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둥한 첫 만남이다. 왕방울 눈을 지닌 감실부처를 건성으로 일별하고 돌아 나오는 뒤통수가 간지럽다. 향토 사학자 수준으로 설명하는 친구의 유식에 주눅 들어 딴청 부린 것이 부끄러워 발길을 멈춘다. 뒤돌아서 두 손을 모은다. 감실 안을 비추는 햇빛에 반사된 희미한 미소가 찌뿌둥한 마음 근육을 풀어준다. 민망한 여운이 오래 머문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전각 안쪽을 삐끔삐끔 들여다보고는 뜨락만 어슬렁거렸다. 찰나를 견디지 못하는 삿된 생각이 들락거리니 낯부끄러운 염치에 법당 주위만 맴돌았다. 남의 손에 이끌려 까치발로 들어가서도 지은 업의 무게에 눌려 조아린 육신을 일으킬 힘이 없음을 핑계 삼았다. 불교 경전에는 문외한이라 석가모니는 고사하고 나무아미타불의 뜻도 관심 밖이었으니 부처..
나무들이 호수에 물구나무를 하고 섰다. 안동호에 물결이 일렁이면 반영은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낮은 산성을 옆으로 끼고 양쪽 동네를 잇는 부교가 호수면 위에 표표히 늘어져 허청댄다. 안동선비순례길이 물 위에 떠 있는 선성수상길을 가로지르며 첫길을 수굿하게 열고 있다. 마을 간 줄다리기라도 있었던 걸까. 겨루기를 끝내고 이제 막 내려놓은 굵은 밧줄 같다. 운동회가 한창일 가을날이다. 나의 물그림자를 나무들 사이에 세운다. 구름덩이 서너 점과 섬 같은 산과 설핏 물든 단풍들이 정물처럼 고요한데 물비늘에 뜬다리가 꿀렁인다. 나도 따라 속이 울렁이고 눈이 뱅그르르 돈다. 작은 여파에도 통째로 휘둘리고 만다. 이럴 땐 멀리 보아야 한다. 세상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나만 멈추면 된다고..
갈매기 떼 지어 내려앉아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용한 바닷가, 한 시대 나라의 수호신을 모시던 성지였고, 영토방위의 최전선이었다. 지금 동유럽 우크라이나 동남부 해안지역 마리우폴 니코폴처럼 강 하구 해안의 군사 요충지였던 곳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통일국가를 이룩하였으나, 내부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왜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던 곳이다. 고요한 신새벽 잠에서 깨어나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멀리서 바다의 신음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일찍 일어나신 할아버지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신다. “바다 끓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풍파가 오려나 보다.” 장마철 태풍이 올 때면 깊은 바닷속 물이 일렁이면서, 바닥의 자갈 끌리는 소리가 ‘싸르~르~~’ 환청처럼 들린다. 구름이..
염천의 개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앞집 옥상의 빨래가 갑자기 무녀(舞女)의 치맛자락처럼 펄럭이기 시작한다. 찌는 듯하던 여름밤의 무더위가 슬그머니 뒷문을 박차고 꽁무니를 뺀다. 혁명군인 양 치달아온 바람이 고요한 누리에 파문을 일군다. 뜨락의 나무들은 바람의 위세에 눌려 저마다 아부의 깃발을 흔든다. 키다리 백목련은 무당춤을 추어대고, 분기(分器)에 발을 담근 대나무는 나긋나긋 승무를 춘다. 수줍음을 타던 백합은 사근사근 어깨춤을 추어대고, 대추나무․은행나무․모과나무․사과나무․감나무․백일홍은 디스코를 춘다. 어느덧 우리 집의 손바닥만 한 뜨락은 무도장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한눈을 팔면 몸놀림이 느슨해지다가 바람이 다시 눈을 부릅뜨면 어느새 춤동작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바람에 놀아나는 나무들의 작태다. 우..
내 어린 날의 추석은 포도와 누나의 향기로 그윽했다. 그때만 해도 내 고향 강화도엔 포도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누나는 대나무 바구니 가득, 서울의 시장에서 산 포도를 들고 고향집을 찾았다. 남정임 윤정희 같았던 머리, 소매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투명했던 옷, 그리고 이국의 향기를 닮은 화장품 냄새. 희디 흰 얼굴. 차부에서 내려 고향집까지의 시오리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문밖에 나와 서울내기가 되어 돌아오는 누나를, 뒷모습이 다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보곤 하였다 한다. 누나가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고향집은 포도와 누나의 향기로 은은했다. 결코, 맹세코 잊을 수 없는 건 포도와 함께 가져왔던 두 개의 라면. 온 식구가 나누어 먹었던 그 라면 맛은 서울이 어떤 곳이라고 떠드는 백 마디 천 마..
병원에 다닌 지 꽤나 오래되었다. 의대생으로서 6년, 그리고 환자로서는 11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일주일 가량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좀 떨어지는가 싶더니 온 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심해지기만 했다. 힘들게 추가 검사를 하고 난 며칠 뒤 의사가 병실에 들어와서 부모님을 따로 데리고 나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날 밤새 울었다. 독서 수업에서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나요?” 수업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떠올려 보려고 했다. 가족들이랑 바다에 놀러 갔던 것?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 어떤 게 내 터닝 포인 트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선생님이 말했다..
화장실이 부뚜막 같다. 수선사 주지 스님의 뜻이라고 한다. 해우소나 뒷간이 주는 절집 인상이 여기서는 무너진다. 실내화가 얌전히 놓였는데도 맨발로 들어가는 이가 적지 않다. 옆으로 길게 뻗은 화장실 창은 거치적대는 바깥경치를 잘라내 액자가 되고, 근심을 푸는 속인은 틀 안에 들어온 풍경화를 제 것인 양 누린다. 고졸한 대웅전이 살림집 안채 같고 곳곳에 놓인 돌그릇이며 고른 잔디와 소담한 연못은 한옥 마당처럼 인정스럽다. 신들의 집이 예사로워 오히려 신성하다. 그리 높지 않아도 산바람이 있어 지글거리는 도시 더위와는 사뭇 다르다. 눈앞에 놓인 첩첩의 산을 바라보며 해를 피해 앉았는데 희미한 풍령 소리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린다. 지리산 웅석봉 자락, 변두리 작은 사찰, 거기 추녀 끝에 조그마한 풍..
저기서 꽃 무더기가 걸어온다. 포개고 또 포갠 꽃숭어리들을 한 아름 안은 엄마가 만삭의 임부처럼 뒤뚱거린다. 꽃들이 앞을 가리고 잎사귀가 눈을 찌른다. 화사해서 더 가늠이 안 되는 무게가 묵직하게 배를 타고 내려간다. 그래도 씨억씨억 잘도 걷는다. 염천의 햇발이 자글거려도, 엄동의 된바람이 칼춤을 추어도 기어이 희붐한 새벽길을 열어 꽃 떼를 몰고 간다. 동살 아래서 분홍, 오렌지, 보라, 연노랑 꽃주름이 일렁인다. 사람들이 꽃을 본다. 꽃만 본다. 깍짓동만 한 무더기에 가려 발은 보지 못한다. 꽃들이, 댕강 잘린 발목으로 그들의 꽃밭을 떠나왔음도. 꽃집 앞에서 망설인다. 꽃 선물을 좋아하지 않으니 사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도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통유리문으로 꽃꽂이를 하는 여자가 보인다. 연분홍 거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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