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산행 길. 출발은 아기의 첫 울음처럼 활기차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젖어들며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산길을 걷는다. 오랜 세월 함께한 삶의 역정처럼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하며 이따금 힘든 표정을 살핀다. 험한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 준다. 긴 산행 같은 인생. 그 인생길이 언제나 평온한 삶이 아니듯 산세와 산경은 한결같지 않다. 생기 왕성한 나무들이 많으나, 간간이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 모양이다. 바닥에는 꺾이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지천이고, 뿌리째 뽑혀 바닥에 누운 채로 이미 말라 죽은 나무도 많다. 생사와 귀천이 엇갈린 모습이다.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고, 외면할 수 없는 존멸의 현장이다. 저것도 자연의 순리일까? 인간이든 자연이든 ..
나는 하루 두 번 바다에 간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어두운 새벽길을 걸어 바다에 가고 다시 저녁 예불을 마치고 저문 산길 걸어 바다에 간다. 절에서 바다까지 소요 시간은 40분. 왕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산길 돌아 마을을 지나 다시 황금 들녘을 지나 바다에 이른다. 새벽에는 별을 이고 가고 저녁에는 별을 거느리고 절에 돌아온다. 길을 걸으며 나는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만약 걸을 수 없다면 이 지척의 바다는 너무 먼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지척에 있으나 가서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절망이 아니겠는가. 내게 가장 큰 슬픔은 아마 걸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병들어 걸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저 풍경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
“우야꼬, 우야꼬, 요 두 눈이 새까망 걸 우웨 직이꼬!” 할매가 내를 업고 달포나 넘끼 월배 신의사 한테 댕길 땝니더. 앞거름 넘꼬 지당들 지내고 한거랑도 건니가 댕깄심더. 한 날은 널따란 바우돌에 내를 니라노코 털퍼덕 주저 앉띠, 한숨을 짚둥겉이 수면서 고런 말을 하시는 기라예. 내가 댓살이나 됐을 낍니더. 뇌막염에 걸리가 전부 다 죽을 끼라 캐샀답니더. 옴마는 젖믹이 동상도 있고 들에 중참도 갖다 날라야 되이끼네, 할매가 내를 두더기로 끼리업고 병원에 댕깄는 갑심더. 심에 부치마 아무데나 앉어가 숨 돌리고 가는데, 의사한테 먼 말을 들었는지 그라고 눈물을 쭈루룩 흘리는 기라예. 그래 내가 할매 조고리를 붙잡고 “할매 내 안 죽을끼다.” 캤십니더. “요누무 가서나가 내 믹살이를 잡꼬 눈알이 밴들밴들하..
제1회 <좋은수필> 베스트에세이 10인 선정작 내 얼굴에는 생각하는 괄호 하나가 산다. 말하는 입의 가장자리에 앉아 말하지 않는 침묵의 힘을 담고 있다. 입술이라는 것이 말하는 날개라면 이는 입가에 어른거리는 민무늬 날갯짓이다. 팔랑팔랑 말의 언저리를 따라 다니지만 수많은 갈래의 인생을 일획으로 담은 웅숭깊은 무늬다. 언제부터 이 괄호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미세하게 찾아왔을 시작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아마도 기슭이 편하다는 걸 알아가던 즈음이지 싶다. 어쩌면 처음부터 변방을 좋아해서 수척한 테를 일찍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감미롭게 좋아한 반가사유상처럼 턱을 자주 괴었던 내 지난날들이 거기에 담겼으리라. 햇살과 바람에도 모습을 숨기지 않았던 무모함에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누구..
수잠이었다. 몇 번을 뒤척였다는 것과 꿈도 꾸었다는 생각을 해낸다. 화를 낸 듯 나를 바라보는 늙은 얼굴과 말 건네며 활짝 웃는 얼굴의 두 사람이 보였다. 웃는 여자 쪽이 오래 등장했고 손도 잡고, 좋은 말도 나눈 것 같았다. 새해 첫날밤인데 그 꿈 괜찮네 하다가 다시 잠이 든 꿈결이었다. “뭐가 이카노.” 옆구리를 맞았다. 꿈인가 했는데 아내 팔꿈치였다. “와 이카노.” 얼떨떨 물었다. 내 한쪽 손이 밀쳐내 졌다는 걸 느끼고는 뭔가 싶었다. 아내 배꼽 아래 언저리에 손이 가 있었던 모양이다. 모처럼 한 침대에 누웠다가 잠결에 그리되었는데 주책없다는 뜻인 것 같아 피식 웃었다. 녹이 다 슬어 작동이 어려운데 옛날 신호가 살아난 줄로 착각했나 보다. 오작동이라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래저래 잠이 깨어버렸..
기도는 신성한 것이지만 농담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조상님이나 전능한 신에게 기도한다. 기도의 대상이 무엇이건 그 간절함은 숙연하게 한다. 나에게는 ‘47’이 기도의 대상이었다. 내가 가진 실낱같은 신앙심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어릴 때 살았던 집에 우물이 있었다. 대문을 나와 자두밭을 지나면 부추밭이 있고 그 아래에 우물이 있다. 우물 속은 깊고 어두웠다. 개구리가 헤엄치고 우물 벽에는 이끼가 무성했다. 속상할 때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나뭇잎을 따서 띄우기도 하고 돌멩이를 던져 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우물 속은 내가 사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산다는 것은 어깨에 짐을 얹는 일이다. 책임져야 할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은 중력처럼 어느 곳에 있든 마..
오이도 옆 귀퉁이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한 무더기의 똥처럼 자리잡은 섬, 바로 똥섬이다. 원래 이름은 덕섬이다. 나는 똥섬이라는 이름이 아주 앙증맞고 마음에 든다. 똥은 하찮은 것, 더럽고 추한 것이라는 생각에 앞서 똘망똘망한 내 조카가 엄마 젖을 맛있게 먹고 눈 똥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것은 구린 냄새가 나지 않고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아 치우기도 쉽고 색깔이 노오랗다. 이 섬은 이름과는 달리 아주 예쁘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자그마한 오솔길이 바다로 이어져 있다. 그 길에는 산국들이 병아리처럼 삐약거리고 있다. 갯내음을 머금은 채 풍기는 국화 향기에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댄다. 갯바위에 서서 서녘하늘을 물들이는 해를 덤으로 한 덩이 가슴에 품으면 내 몸도 붉어진다. 섬에는 갯바위..
문을 밀고 들어서니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말이 유난히 크다. 수건을 건네는 표정도 애써 친근함과 고마움을 전하려는 기색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새삼스럽다. 사우나가 서비스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탕 안은 잠잠하다. 평소에는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만을 택해 다니곤 했는데 혼자라니 도리어 머쓱해진다. 적막을 깨며 물소리를 내기도 망설여질 때, 냉탕에서 인기척이 났다. 한 사람이 또 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한적할 리가 없는데 무슨 일일까? 얼마 전, 주인은 그다지 친숙하지도 않은 내게 하소연했다. 가까이에 대형 사우나가 개업을 앞두고 있는데 손님을 빼앗길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우리집에서도 신축 건물의 사우나가 훨씬 가까울 텐데 굳이 발품을 팔며 낡은 시설의 이곳까지 오겠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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