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난 성격 탓인지, 느긋한 인생관 탓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짚을 순 없지만 나는 대부분의 일을 빨리 해내지 못한다. 그 느린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였지 싶다. 바쁜 농번기 철이 되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정지에서 채전으로, 우물가로 달려다니셨다. 그 와중에도 나는 측간에 가 앉으면 들고 있던 종이쪽의 글씨들을 닳도록 읽고, 흙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기운을 잡아 갖고 놀거나, 떠다니는 먼지들을 움켜쥐다가 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엉덩이를 들어 냄새나는 그곳을 나오곤 했다. 그런 나를 본 어머니의 일갈은 한결같았다. “이 호랭이 물어갈 놈의 가시내야, 똥 집어먹고 자빠졌냐?” 오늘도 그랬다. 몇 가지 서류를 마감일에 간신히 맞춰 들이밀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느긋하게 학교에서 나왔다. 일상이라는 ..
봄철 들판에서 퇴비 냄새가 난다. 겨울 동안 굳었던 땅이 해빙하는 동안 흙과 흙 사이가 헐거워지고 있다. 대지가 숨을 쉬는 것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여기저기서 흙을 갈아엎는다. 땅이 간직한 수분과 영양분을 작물이 쉽게 빨아들이도록 농사 준비를 한다.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도 멀지 않았다. 봄이 익고 있다. 꽃샘추위가 느슨해지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늘어간다. 겨울동안 몸이 무거워진 탓인지 외출하며 활동량이 많아질수록 기력이 모자란다. 나도 봄 들판같이 진즉부터 몸갈이를 하고, 보양식이라도 챙겨 먹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흙을 지켜보면서 새삼 부실해진 변화를 깨닫는다. 칠십 년대 후반 즈음 나는 대여섯 살이었다. 도시에 살았지만 오빠들이 방학을 하거나 종가집인 외가에 행사가 있게 되면 시골에 갔다. 외가..
‘인문학적인 집 석류 5호’ 골목을 들어서자 특이한 문패가 시선을 잡았다. 직사각형을 교묘히 겹쳐 놓은 듯 세련된 집이었다. 한참동안 서서 그 집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이 있던 곳인데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내가 그리던 골목안의 모습은 사라지고 낯선 집들로 촘촘하다. 십여 년 전에도 그랬다. 문화예술회관에서 학원장들의 연수교육이 있던 날, 무슨 마음이었는지, 근처 그 오래된 골목이 생각났다. 연한 나뭇잎들이 마음을 간질이고, 봄 햇살이 와그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큰길 건너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초입이 짧아졌다. 탱자나무 울타리도 사라졌다. 그런대도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그리움이 아지랑이로 서성댔다. 내가 살던 집을 찾았다.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대문 옆의 키 큰 가죽나무..
건강했던 젊은 시절에는 제2의 집이 나에게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노라니 변수가 생겼다. 싫고 좋고가 없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예전 대가족시대에는 웃어른께서 병들면 자식들이 봉양하고 병수발을 들었다. 그리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받들었다. 지금은 핵가족시대이고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건강한 가족들은 경제생활을 꼭 해야 한다. 삶을 살아야 하니까. 살다 보니 나도 병이 들었다. 집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다 사정이 생겨 청주 시립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오니 마음은 착잡했지만 가족 모두가 사는 길이라 생각되어 결정을 했다. 청주 시립 요양병원으로 오니 의사 선생님,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있어 마음..
길상사를 거닐면서 깨닫는다. 사랑은 빼앗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놓아 주고, 지켜 주고, 비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개인 간의 사랑은 작은 것이요, 사회와 국가와 인간을 사랑함은 큰 것이다. 진향은 백석을 사랑하고 백석을 극복하고 승화시켜, 무소유의 이론을 완성한 최초의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숭고하고 장엄한 인간 정신이다. 삼각산이 한 여인을 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길상화 보살의 숨결과 사랑을 느낀다. 아니 삼각산이 여인을 품은 것이 아니다. 여인이 열두 폭 치마로 삼각산을 휘감아 품었다. 한 순간의 진리가 천년까지 갈까? 아니면 만년까지 갈까? 아마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하리라 믿는다. 진향은 무소유 어느 대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인간사에 길이 남을 비우고, 떠나기를 실천..
천마가 긴 잠에서 깨어, 훨훨 날아 나에게로 왔다. 신라에서 오늘날의 청주까지 1600년이라는 멀고 먼 세월을 달리고 날아서 왔다. 나를 찾아 긴 시간 달려오느라 피곤한지 박물관 한쪽에 얌전히 누워 자고 있다. 앞에는 ‘촬영 금지’라는 경고문구가 있다. 빛에 의해 훼소될까봐 조심하라는 말이려니 생각했다. 천마는 금방이라도 깨어나 땅을 박차고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천마문 말다래는 진품인데 제한 공개되었었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을 세 번이나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천마를 보는 순간, 너무나 아름다웠다. 건강하고 두툼한 엉덩이, 구름 위를 나는 듯 부지런한 발놀림, 날개가 된 것 같은 말갈기와 꼬리, 신비롭고 은은하게 그려져 있었다. 청주까지 1600년을 쉼 없이 달려온 천마는 숨 가쁜 입김, 바..
불치병을 판정받고 죽음을 준비 한다. 내게도 죽음이 다가왔다. 생로병사가 아직은 멀리 있는 줄 알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준비도 없이 가기 보다는 주변을 정리하고,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비록 나에게 마음과 뼛속까지,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 또한 나와 인연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으므로... 마음에 떨림과 무서움이 엄습했다. 생, 로, 병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사”까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백세 시대인데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까기를 수용해야..
번 역 도적이 없다고 도적을 못 잡는 신하를 기르지는 않는다. 不以無盜而養不捕之臣 불이무도이양불포지신 - 조귀명(趙龜命, 1693~1737), 『동계집(東谿集)』권5 「오원자전(烏圓子傳)」 해 설 조귀명의 「오원자전」은 고양이를 오원자라는 인물로 의인화하여 쓴 가전이다. 작중에서 오원자는 원래 미천한 신분에 도적질까지 일삼던 금수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도적 자씨 일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원자의 능력을 알아본 황제의 특명을 받고 도적떼의 소굴로 진격하여 일망타진하는 공을 세운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오원자에게 포상으로 고기와 가죽과 ‘오원자’라는 제후의 작위,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의 수장 자리를 하사한다. 그리고 오원자의 공을 치하하는 조서(詔書)를 내리는데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바로 이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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