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으로 우중충한 하늘이 무거워 보인다. 무슨 사건이라도 금방 터질 것 같다, 전에도 잿빛 하늘이 없었던 바는 물론 아니다. 그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왔다. 그것은 잿빛의 알갱이 같았다. 푸른 빛깔만이 하늘의 몫이 아니라고 알갱이는 떨어지면서 수군대는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에 달라붙은 잿빛 하늘을 다시 본다. 멀리 뜬 바다가 하늘을 앞세우고 유리창에 바짝 달라붙어 있다. 바다 또한 잿빛이다. 바다와 하늘의 동심일체를 보다가 나는 깨닫는다. 그것은 근심에 가득 찬 정체불명의 정물화 아닌가 하고. 잿빛은 본래 움직이지 않는 빛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푸른빛을 띠고 있을 때는 구름의 발걸음이 빨랐다. 바다도 예외는 아니어서 배들이 금방 이쪽 연안에서 저쪽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작은 배들이..
걸레는 밥상에 올라가지 않는다. 밥상에 흘린 밥알과 김치가닥과 생선 뼈다귀를 훔치지 않는다. 상다리 바닥 주변에 엎지른 된장국물을 내시처럼 살살 훔칠 뿐이다. 밥상에 올라앉는 걸레가 있다면 그것은 결례다. 행주가 할 일을 함부로 차지하는 분수 모르는 얌체머리다. 남의 몫을 탐내어 가로채는 찰거머리, 그런 거지발싸개도 설치는 판국이다. 있는 허물과 없는 허물로 남을 짓밟고 헐뜯는 낯짝 두꺼운 인사가 버젓이 명함을 내민다. 그러나 걸레는 그가 할 일을 안다. 방바닥을 닦아내고 책장 아래 먼지를 닦아내고 창틀에 몰래 앉은 오래된 곰팡이를 쓸어낸다. 발바닥을 닦는 발걸레도 있다. 걸레가 되기 전에 걸레는 몸을 닦는 타월towel이었다. 머리에 쓰고 목에 걸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사이 타월은 올이 낡아..
김 군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는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무슨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에 뵈온 일이 없었기로 반가이 받아들었소. 그런데, 그대의 가신 어머니는 한 눈을 상하신 분이었소. 그것을 본..
아무도 없는 방에서 울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울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나약한 제 모습 보는 게 두려워 참았습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양동이의 눈물을 흘려야 했으니까요. 참고 참아도 눈물이 핑그르르 돌면 속 입술을 잘근 깨물며 견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본능적 속심이 이성적인 현실을 이길 경우, 꼼짝 없이 봇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볼까 민망하여, 아니 누구에게 못난 모습 들키기 싫어 빈 방에 들어가 펑펑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방문 여는 소리가 나면, 한쪽 구석에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꺽꺽 목을 놓았습니다. 제3자가 말릴 엄두를 못 내게끔 이불자락으로 온몸을 돌돌 싸서 틀어쥐고 앙금이 죄다 토해지도록 용을 썼습니다. 울 장소가 정 마땅찮을 시, 재래식화..
"과묵한 사람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은 내 사춘기 시절의 취향이었다.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모습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의지나 매력 같은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매력이라니, 어림도 없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근래에 들어 점차 과묵한 사람이 싫어진다. 말이 없는 사람은 우선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쉽게 가까워지지가 않는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하였지만 어떤 경우의 침묵이나 늘 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녹이 슨 구리가 될 때도 있고, 삭은 막대기가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만난 사람일지라도 표정이 있는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무표정한 표정은 데스마스크와 다를 바가 없다. 그에게서는 인간의 훈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때로는 ..
바름을 해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이를 사악(邪惡)한 자로 몰고 자신은 바르다고 자처하며, 나아가 동류를 불러 모아서 숨을 모아 산을 날리고 모기 소리를 모아 우레 소리를 낸다. 害正之人, 必驅人於邪, 自處以正, 至於招朋萃類, 衆呴飄山, 聚蟁成雷. 해정지인, 필구인어사, 자처이정, 지어초붕췌류, 중구표산, 취문성뢰.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人政)』권2 「측인문(測人門)2」 해 설 이 글은 조선 말기의 문인인 혜강(惠岡) 최한기의 『인정』 「측인문」에 실린 문장이다. 『인정』은 일종의 정치 에세이로, 정치에 있어서 사람을 감별하고 선발하는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당대의 위정자(爲政者)를 염두에 두고 기술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질에 관한 통찰이 두루 담겨있다는 점에..
돌을 벗 삼아 곁에 두고 묵묵히 앉아 있다. 망중한(忙中閑)이라 할까. 때로 이러한 한적한 시간이 가물거리는 인간의 심혼에 생명의 불길을 당겨 줄지도 모른다. 마침 권솔은 모두 외출하고 빈집에 혼자 있다. 창 밖에는 신록의 물결이 연신 너울거리고 있다. 한동안 버려뒀던 수석이란 이름의 돌들이 저마다 몸짓을 하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돌에도 정이 오가는 것일까. 하나하나 먼지를 닦고 손질을 해본다. 모두가 한결같이 돋보인다. 10여 점 되는 돌들이 그렇게도 모두가 개성이 뚜렷할까. 질감이 다른가 하면 그 형태며 색감이 다르고, 선과 굴곡이 서로 상이한가 하면 균형이며 조화며 규모가 또한 다르다. 어찌 그뿐이랴. 오랜 수마(水磨)와 풍화작용에서 얻은 돌갗의 세련미며 모양새의 추상미는 더더구나 다르다. 수석인들..
애기똥풀, 며느리밥풀꽃, 홀아비꽃대. 우리나라 풀꽃들을 보면 황토 내음과 바람의 숨결과 이슬의 감촉이 느껴진다. 너무나 순진하고 착해 보여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은 풀꽃들이 낯설지 않은 것은 언젠가 한 번 대지의 품속으로 돌아가게 되면, 무덤가에서 웃어줄 꽃이기 때문일까. 풀더미 속에서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고, 이름 한 번 불려지지 않을 듯한 부끄럼 잔뜩 머금은 풀꽃들을 보면, 가만히 다가가 귀엣말을 나누고 싶다. 풀꽃의 표정은 시골 아낙네처럼 수수하다. 치장을 하지 않아 눈을 끌지 않으나 순박하고 단아하다. 우리 산등성이의 고요하고 은근하게 이어지는 임의 눈썹 같은 곡선, 어둠을 걷어내는 여명이 창호지문을 물들일 때의 눈부시지 않으나, 마음이 환해지는 그 삼삼하게 맑은 빛깔을 품고 있다. 애써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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