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김종삼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아들 넷을 낳았다/ 그것들 때문에 모진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아우는 비명에 죽었고/ 형은 64세때 죽었다/ 나는 불치의 지병으로 여러 번 중태에 빠지곤 했다/ 나는 속으로 치열하게 외친다/ 부인터 공동 묘지를 향하여/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세상에 남길 만한/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죽는다고/ 그러나/ 아직도 못 썼다고//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 엄마 / 김종삼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들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行商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 가는 山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거랑 입을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은 소 목덜미에/ 할..
삼베 두 조각 / 나희덕 눈 내리는 아침/ 할머니는 손수 지어놓으신 수의로 갈아입으셨다/ 수의는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수의를 지어놓고도 이십년을 더 사신 할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이 되어서야/ 연듯빛을 군데군데 넣어 만든 그 수의를/ 벽장 속에 숨겨둔 날개옷처럼 차려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버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도 허지, 그것을 안 맨들 양반이 아닌디 아닌디....../ 어리등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의 두 입술은 설핏 웃는 듯도 하였다/ 상자 속에는 버선 대신 삼베 두 조각이 들어 있어서/ 그걸로 잘 마른 장작 같은 두 발을 싸드렸다/ 삼베 두 조각을 두고/ 할머니는 왜 끝내 버선을 만들지 않으셨을까/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 에 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
어머니 / 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알아/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2 / 김초혜 우리를/ 살찌우던 당신의/ 가난한/ 피와 살은 삭고/ 부서져 허물어지고// 한 생애 가시어/ 묶여 살아도/ 넘어지는 곳마다/ 따라와/ 자식만 위해/ 서러운 어머니// 세상과/ 어울리기/ 힘든 날에도// 당신의 마음으로/ 이 마음 씻어/ 고스란히 이루어냅니다.// 어머니 3 / 김초혜 엎어지고/ 두려워도/ 편히 잠들고 깨서// 즐거운 새날이/ 되게 하시던 어머니/ 무덤에 볼을 대고/ 귀 기울이면/ 아직도 이별 못한/ ..
산에 대하여 / 신경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 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자화상 / 최승자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 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 나는 태양에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 최승자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시인론 / 허수경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를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이다. 여태껏 누군가가 써오던 시를 쓰면서 시인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고아인 시인들을 사랑한다. 모어로 아무도 밟지 않은 영토에서 비틀거리는 시인들을 존경한다./ 균열을 감지할 때 온전히 경험을 해야 한다. 이것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몸을 정확하게 통과(하는 시...)/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도 부도덕한 이들은 많다. 다만 부와 권력의 문화라는 것이 나를 미학적으로 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인간의 결핍에 관심이 있다. 결핍이 빚어내는 내면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소프라노 김순영 가곡 : 진달래꽃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테너 심송학 가곡 : 산유화 못잊어 / 김소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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