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형님댁에서 김장을 하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에 들어서니 흥이 실린 목소리들이 화음처럼 울려 퍼진다. 형님은 직접 농사지은 배추를 소금에 절여 소쿠리에 물기를 빼두었다. 커다란 다라이에 젓갈, 고춧가루, 마늘, 찹쌀풀 등 양념을 섞어가며 속 준비에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갓, 무, 쪽파 등을 다듬는 손길이 재바르다. 형님은 간은 맞는지 더 넣을 것은 없는지 절인 배추에 양념을 쓱 묻혀 생굴을 얹고 깨를 묻혀 입에 넣어준다. 첫맛은 톡 쏘는 매운맛에 조금 짜다 싶지만 자꾸 받아먹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맛이다. 각자의 입맛에 따라 짜다, 간이 맞다, 맵다 한마디씩 거든다. 미식가인 막내 동서가 이프로 부족하다는 사인을 보내자 눈치 백 단인 형님은 누른 호박과 곶감 달인 물..
해외여행에 푹 빠졌다. 팬데믹이 진행 중인데 무슨 해외여행이냐고 묻겠지만, 랜선 투어를 하고 있다. 랜선 투어는 목적지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검지 하나로 성지순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아름다운 곳을 샅샅이 여행한다. 랜선 투어는 현지에 있는 여행 안내자가 유명 관광지를 촬영해 온라인으로 유튜브에 올린다. 덕분에 독자들은 실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여행이 불가능해지고 유튜브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랜선 투어가 대세라고 한다. 화면에는 유명 관광지가 텅 비어있다. 비어있어서 채워지는 풍경,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여행은 사람들이 많이 붐벼서 일행을 놓칠까 염려되어 항상 긴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느긋하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지 않고 소파에 앉아..
최정례(1955~2021) 시인 경기도 화성 출신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빛그물』 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백석문학상, 미당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최정례 시인은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노력하였다. 1mg의 진통제 / 최정례 1mg의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설산을 헤매었다// 설산의 빙벽을 올라야 하는데/ 극약 처분의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야 하는데// 1mg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1mg을 안고/ 빙벽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그 1mg마저 버리..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로 서민들의 삶이 더 고달프다. 시내 지하상가를 걷다가 비어 있는 상점들을 많이 보면서, 중소 상인들의 고통을 더욱 피부로 느낀다. 점심밥을 지으려고 쌀통을 열었다. 바닥이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쌀로 밥을 지었다. 저녁밥을 지으려면 쌀을 사야 한다. 지갑에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만 들어있다. 월급날은 아직 까마득하다. 하는 수 없이 항아리에 모아둔 동전을 바닥에 쏟아놓고 헤아렸다. 500원짜리, 100원짜리, 50원짜리, 그리고 10원짜리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각각 분류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동전하고 씨름한 후 자루에 담아 체중계에 올려보았다. 동전의 무게가 약 10kg. 금액은 정확하게 194,350원이다. 동전 자루를 멜빵 가방에 넣고 어깨에 짊어지려는데 몸이 휘청거..
버킷 리스트에 써둔 ‘유선여관 일박’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대둔사 입구 너부내 개울가에 있는 그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싶었다. 매일신문에 ‘구활의 풍류산하’를 5년 넘게 연재하던 중에 눈 오는 겨울 하룻밤을 유선여관에 머무는 행운을 잡았다. 그날 내린 눈은 준 폭설에 가까웠다. 소나무 가지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어지며 내지르는 소리가 음악처럼 느껴졌다. 현대음악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소음처럼 신나게 아름다웠다. 새우깡 안주로 투명한 소주를 엎드린 채 홀짝거리고 있으니 눈 내리는 밤은 멋진 콘서트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칸딘스키가 그린 ‘인상 Ⅲ-콘서트’란 추상화가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칸딘스키는 친구인 빈 출신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의 콘서트에서 들었던 음악, 그 소리의 감흥을 ..
변두리 골목길 칼국숫집은 시절 탓인지 주말 점심 때인데도 한가했다. 안쪽 구석에 남자 둘이 젓가락을 휘저으며 마지막 국숫발을 찾고 있었으며, 나는 신문에 끼어들어온 광고전단 쪼가리를 뒤적이며 시켜놓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섰다. 앞장선 사람은 초로의 남자였고 부인인 듯한 여자와 아들 같은 젊은 남자가 따라왔다.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문이 다시 열리고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열 살 안쪽의 남매를 앞세우고 입장했다. 일행은 모두 여섯이었다. 한눈에 봐도 단란한 삼대 가족의 외식이었다. “사장님, 그동안 장사는 마 우짜 됐능교?” 초로의 남자는 들어서자마자 호기롭게 주인을 찾았다. 나는 요란한 목소리를 앞세우는 저 초로의 행동이 참 다목적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
낙화시절 / 서정춘 누군가가 문밖 세상 나온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방 찍고 가자 해 사진을 찍다가 끽다거를 생각했다 그 순간의 빈틈에 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 나도 터진다 빈몸 터진다 종소리 / 서정춘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 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休 / 서정춘 가을걷이 하다 말고 앉아 쉬는데/ 늦잠자리 한 마리가 인정처럼/ 어깨 위로 날아와 앉습니다/ 꼼짝 말고 더 앉아 쉬어 보잔 듯// 파묘 / 서정춘 아버지 삽 들어갑니다/ 무구장이 다 된 아버지의 무덤을 열었다/ 설다선 이빨의 두개골이 드러나고/ 히잉! 말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귓전을 스쳤다/ 어느 날도..
태백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삼척으로 가는 길에 해발 720m의 높은 고개를 만난다.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이 고개는 지명대로라면 ‘통리재’가 맞지만, 강원도 사람들은 똬리를 튼 뱀을 닮았다 하여 '때배이재'라 부른다. 삼척 도계리와 태백 통리를 오가던 영동선 열차가 높은 고도차로 한 번에 넘지 못해, 지그재그로 놓인 철로를 앞으로 뒤로 방향을 바꿔 올랐던 고개다. 누구는 삼척의 본 모습이 바다라지만 알 만한 사람들에게 삼척의 본모습은 산이다. 험하기 이를 데 없는 구불구불한 고갯길 정상에 차를 세우니 멀리 도시가 보인다. 벌써 수년째 산중 오지를 떠도는 내겐, 삼척은 험준한 산 아래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산언저리에 자리 잡은 시꺼먼 건물이 생경한 풍경을 연출한다. 삼척은 한때 ‘까막동네’로 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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