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형광등이 켤 때마다 아슬아슬했다. 스위치를 올리면 한두 번 끔뻑거린 뒤에야 불이 들어왔다. 그러던 게 오늘은 아예 반응이 없다. 의자를 놓고 형광등을 떼어 보니 양쪽 끝이 거무스름하다. 백열등보다 느린 녀석이 제 긴 몸에 불을 당겨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다크서클'이 짙다. 이젠 불을 끌어오지 못하지만, 일하는 내내 뜨거웠을 형광등의 몸체를 잠시라도 선선한 곳에 눕혀준다. 내가 형광등의 다크서클을 예사로 봐 넘기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남편이 두어 달 걸리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늘 그의 눈 밑부터 살폈다. 눈 밑이 맑고 깨끗할 때가 별로 없었다. 거무스름하거나 심할 때는 푸르죽죽하기까지 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 하면 "이만하면 미남이지...
내가 사는 곳은 오래된 아파트 육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없기에 여든 개의 층계를 올라야 우리 집이 나온다. 집까지 오르면서 마주치는 열두 집 현관문이 크기와 색깔이 똑같다. 십여 년 전에는 열쇠 구멍까지 같은 모양이어서 오밤중에 남의 집 문을 쾅쾅 두드린 술 취한 남자 얘기가 심심찮게 여자들 입에 오르기도 했었다. 서로가 낯선 얼굴로 살아가는 요즘은 자물쇠가 달라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안면을 닫고 산 건 아니다. 자물쇠 모양이 똑 같았던 시절에는 이사를 가는 사람은 섭섭하다는 인사를 남겼고, 이사를 오는 사람은 떡을 돌려 안면을 텄다. 통로 사람들끼리 계모임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기도 했다. 시장에 갈 때는 이웃에다아기를 맡겨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이런 얘기들은 그때 살던 ..
우리 집은 추석날과 설날이 가까워지면 방문 종이를 새로 발랐다. 할머니는 유독 큰방 문에만 손바닥 면적만큼 문종이를 오려내고 대신 뙤창을 붙였다. 부엌으로 통하는 샛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뙤창은 거듭 사용한 이력값을 하느라 얼룩덜룩했다. 새뜻한 문에 댄 헌 유리 조각은 비단옷에 덧댄 헝겊 같았다. 유리 조각 뙤창은 보기는 싫었지만 문을 열지 않고 밖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곳을 통하여 밖에 누가 왔는지, 식구들이 무얼 하는지를 살폈다. 뭐니 해도 이 뙤창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어머니가 부엌이나 마당에서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방에서도 할머니가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귀찮지도 않은지 짬만 나면 구멍에다 눈을 맞추었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어머니는 “제가 잘못했어요.” ..
아버지 산소엔 가뭄으로 인해 군데군데 빈 잔디 위로 한숨만 풀풀 날렸다. 아버지가 공들여 지킨 흔적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잔디도 겨우 마른 풀빛을 머금고 있었다. 90년 만에 닥친 가뭄을 아버지도 아셨을까. 아버지는 바람도 달구어 재워놓고 잔디까지 다 태울 기세로 매일 내리쬐는 불볕을 핑계 삼아 자식들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외롭다는 듯 잡초들을 봉분키만큼 키워놓고 계셨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의 불효의 길이만큼 자란 잡초들이 아버지의 쓸쓸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투정이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 표현은 매서운 불호령이 전부였다. 귀가하는 아버지를 맞이할 때 가족들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불호령이 났고, 또 그때마다 아버지 발 씻을 물을 대령..
시답잖은 일을 당하면 맹물을 마시고 싶다. 그것에는 흐린 마음을 곧세우는 서릿발 기운이 없고, 상대방이 움찔거릴 열기를 내쏘는 물성도 없다. 맹물을 아무리 마셔도 한번 아려진 심사는 여전히 고달프다. 그런데도 속이 쓰리거나 배가 허하면 맹물 한 그릇을 찾는다. 얼마 전에 나름대로 체득한 속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살아가는 동안 황당한 일을 당하는 수가 적지 않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도 따지고 보면 억하심정의 경우를 말한다. 나 또한 그 말을 ‘이유 없이 맞는 매마저 마음속에서 삭히라’는 뜻으로 풀이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생각하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는 미지근한 맹물을 서너 차례 들이킨다. 세상인심이 갈수록 빡빡하다. 너나 나나 추호의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당연히 바..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자 푸석하던 흙 마당이 촉촉하게 젖었다. 한 구석에는 늘 가릉대는 늙은 개의 웅크린 모습과 찌그러진 양재기에 불어터진 밥알, 그리고 헛간 담벼락에 바짝 붙여 매 놓은 낡은 멍석, 장독대위에 내려앉은 햇살과 수돗가 빈 바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달그락거린다. 비 긋고 지나간 마당에 잡초가 파랗다. 거름 한 줌 뿌려 준 적 없고, 갈증날 때 물 한 모금 먹인 적 없어도 어쩜 이리도 잘 자라는지,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사정없이 모가지를 비틀어 내팽개쳐도. 녀석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만 내리면 고개를 바짝 쳐든다. 잡초를 뽑아내고 비질을 한다. 바지랑대에 미끄러지는 한낮의 햇살이 오지다. 오똑하니 앉아 남상거리던 깃 젖은 콩새 한 마리가 포르르 마당으로 내려앉는..
벗도 허물이 없고 만만한 벗이 있듯이 난중에서는 민춘란이 그런 난이 아닌가 한다. 피운 꽃이 야릇한 미소라도 보낸다면 와 닿는 눈길에 흠짓 놀라기라도 하련만, 푼더분하게 반겨주니 도무지 신경 쓰임이 없다. 그저 수수한 자태가 마냥 편하게 마음을 이끌어 줄 뿐이다. 나는 작년에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화단에 심겨져 있던 민춘란 두포기를 캐어 가져왔다. 집안을 꾸밀 화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속 인연을 삼고자 해서다. 이 난들은 7,8년 전에 고향인근 야산에서 캐어 온 것이다. 산악회원들과 득량발전소 뒷산을 올랐다가 눈에 띄기에 캐었는데, 일행들은 '많고 많은 게 민춘란인데 어데 쓰려고 캐느냐'고 타박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향 산에서 자란 난을 곁에 두고 보는 맛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신청않고 ..
나그네가 어느 유명한 성당을 지날 때 종소리가 들렸다. 종소리가 은은하여 소리가 끝날 때까지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다음 날도 나그네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었다. 나그네는 종을 누가 치는지 궁금했다. 분명 건장한 신부님이 종을 치고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종이 있는 성당 꼭대기로 올라갔다. 종을 치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등이 굽고 말을 잘 못 하는 장애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뒤부터 나그네는 그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종지기의 고통 소리로 들렸다. 이처럼 같은 소리도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 문학 모임에 이름이 꽤 알려진 회원이 있다. 나는 전부터 그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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