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시인 1958년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와 2003년 《문학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서해와 동침하다』, 『외치의 혀』, 『몹시』가 있다. 에세이 『세상의 존귀하신 분들게』(유현숙 외 28人 공저)가 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을 받았다. 제10회 을 수상했다. 온시 동인. 시산맥 회원 유월의 관능 / 유현숙 그랬다 선착장은 멀고/ 먼바다 저편에는 먼 섬이 있다/ 신도는 저기/ 시도 거쳐 모도까지 섬에서 섬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떨어져 앉은 저만큼 먼 물길 건너서 닿은 섬/ 섬은 그랬다/ 바람이 붉고 해당화가 적적한 햇볕이 더운 땅에/ 좁고 가파른 오르막과/ 햇살이 미끄러지는 경사와/ 불쑥 내민 모퉁이와/ 수상하게 조용한 한나절과/ 한가한 거기에/ 늘 그렇듯 ..
쿵작쿵작 쿵따라쿵짝, 악단이 전주를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가수는 전주의 끝자락을 놓칠세라 발 박자를 치며 리듬을 탄다. 전주는 1절의 멜로디를 무대에 깔아놓고 암막 뒤로 비켜선다. 가수가 노랫말을 음미하며 감정을 잡는다. 가수가 1절의 멜로디를 손끝으로 낚아채며 객석을 휘어잡는다. 가수가 생로生老의 아름답고 숭고한, 병사病死의 연약하고 덧없는 서사를 숨김없이 토해낸다. 1절의 노래를 끝낸 가수가 가쁜 숨을 고른다. 악단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감미롭게 간주를 연주하고, 2절의 멜로디를 가수에게 넘긴다. 가수가 2절을 열창하면 악단은 오선지를 박차고 나올 엔딩을 준비한다. 가수가 청중의 희로애락을 멜로디에 실어 노래한다. 트로트의 신내림이 빙하의 피오르가 되어 청중의 가슴을 후벼 파며 객석을 휘몰아친다..
오늘은 어린이날 100번째 생일입니다. 방정환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이 아니다. 나에게 독립운동은 어린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간곡한 마음을 담아 1923년 어린이날 방정환 선생이 발표한 글이 ‘어른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 동무들에게’입니다. 방정환 선생은 위 글과 함께 △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며 △ 어린이가 배우고 놀기에 적합한 시설을 제공하라는 ‘소년운동의 선언’을 1923년 어린이날에 배포했습니다. 1924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아동권리선언’을 채택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선구적으로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문을 발표한 셈입니다. 이후 유엔은 1..
정한아 시인 1975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여기저기에서 자랐다.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 『울프 노트』가 있다. 구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 어른스런 입맞춤 / 정한아 내가 그리웠다더니/ 지난 사랑 이야기를 잘도 해대는구나// 앵두 같은/ 총알 같은/ 앵두로 만든 총알 같은/ 너의 입술// 십 년 만에 만난 찻집에서 내 뒤통수는/ 체리 젤리 모양으로 날아가버리네// 이마에 작은 총알구멍을 달고/ 날아간 뒤통수를 긁으며/ 우리는 예의 바른 어른이 되었나/ 유행하는 모양으로 찢고 씹고 깨무는/ 어여쁜 입술을 가졌나// 놀라워라/ 아무 진심도 말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에게..
번역문과 원문 산천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다. 그러나 반드시 사람을 기다려서 드러난다. 山川者 天地間無情之物也 然必待人而顯 산천자 천지간무정지물야 연필대인이현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양곡집(陽谷集)』 권14, 「면앙정기(俛仰亭記)」 해설 소세양이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에 쓴 기문의 일부로, 명인(名人)과 명문(名文)을 통해 명승(名勝)이 되는 상관관계를 나타낸 문구로 더 유명하다. 소세양은 그 사례로 중국의 난정(蘭亭)과 적벽(赤壁)을 거론하였다. 난정은 절강성 소흥에 있는 어느 연못의 작은 정자였다. 동진(東晉)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우군장(右軍將)으로 부임해 벗들과 시회(詩會)를 열었으며, 「난정집서(蘭亭集序)」를 지은 곳으로도 이름났다. 적벽은 호북성..
명절이 턱밑으로 다가서면 나는 부엌칼부터 손본다. 제물祭物을 준비할 때마다 칼날이 무디다는 집사람의 타박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단 철철이 이어지는 종갓집의 기제忌祭를 모시고 있는 내 정성의 단초이기도 해서이다. 칼을 갈려면 우선 숫돌부터 챙겨야 한다. 숫돌은 칼이나 낫 따위를 갈기 위한 천연 석재를 이용한 살림도구의 하나로, ‘수’와 ‘돌’이 어우러져 형성된 합성어合成語이다. 이때 ‘수’는 어원적으로 돌石의 의미를 내포한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석질이 부드러운 퇴적암 등을 채취하여 거친 숫돌과 고운 숫돌로 구분하여 사용해 왔다. 그런데, 근자엔 탄화규소나 산화알루미늄을 활용한 인조 숫돌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뒤란 샘가에 웅크리고 앉아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
저녁 산책길에 금계국을 만난다. 산기슭이 물감을 들인 듯 노란색이 일렁인다. 큰 키에 쭉 뻗은 몸매가 이국적이다. 어린 시절엔 못 보던 꽃이다. 그럴 것이 그들의 고향은 북아메리카란다. 무슨 연유로 한국으로 이민 와 다문화 가족이 되어 살고 있을까. 노란 꽃받침과 검은 씨방은 해바라기의 동생일 것 같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잔디와 클로버 사이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색의 민들레가 가엽게 보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 했던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다. 엎드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개망초의 큰 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개망초 꽃은 나름 당당한 모습이다 비록 꽃잎은 작아도 금계국 키와 비슷해서인지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잎사귀도 거의 비슷하다. 꽃 크기와 색깔만 다를 뿐이다. 닮은 데는 ..
김사인 시인 1956년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와 편저서로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지훈상 등을 수상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쳤다. 김사인 시인, 창비가 주는 '만해문학상' 거부 - 스트레이트뉴스 김사인(59) 시인이 창비가 주관하는 제30회 만해문학상(상금 2000만원) 수상을 사양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이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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