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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산 중턱을 오르자 뿌연 안개를 걷어 올리며 적막했던 성전의 터, 검정 부리 하나를 쑥 내민다. 1천500여 년을 이어오는 승가람임에도 세상에 그렇게 알려지지도 않으면서 경이로움이 스민 그곳에 귀한 문화유산이 있었다. 여름 절집의 운치도 느낄 겸 수미단의 숨은 뜻을 알아보려고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경산 시내를 조금 벗어나 청도 쪽 자동차로 십여 분 달리다 보면 남천면 산전리 이정표가 나온다. 옛 압독국의 젖줄인 남천을 따라 아담한 마을로 접어들다가 모골 길 2km 정도 가면 그 끝인가 싶은 곳, 학의 부리쯤에서 천년고찰 경흥사를 만난다. 열기가 이곳만은 비켜 가는지 제법 신선하다. 도심의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 서 있는 듯하다. 수미단(須彌壇)이 불교 공예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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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재산은 인간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아닌 나무가 재산을 가졌다. 토지를 가졌다고 부자나무라고 한다. 국내 최초로 재산을 보유한 나무이기에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영험한 기운을 가진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石松靈)은 석평 마을의 상징수이다. 반송인 이 소나무는 위대한 유산을 가졌기에 사람처럼 주소와 주민등록 번호도 가졌다. 재산을 가졌기에 석송령은 사람처럼 해마다 재산세와 방위세를 낸다. 또한 장학금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석송령은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가졌다. 이러하기에 석송령은 인간 못지않게 존재의 가치를 가졌다. 낮은 키에 수많은 가지를 달고 있는 이 소나무는 반원을 그리고 있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듯..
오늘은 꼭 그를 만나러 가야 했다.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벨이 한참 울리도록 응답이 없었다. "이 번호는 사용하지 않는 전화이오니….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초조하게 안부를 물었다. 중환자실 간호사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환자의 상태를 묻고 조심스레 꽃을 좀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시간을 끌기에 '오늘도 안 되겠구나.'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괜찮다는 대답이 왔다. 절대로 안 된다더니…. 의아했다. 이제는 먹거리를 준비해 갈 필요가 없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만복집 굴짬뽕만 찾더니 한 달 전에는 꽃을 갖다 달라고 했다. 오랜 병원생활을 한 그가 병실에 꽃 반입이 금지된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병원 측의 거절에 차일피일 하다가 그만 부탁을 잊어버리..
올가을은 화살나무의 붉은 단풍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붉다’고 한 단어로 말하기엔 부족하다. 투명하게 붉은 색깔에 약간의 분홍빛을 더한 그런 오묘한 색감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울하여 집을 나섰다가 화살나무들의 단풍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화려한 단풍도 잠시, 화살나무는 빈 몸으로 내 앞에 섰다. 화살나무는 내년이면 또 새잎으로 단장을 할 수 있지만, 숨탄 모든 생명은 단 한 번뿐이다. 몇 생을 윤회한다고 할지라도 전생의 나를 지금의 ‘나’라고는 할 수 없다. 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철학사에 길이 남는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세네카의 죽음은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위대하다. 이 두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환승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40대 초반의 남자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옷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땟국물이 흘렀다. 한눈에 걸인이거나 노숙자로 보였다. 나는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안경을 벗으면서 “내가 무섭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물음엔 간절한 무엇이 있었다. 봉변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감추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너무나 불행하다면서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행복하려고 노력합니다.”라고 한마디했다. 그는 “아줌마는 참 행복해 보여요.”라고 말한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
아침에 눈을 뜨면 글 쓰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숨을 쉬듯이 글을 써 본다. 내가 살아 숨쉬고 있구나 확인도 하고 흐르는 시간을 종이 위에 머물게도 한다. 그리고 삶의 에너지가 글자로 변하여 하얀 종이 위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흐뭇한 기분 속으로 빠져 들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하고 싶은 욕망도 있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마음속이 후련한 느낌은 있지만 말이 들어 있던 자리가 텅 비어지면서 허무해진다. 그런데 글을 많이 쓰면 가슴이 가득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릇에 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릇에 담는 것도 시(詩)라는 그릇도 있고, 소설이라는 그릇도 있지만 내가 비색(翡色)의 청자 항아리 같은 수필을 좋아하는 것은 글 속에서 인품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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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교정을 보는 게 주요 업무인 때가 있었다. 온종일 남의 글만 읽는다. 번쩍 눈에 띄는 것은 드물고 해가 겨워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목덜미가 뻐근해 왔다. 수필의 대부분은 비슷비슷한 일상사요 지나온 삶의 편린들로 시차적인 기록들이었다. 하품을 쫓을 만큼 펄떡거리는 황금 비늘의 대어는 만나기 어렵고 그래도 돋보기를 고쳐 쓰고 읽고 또 읽는다. 그러다보면 마음에 끌리는 소재를 다룬 글과도 만나게 되는데 소재를 설명하느라 예시 부분으로만 그쳐버린 경우에는 안타까웠다. 마치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나섰는데 별안간 길이 뚝 끊기고 마는 막다른 절벽과 만나는 느낌이었다. 왜 과감히 진일보 하지 못하는가? 글 속에서 왜 생각이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는가? 경험의 기록, 체험의 진술에만 그치지 말고 한 발 더 나아..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길들어온 전통 안동칼국시를 어디서 맛볼 수가 있을까. 경북 북부지방 사람들은 칼국수를 굳이 ‘칼국시’ 하고 부른다. 왜 그럴까. 물론 그 지방사투리겠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웃기는 사연이 없지 않다. 칼국수는 밀가루로 빚은 것이지만 칼국시는 밀가리로 빚은 것이다. 밀가루는 봉투에 담지만 밀가리는 봉지에 담는다, 봉투는 종이로 만든 것이고 봉지는 신문지로 만든 것이다. 봉투는 풀로 붙이지만 봉지는 밥풀로 붙인다. 밀가루는 가게에서 팔지만 밀가리는 점방에서 판다. 여기서 우리는 안동칼국시가 갖는 그 지방의 고유한 고집을 짐작할만하다. 그쯤 되면 타지방의 국수와 구별되는 고집과 배짱을 가질 만도 하다. 요즘 시쳇말로는 안동칼국시가 차별화로 경쟁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이런 칼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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