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본 적은 없지만 많은 넥타이가 장롱 속에 있다. 붉은색, 푸른색 해서 장롱 속에는 때 아닌 꽃이 핀 듯하다. 그러나 염치없는 말이지만 그 넥타이들을 내 스스로 구입한 기억은 별로 없다. 문상 갈 때 매는 검정색 타이 말고는 죄다 누군가가 선물해준 것들이다. 넥타이를 맬 적마다 그들의 정겨운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멀리 해외여행이나 이민 간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장면을 생각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롱 속은 그 포근한 마음들로 해서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남자들에게 넥타이는 액세서리 아닌 내세서리(necessary)라 해야 할 그런 것이다. 바쁠 때는 아무렇게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서라도 그걸 매야 하니까.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넥타이도 때와 장소를 맞춰야지 무조건..
봄의 꽃자리에 연두빛 신록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남도(南道)의 절들에서는 차 따기가 한창이다. 옛 문헌에는 곡우(穀雨)를 전후하여 따는 차가 가장 상품이라고 헸는데, 우리 조계산에서는 그 무렵이면 좀 빠르고 입하(立夏) 무렵에 첫차를 따는 것이 가장 알맞다. 이곳 선원에서도 엊그제 한 차례 따다가 볶았고, 오늘 대중들이 나가 또 한 차례 따 왔다. 예년 같으면 나도 아랫마을 사람들을 몇 데리고 따로 차를 땄을텐데, 올 봄에는 하는 일이 많아 짬이 없을 뿐더러 이제는 대중 속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나누어 주는 한 몫으로 족할 수 밖에 없다. 차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바쁜 일에 좇기다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적기 (適期)를 놓치고 딸 때가 더러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우..
오늘 오후 채소밭을 정리했다. 고랭지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오이넝쿨과 고춧대와 아욱대 등을 걷어 냈다. 여름날 내 식탁에 먹을 것을 대 주고 가꾸는 재미를 베풀어 준 채소의 끝자락이 서리를 맞아 어둡게 시들어 가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가꾸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오두막 둘레에는 5월 하순인 요즘 민들레와 철쭉과 듬성듬성 피어난 복사꽃이 볼 만하다. 앞마당 가득 민들레가 노랗게 피고 진다. 혼자서 풀을 매기가 힘에 겨워 그대로 두었더니 천연스런 꽃밭이 된 것이다. 분홍빛 철쭉은 뜰 가에서도 피고 벼랑 끝에서도 핀다. 눈길이 자주 간다. 한 가지 꺾어다 식탁에 꽂았다. 가까이 대하니 참으로 곱다.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서 심은 3백여 그루의 자작나무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는 실하게 자라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복숭아나무는 고랭지라 꽃을 피워도 그 빛깔에 기운이 달린 것 같다. 올해도 묘목을 사다가 스무 그루를 심었다. 봄날 어디를 지나다가 분홍빛 복사꽃을 보면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이 나이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했더니 자기도 복사꽃을 대하면..
우리 같은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불효자다. 낳아 길러준 은혜를 등지고 뛰쳐 나와 출세간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 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보다도 비쩍 마른 할머니의 품속에서 혈연의 정을 익혔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입산 출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더욱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내가 해인사에서 지낼 때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오후의 입선入禪시간, 선실禪室에서 졸다가 대숲에 푸실푸실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혼침昏沈에서 깨어났다. 점심공양 뒤 등 너머에서 땔나무를 한짐 지고 왔더니 고단했던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바람 끝은 차고 산골에는 이따금 눈발이 흩날린다. 아까 산길에서 비전碑殿에 사시는 성공性空스님을 만났다. 80이 가까운 노스님이 지게에 한짐 가득 땔감을 지고 가시는 걸 보고,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온유한 수행자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요즘은 밥 짓는 공양주가 한 사람 들어와 다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님들 두 분이 손수 끓여 자시면서 지냈다. 정진 시간이 되면 거르지 않고 염불 소리가 뒷골에까지 메아리친다. 비전은 염불당念佛堂이기 때문이다. 성공 노스님은 한때 학인學人들에게 경전을 가르..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 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 올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련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결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 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
‘고향의 감초맛’이 낯설었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촘촘히 들어찬 시멘트 건물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좁디좁았던 골목은 시원스레 넓혀졌고 아스팔트 대로변엔 주차된 차들이 생경스런 풍경을 이루고 있다. ‘살아 진천 죽어 용인’ 이란 고사가 있듯 이곳은 나와 내 가족 생존의 터전이었고 인심 좋기로 이름난 꿈에도 그리던 곳이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고 그 사이 산업화가 되었다지만 이리 번화하고 낯선 곳이 되어 버릴 줄이야…. 옹기종기 내려앉은 초가집에 흙먼지 나던 그 시절 자갈길이 그리워진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고속버스로 서너 시간이면 갈수 있는 고향이지만 마음에만 담아둔 채 몇 십 년 발을 들이지 못하였으니 지형조차 변해버린 고향산천이 어찌 낯설지 않겠는가, 문화원 행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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