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감옥 / 김원식 수번 1258, 죄명은 불효다 수원법원 가는 하늘 길에 낮달이 조등처럼 떠 있다 어머니 떠나신 지 백 일째 슬픔을 견뎌온 시간들이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다 고개 돌리면 배롱나무 꽃 그리움을 꾹꾹 쟁여서 백 일 동안 달군 울음 덩어리를 벌서듯 매달고 서 있다 상엿소리 홀로 가던 날 목백일홍 떨어질 때마다 꽃상여는 자주 발길을 멈췄다고 그때마다 엄마는 뒤돌아보며 갇힌 자의 울음을 들었으리라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린 나는, 엄마의 칠월을 밤이면 울었다 데칼코마니-아버지 / 김원식 아버지는 칭찬도 화를 내며 하셨다/ 전교 우등상을 받던 날/ 궐련은 물며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노름판에서 논밭뙈기 쏵 날려 불고/ 저것을 어찌 갤 켜, 먼 조화여 시방.”/ 눈보라에 빈 장독 홀로 울던 새벽,/..
막걸리 / 함민복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
하상욱 - 나무위키 트위터 계정 프로필 사진 위 사진은 단편시집 '서울 시'의 '목차' 부분에 나온 사진이다. '서울 시' 단행본 중간의 사진들을 보면 이 사진을 찍으려고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며, 하상 namu.wiki 좀 더 대충 살아야 꿈이 보인다 - 하상욱 『서울 시』 | YES24 채널예스 네 줄의 짧은 시로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 『서울 시』의 저자 하상욱. 작가,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아직은 어색한 그는 아주 우연히, 전자책을 내게 됐고 단행본을 펴내게 됐다. SNS 시인, 애니팡 ch.yes24.com [TEC콘서트] "두려움이 준 용기 없는 도전조차 도전" 하상욱 시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짧은 문장으로,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 그런 글을 우리는 '시(詩)'라고 부른다. 짧은..
목숨 / 박이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남의 손에 이끌리어 다니는 강아지처럼 나는 남의 이야기에 나를 빼앗기고 손오공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세상만사 낌새도 못 차리고 겨울 개구리 잠자듯 좁고 답답한 어둠 속에 허깨비처럼 살았구나 그때의 시간은 현실이었나, 꿈이었나 성경은 아브라함의 가계(家系)를 선포하고 영웅 신화들은 생명의 존엄을 선포한다 결코 철학적일 수 없는 목숨이어라. 해빙기 / 박이도 봄밭엔 산불이 볼 만하다./ 봄밤을 지새우면/ 천 리 밖에 물 흐르는 소리가/ 시름 풀리듯/ 내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다.// 깊은 산악마다/ 천둥같이 풀려나는/ 해빙의 메아리/ 새벽 안개 속에 묻어오는/ 봄 소식이 밤새 천리를 간다.// 남 몰래 몸 풀고 누운 과수댁의/ 아픈 신음이듯/ 봄밤의 대지엔/ 열병하는 아지랑..
대책 없는 봄날 / 임영조 얼마 전 섬진강에서 가장 예쁜 매화년을/ 몰래 꼬드겨서 둘이 야반도주를 하였는데요/ 그 소문이 매화골 일대에/ 쫘악 퍼졌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도심의 공원에 산책을 나갔더니/ 아, 거기에 있던 꽃들이 나를 보더니만/ 와르르 웃어젖히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요/ 거기다 본처 같은 목년(목련)이/ 잔뜩 부은 얼굴로 달려와/ 기세등등하게 널따란 꽃잎을/ 귀싸대기 때리듯 날려대지요/ 옆에 있는 산수유년은/ 말리지도 않고 재잘대기만 하는 품이/ 꼭 시어머니 편드는 시누이년 같아서/ 얄밉기만 하고요./ 개나리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꼼지락 거리며/ 호기심어린 싹눈을 내미는데요./ 아이고 수다스런 고년들의 입심이 이제/ 꽃가루로 사방 천지에 삐라처럼 날리는데요./ 이 대책 없는 봄을 어찌해야..
아침 / 오세영 아침은 참새들의 휘파람소리로 온다. 천상에서 내리는 햇빛이 새날의 커튼을 올리고 지상은 은총에 눈뜨는 시간 아침은 비상의 나래를 준비하는 저 신들의 금관악기 경쾌한 참새들의 휘파람 소리로 온다. 어머니 / 오세영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네 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설날 / 오세영 새해 첫날은/ 빈 노트의 안 표지 ..
추신 / 박주하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붉어진 앵두 같은 일 시다 달다 말도 못하고 핏방울 맺힌 혀끝으로만 굴리다가 밤길 홀로 걷다가 만난 빨간 우체통에 얼굴을 들이밀고 남몰래 중얼거렸지 사랑한다 너만 알고 있어라 벚꽃 회의 / 박주하 납골당 마당에서 긴급하게 가족회의가 열렸다 부친의 유골은 2층에 봉안되었는데 자식의 뼛가루를 3층에 올리는 것은 불효라고 주장하는 유족들, 울타리 넘어 봄날의 꽃밭으로 날아간 영혼의 행적은 묘연한데 고인의 뼛가루가 남아서 여전히 식솔들을 통섭한다. 납골당의 원칙을 내미는 관리인들과 생을 졸한 순서를 따지며 핏대를 세우는 유족들의 대치가 팽팽하다 오래된 벚나무들이 인간의 별난 절차를 경청하며 잎 먼저 틔운 삶과 꽃 먼저 피운 저들의 생애를 배심한다 생사의 위계질서가 설왕설래 ..
부부 / 황성희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어머니의 봄 / 황성희 날씨가 풀렸으니 된장도 담그고 고추장도 담아/ 보내신다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낯익은 담벼락에 나풀거리는/ 메모지 한 장으로 날아왔다/ (주차하세요, 저는 8시에 돌아옵니다)/ 광고전단처럼 가볍게// 앞뒤 마음 안에 쌓인 적막을 털어 내며/ '내 한참 때는' 그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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