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산 / 김지하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 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 임진택 선생이 부르시는 '빈산' 무화과 / 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게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블로그] 순수 서정의 대가 피천득, 그리고 그의 시 순수 서정의 대가 피천득, 그리고 그의 시 순수 서정의 대가 피천득, 그리고 그의 시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blo..
성공이란 무엇인가 / 랠프 월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에게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미국의 사상가이며 시인이다. 이 시는 저서 〈자기 신뢰self reliance〉에 수록되었다. 이 저서는 버락 오바마(제44대 미국 대통령)의 애독..
설날 고향 가는 길 / 오광수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 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 있을 종종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 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구요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오광수 시인(이현세 화백 그림) 내가 당신에게 행복이길 / 오광수 내가 당신에게 웃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손짓과 우스운 표정보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당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낮은 곳을 향하여 / 정호승 첫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명동성당 높은 종탑 위에 먼저 내리지 않고/ 성당 입구 계단 아래 구걸의 낡은 바구니를 놓고 엎드린/ 걸인의 어깨 위에 먼저 내린다// 봄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설악산 봉정암 진신가리탑 위에 먼저 내리지 않고/ 사리탑 아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늙은 두..
데미안 / 헤르만 헤세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태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개를 펼친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 데미안(소설) 해설 - 나무위키
흔들리는 것이 바람 탓만은 아니다 / 박건삼 입춘과 우수, 경칩이 있는 2월은 설레임의 달이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2월은 그래서 상큼하다 아직은 설한풍에 비수를 감추고 훈풍의 미소를 띄우지만 난 알고 있지 열여섯 가시내의 젖몽울 같은 수줍음과 부풀음에 떨고 있는 2월은 가슴 설레는 달이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서 순이에게 바치고픈 삼돌이에겐 너무 짧은 달이지만 3월, 그 첫 휴가를 기다리는 김일병의 깨알 같은 수첩 속의 2월 얼마나 그리운 달인가 보조개가 귀여운 초롱초롱한 소녀 같은 때론 비비드한 말괄량이 선머슴애 같은 애증이 엇갈리는 2월은 변덕스러워 좋다 오랜만에 노사가 손잡고 지하철 파업을 중단하고 시어미와 새댁이 군에 간 아들과 지아비를 손꼽아 기다리며 화해하는 그런 달 2월은 가슴 조이는 모든 ..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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