있는 것은 예외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기사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운전 시동을 걸었다. 큰길로 들어서자마자 운전기사는 회의가 시작되는 시간을 물었다. 여덟시 반부터라고 대답했더니 좀 빨리 가야겠다며 그는 안전벨트를 어깨에 걸었다. 가는 도 에 도로 확장하는 곳이 있어서 평상시보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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