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세우고 살게 마련이라고 전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복'이라는 말을 좁게 이해하여 어려움이 없이 안락한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친 의사(義士)나 죽음을 무릅쓰고 험준한 고산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목적은 안락한 삶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말을 넓게 해석하여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삶을 갖는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인간다운 삶'이라는 말..
한국산 자동차가 캐나다와 미국 등 외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의 하나는 그곳으로 이민간 교포들이 솔선하여 국산차를 사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국산 자동차의 판매소가 없는 미국 어느 시골에 사는 교포는 포니 차를 구하기 위하여 수천 리 먼길을 달려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역만리 해외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몰고 달릴 때 우리 교포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환희와 긍지를 느낀다. 그만큼 우리 한국인은 겨레와 나라에 대한 향념이 강한 것이다. 국제 운동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나는 우리 한국인의 나라 사랑을 피부로 느낀다. 어느 나라 국민인들 제 나라 선수들에 대하여 뜨거운 응원을 보내지 않을까만, 우리 한국인의 응원은 보통 이상으로 열기에 넘친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박수를 치며 목청을 높일 때, 온 국민은 글자 그대로 ..
단둘이 마주 앉아 비밀에 가까운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에 대해서 나는 깊은 정을 느낀다. 친구로 믿기에 그런 이야기까지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마움에 젖은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알려서는 안 될 소중한 이야기 같아서, 나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묵묵히 미소만 지으며 말이 없는 친구도 좋지만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친구도 싫지 않다. 다만 그 말끝마다 가시가 돋힌 이야기는 신경을 괴롭히며 은근히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이야기에는 흥미가 적다. 가시가 돋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내려치는 풍자일 경우에는 속이 시원하다. 비록 자기 자랑이라 할지라도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도 몰랐던 성공담을 처음 들려줄 경우에는 더없이 기쁘다. 그러나 아무..
어떤 기업체 여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본 적이 있다. "직업이라는 것이 쉽게 말해서 무엇입니까?" 망설이는 듯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기에 가장 가까운 자리의 아가씨에게 말을 시켰더니, "삶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답했다. 직업의 가장 큰 뜻이 돈벌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아가씨 이외에도 많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돈의 힘이 압도적인 오늘의 사회적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직업의 큰 뜻이 돈벌이에 있다고 보는 까닭에 사람들은 돈의 손짓을 따라서 좌우로 흔들린다.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방법도 사양하지 않고, 돈만 더 준다면 미련 없이 새로운 직장을..
잊혀지지 않는 사람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들어 있는 5월을 맞이하였으니, 이 정겨운 계절에 어울리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쩌면 글이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막상 원고지를 대하고 보니 붓이 나가지 않는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몇 편의 글을 썼고, 생존한 사람에 대해서 마음속 이야기를 내보낸다는 것은 낯 간지럽고 쑥스러운 일이다. 눈을 감고 조용히 돌이켜보면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은 역시 나에게 호의와 우정으로 대해 준 사람들이다. 인간이란 대개 자기중심적이 어서 저에게 고마웠던 사람일수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동안 신세를 진 사람들만 해도 이루 헤..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첫날의 끝 순서인 만찬 중간에 이 모임에서 총무 격으로 수고를 하던 분이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여흥을 위한 사회를 맡아 보고자 자신의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일어선 모양이었다. 그날 만찬을 제공한 지방 유지에 대한 감사의 말이 우선 있었고, 다음에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하였다. 재치 있는 말로 좌중을 웃겨 가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옥에도 흠이 있었다. 자동 소총처럼 많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가끔 실언도 있었다. 그 실언의 예를 구체적으로 여기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옮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실언이었으니까. 여흥 석상에서의 실언이란 대체로 심각한 따위의 것은 아니다. ..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노력을 하면 노력한 만큼 성과가 생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일이 노력한다고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는 바가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 경험하는 사실이다.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리로 향하여 전심전력하면, 대개는 목표에로 조금씩 접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심리 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일 가운데는 의식적 노력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올 경우도 있다. 가려움을 면하기 위해서 가려운 곳을 긁으면 도리어 점점 더 가려워지듯이, 목표로의 접근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도리어 멀어지는 역설적 현상도 더러 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밝혔듯이, ..
10여 년 전 일이다. 어느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현관에 진열된 여자용 신발이 열 켤레도 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다. 친구 내외가 모두 외국에서 여러 해 살다 온 사람들이었고, 부인도 직장에 나가는 유복한 가정이었다. 신장 대용으로 쓰이는 외국산 신걸이가 현관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신걸이에 물고기 비늘처럼 줄지어 꽂혀 있는 여자용 신발이 열 켤레도 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던 것이다. 20여 년 전에 미국 어느 잡지에 실린 넥타이 광고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일곱 개의 넥타이를 한 세트로 묶어서 파는 것이었는데, 요일마다 하나씩 갈아 매도록하기 위하여 일곱 개를 한 묶음으로 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서 갈아 맬 수 있도록 서너 개의 넥타이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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