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 같은 꿈을 꾸기도 하고 꿈같은 생시를 겪기도 한다. 비구니와 속물, 신분이 다르고 남녀가 유별하나 질병에 승속이 따로 없다보니 민망한 동침을 할 때도 있다. 한의원 대기실, 무명초 부스스한 앳된 스님이 다소곳 눈을 내리깔고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절집에도 절집 나름의 전래요법이 있으련만, 어디가 얼마나 고통스럽길래 속세로 내려와 저렇게 동그마니 앉아있을까. ‘머리나 깎으려고’산으로 들어갔던 총각시절이 떠오른다. 불목하니 겸 공양주 겸 상좌 노릇 보름 동안 부처님 새벽공양을 연속으로 굶기다가 분기탱천한 스님에게 쫓겨나고 말았었다. 원수의 새벽잠을 생각하니 앞에 앉은 스님이 존경스럽다. 침구실에 같이 불려 들어갔다. 빨쪽하게 열린 커튼 사이로 뽀얀 맨발이 보인다. 초등학생 계집애 마냥 발도 작다. 고슴..
사람이 귀가 가려우면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는 일이 있는데, 이는 결코 점잖은 모양은 못 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하는 일이니 용서하시기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몹시 가렵기로 무의식 중에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손가락 끝이 가려운 데까지 닿지를 않아 퍽 짜증스러웠다. 그래 나는 내 새끼손가락을 들여다보며 그 무능함을 심히 질책했다. 그러다가 문득 보니 성냥개비 한 개가 책상 위에 흘려 있었다. 나는 얼른 그걸 집어 귀를 후볐는데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과연 네로구나." 나는 이런 감탄을 발하며 한참 시원 삼매에 침잠했다. 아, 그런데 그 순간, 그 귀중한 성냥개비가 자끈동 부러지질 않는가. 나는 그 부러진 성냥개비를 창밖으로 홱 내던지면서, 아무짝에도 못 쓸 ..
싸한 바람이 아직 맵다. 코끝과 귀에만 와 닿는다. 밭으로 나갔다. 씨앗을 뿌릴 시기는 아니지만, 밭이 궁금했다. 긴 겨울 동안 둘러보지 않은 밭은 을씨년스럽다. 여기 저기 작물의 시체가 뒹군다. 호박 덩굴이 드러난 갈비뼈처럼 돌담에 누워 지난 시절의 아픔을 말해 준다. 말라버린 고춧대가 지나가는 바람에 엄살떤다. 저쪽 밭두둑에 홀로 선 옥수숫대가 오늘따라 외롭다. 바람받이 두둑엔 칼바람이 매섭다. 옥수숫대가 처량히 울부짖는다. 바짝 마른 옥수숫대. 너덧 잎 남은 이파리가 몸뚱이를 감싸 안고 바람 앞에 울고 있다. 한 잎은 꺾이어 아랫도리를 감았고, 또 한 잎은 위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렇게 마른 이파리는 영락없는 삼베다. 꺼칠하면서도 풀 먹인 베처럼 온몸을 두르고 있다. 동부 덩굴이 기어올라 등허리..
신새벽 꿈속에서 제비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을 지나온 듯, 먼바다를 적시고 온 듯, 푸르게 일렁이는 물결 냄새를 풍기며 나비들이 하늘 가득 날아다녔다. 내 머리카락이 꽃술처럼 일렁였다. 몽롱한 꿈이었다. 황홀한 멀미였다. 나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상의 곤충 가운데 가장 사치스런 날개를 가진 나비는 살아있는 추상화다. 신비스런 영감으로 가득 찬 천상의 화가가 섬세한 붓질로 그려 보낸 엽서다. 선명한 칼라, 화사한 프린트, 세련된 디자인 ― 비단처럼 우아하고 비로드처럼 부드러운 날개는 비에 젖지도, 구겨지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비상 飛翔의 도구로는 다소 연약하고 거추장스럽지만, 아지랑이보다 여린 파문으로 허공이야 실컷 유린하며 산다. 나비는 자유혼, 날아다니는 꿈이다. 정착을 거부하는 보헤미안이다...
나에게는 오랜 꿈이 있다. 여행 중에는 어느 서방西方의 골목길에서 본 적이 있거나, 추억어린 영화나 책 속에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카페를 하나 갖는 일이다. 구름을 좇는 몽상가들이 모여들어도 좋고, 구름을 따라 떠도는 역마살 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도 좋다. 구름 낀 가슴으로 찾아들어 차 한잔에 마음을 씻고, 먹구름뿐인 현실에서 잠시 비껴 앉아 머리를 식혀도 좋다. 꿈에 부푼 사람은 옆자리의 모르는 이에게 희망을 풀어주기도 하고, 꾸믈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사람을 보며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곳, '구름카페'는 상상 속에서 나에게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넓은 창과 촛불, 길게 드리운 커튼, 고갱의 그림이 원시의 향수를 부르고, 무딘 첼로의 음률이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곳에서 나는 인..
아버지를 뵈온 적이 있지만 기억하지는 못한다. 봤지만 인식하지 못하면 본 게 본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네 살 때 열반의 바다를 건너 입적하신 무정한 사람이다. 내 남동생이 태어난 지 오십팔일 만이었다. 나는 ‘현실 속의 안목’과 ‘의식의 눈뜸’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의식이 기억할 수 없는 유아기에 만났기 때문에 지금도 꼭 집어 뵈온 적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타인이다. 아버지를 만난 건 순전히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다. 태초의 빛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 진 것과 같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만 존재하셨다. 어머니의 험담으로 엮어지는 아버지의 일대기 속의 에피소드는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수필이다. ‘아버지는 시원찮은 사람’이라는 전제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넋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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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에 젖어버린 내게 저녁 노을은 참으로 반가운 충격이었다. 콘크리트 숲 속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소중한 것을 찾은 놀라움이기도 했다. 나는 홍시 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홍시 빛, 그래 분명 홍시 빛이었다. 헌데 홍시 빛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30년도 넘게 묻혀있던 그리움 하나가 번쩍 고개를 든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까. 방학을 맞아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할머니께서 뭔가를 내오셨다. 그런데 갑자기 신내가 코를 찌른다. 제 색깔도 잃어버린 것 같은 물건,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정말 대단히 커다란 장도감이었다. 이곳에선 이만한 큰 감을 딸 수가 없을 텐데 누군가 귀한 것이라며 갖다드렸던 모양이다. 헌데 할머니께선 큰 감을 보자 방학..
달이 확 다가왔다. 화면을 가득 채운 달의 표면은 여름 장마가 끝나고 바짝 말라버린 학교 운동장 같았다. 드디어 이글의 문이 열리고 닐 암스트롱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뒷모습이 보였다. 아나운서는 이제 곧 인간이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을 순간이 다가왔다는 말을 흥분된 목소리로 거듭하고 있었다. 사다리를 반이나 내려왔을까.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더니 정지되어 버렸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눈이 빠져라 쳐다보던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안테나를 손보러 뛰쳐나가려는 순간, 다시 화면이 돌아왔다. 달의 표면에 첫 발을 디딘 암스트롱은 커다란 고무공처럼 퉁퉁 튀었다. 그는 '고요한 바다'라 불리는 마른 웅덩이에 깃발을 꽂은 뒤,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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